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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박수찬의 軍] 해적이 돌아왔다…‘아덴만 여명작전’ 반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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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해군 1함대 3특전대대(UDT/SEAL) 특수부대원들이 16일 강릉시 강릉항에서 해상 대테러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1월 21일 오전 4시 58분(한국 시간 오전 9시 58분), 오만 살랄라항에서 동남쪽으로 458km 떨어진 인도양 한가운데에서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총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을 구출하고자 해군 청해부대 소속 한국형구축함 최영함(4500t급)과 UDT/SEAL 특수부대원들이 시작한 ‘아덴만 여명작전’의 서막이었다. 5시간에 걸친 총격전 끝에 선원들을 무사히 구출한 특수부대원들은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다. 우리 군 역사상 최초의 해상 대(對)테러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은 여전히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아덴만 북부와 맞닿아 있는 예멘은 2015년 3월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다. 아덴만과 인접한 소말리아는 국민들이 내전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아덴만을 오가는 상선들을 대상으로 해적 행위에 나서고 있다.

강도 높은 훈련과 실전경험을 갖춘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과 한국형구축함(4500t급)으로 구성된 청해부대는 2009년부터 아덴만에서 우리나라 상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대테러작전 중 난이도가 매우 높은 해상 대테러작전의 특성과 위협 등을 감안하면 과거의 영광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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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아덴만에서 해적으로 의심되는 어선이 미국 해군에 발견됐다. 소형보트로 어선에 근접한미국 해군 수색대원들이 어선에 승선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소말리아에서 해적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해적의 등장은 소말리아의 오랜 내전에 따른 무정부 상태에서 비롯됐다. 1960년 영국에서 독립한 소말리아는 1991년부터 내전이 시작됐다. 미국이 개입해 내전을 끝내려 했지만 1993년 블랙호크 헬기 2대가 격추되고 미군 18명이 사망하면서 철수했다. 20여년이 지나서야 중앙정부가 수도 모가디슈에 들어섰지만 알 샤바브 등 무장세력과 분리주의자들이 득세하면서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다.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면서 소말리아 북부 해안에 살던 어부들과 무장조직원들은 해적이 되어 아덴만을 지나는 선박들을 나포했다. 해적 공격 횟수가 연간 200여건에 이르자 상선들은 무장요원을 태우거나 아프리카 남단을 지나는 우회로를 택했다. 수산업계는 동아프리카 북부 해역에서 조업을 포기했고, 과학 탐사선마저 접근을 꺼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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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에 파견된 청해부대 소속 해군 특전대원들이 함상에서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소말리아 해적이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2008년 제150합동임무부대(CTF150)를 창설, 해적 소탕과 상선 보호에 나섰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러시아 등도 해군 함정을 파견해 해적 근절에 동참했다. 그 결과 상당수의 해적들이 체포돼 수감됐고 해적 행위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아덴만 일대에서 해적의 습격 사례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국제해사국(IMB)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해적 공격 건수는 180건으로 전년도(191건)보다 5.7% 감소했으나 아덴만을 비롯한 소말리아 해역에서는 9건으로 전년(2건)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해적들이 활동을 재개하면서 아덴만 일대가 다시 불안해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17일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는 파나마 선적 컨테이너선을 나포하려다 실패한 해적들이 선박을 향해 RPG-7 로켓 2발을 발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와 관련해 해양수산부는 최근 발간한 세계 해적사고 발생 동향에서 “지난해 3월부터 활동을 재개한 소말리아 해적들은 RPG-7을 비롯한 자동화기로 무장하고 납치한 어선을 모선(母船)으로 삼아 소형보트를 투입해 공격하는 방식으로 먼바다까지 진출하고 있다”며 “소말리아 해역을 항해하는 선박은 24시간 경계를 강화하고 해역 진입 전 통항보고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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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에 파견된 청해부대 소속 해군 특전대원들이 해상 표적에 대한 저격술을 익히고 있다. 해군 제공


◆아덴만 수호하는 청해부대와 해군 특수전요원들

연간 500여척의 우리나라 선박이 오가는 아덴만에는 2009년부터 해군 청해부대가 파견되어 상선 보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청해부대는 2009~2017년 2200여척의 선박을 호송하고 21회에 걸쳐 해적을 퇴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2011년과 2014년 리비아 내전에서 우리 국민 55명을 철수시켰고 2015년 예멘 내전에선 국민 6명의 철수를 지원했다. 현재 청해부대는 25진이 현지에서 활동중이다.

청해부대는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4500t급)과 해군 특수전요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2011년 1월 21일 삼호주얼리호를 해적으로부터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 주역인 특수전요원들은 해군 특수전전단에서도 최정예로 손꼽힌다.

해군 특수전전단의 일원이 되려면 혹독한 훈련을 수없이 치러야 한다. 첫 관문인 24주 기초훈련은 고강도 작전수행에 필요한 체력을 다진다. 이수자가 40%를 밑돌아 지옥훈련으로 불린다. 2단계는 전문과정이다. 상륙작전에 앞서 장애물을 제거하는 수중파괴, 폭발물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폭발물 처리(EOD), 육해공 침투, 해상 대테러 훈련을 받는다. 일선부대에 배치되면 월 평균 10회, 1인당 연간 3000발 이상 사격훈련을 한다. 분기별 1회 고공침투, 외국 특수전부대와의 연합훈련 등을 통해 작전수행능력을 높인다. 청해부대에 참가하는 요원들은 현지 사정을 고려한 맞춤형 훈련을 팀 단위로 실시한다. 의심선박 검문검색과 해적 소탕작전 수행에 필요한 전투기술을 중점적으로 습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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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구축함 최영함이 태평양에서 훈련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최영함은 아덴만에 여러차례 파견돼 상선보호활동을 펼쳤다. 미국 해군 제공


해군 특수전요원들이 훈련을 거듭하는 것은 해상 대테러 작전이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좁고 어둡고 격실이 많은 선내에서 인질과 테러범이 뒤섞여 있으면 돌발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 순간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인질은 물론 팀 전체가 위험하다. 팀원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을 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본능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하고 팀워크를 다져야 한다. 아덴만 여명 작전 성공은 해군 특수전요원들의 훈련과 철저한 사전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덴만 여명작전’ 추억에서 깨어나야

아덴만 여명작전의 성공은 해군 특수전전단과 청해부대의 입지를 한 단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해군 내에서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해상 특수전은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군 내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장비 보강이 이뤄졌다. 국산 K-1A 소총과 독일제 MP-5 기관단총 외에 최고급 총기인 독일제 HK-416이 보급됐다. 초당 1.5m의 속도로 100m 높이의 건물을 1분 내에 오르게 하는 자동승강기와 3분 내 지혈이 가능한 지혈거즈를 비롯한 구급장비도 지급됐다. 미국 해군 특수전부대인 실(SEAL)이 우리 해군 특수전전단을 보는 눈길로 달라졌다.

청해부대도 해외에서 주목하는 부대가 됐다. 2016년 4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우리 정부와의 정책협의회에서 청해부대의 지중해 투입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유럽은 리비아에서 유럽으로 건너오는 난민들에 대한 해상구난활동과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잠입하는 테러리스트들을 차단하는 노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 정부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거부의사를 밝히면서 무산됐지만 청해부대의 활약상에 대해 외국에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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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에 파견된 청해부대 소속 해군 특전대원들이 선박 수색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해군 제공


아덴만 여명작전 7주년을 맞은 현재 청해부대와 해군 특수전전단의 앞길은 험난하다. 홍해와 아덴만은 아랍국가들의 패권다툼이 한창이다. 터키는 수단에 인접한 홍해 연안에 군사기지를 건설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이집트는 이에 맞서 에리트레아에 군대를 파견했다. 에리트레아와 앙숙인 에티오피아는 국경에 병력을 증강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소말리아 북부 해안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으며, 홍해와 아덴만을 연결하는 지부티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지로 바뀌고 있다. 소말리아에서는 해적이 다시 창궐하면서 선박 탈취와 선원 납치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내전과 기아를 견디다 못한 소말리아인들은 난민이 되어 소형 보트를 타고 아덴만을 가로질러 사우디로 밀항을 시도하고 있고, 난민들이 경유하는 예멘은 내전으로 무정부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아덴만을 둘러싼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청해부대와 해군 특수전전단이 아덴만 여명작전과는 차원이 다른 작전에 직면할 우려도 제기된다. 군사협력협정을 맺고 있는 UAE가 아덴만 일대 작전 수행과정에서 지원을 요청할 수 있고, 해적에게 납치된 선원을 구출하기 위해 소말리아 해안에 상륙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을 여유가 없게 된 것이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은 “청해부대는 해군의 가장 큰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우리의 힘을 해외에서 보여주는 것이 실제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정교한 논리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위원은 해상 특수전 발전과 관련해 “해군 차원이 아닌, 미국의 합동특수전사령부(SOCOM)처럼 육해공군 특수전부대를 합동으로 관할하는 조직을 만들고, 실무부대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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