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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차이나 인사이트] 실리콘밸리 CEO들은 왜 중국에 꽂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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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디지털 대국 변신하면서

세계 유니콘 1/3이 중국서 창업돼

중국 기업에 자본·R&D 투자하고

독점 개발 플랫폼도 중국과 공유

중국과 경쟁 대신 동반 성장의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 추구하기

시간을 금쪽 같이 여기는 미 실리콘밸리 최고경영자(CEO)들의 중국행 발걸음이 잦다. 지난해 10월 30일 베이징에서 열린 칭화대 경제학원 고문위원회엔 애플의 팀 쿡,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가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12월 3일 저장성 우전에서 개최된 제4회 세계인터넷회의에도 팀 쿡을 비롯해 구글의 순다 피차이, 시스코의 척 로빈스가 참석했다. 실리콘밸리 CEO들이 중국에 꽂힌 이유는 무얼까.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세계인터넷회의를 개최한 주최측은 중국의 사이버보안법을 집행하는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이다. 그런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쿡이 시진핑 주석을 만난 지 불과 한달 여 만에 또다시 중국을 방문한 이유는 무언가.

답은 간단 명료하다. 애플은 중국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중국의 중소 기업들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이른바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전략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강력하게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은 상당히 무모해 보인다. 중국 정부가 2000년대 이후 정보 주권을 명분으로 해외 기업들에게 소스 코드를 요구하거나 또 중국에서 생성된 데이터의 해외 이전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신재민 기자 nu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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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과 구글은 각각 2009년과 2010년부터 접촉을 차단당한 후 중국에서 왓츠앱(WhatsApp)과 구글번역기와 같은 일부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는 형편이다. 애플은 중국 정부의 가상사설망(VPN) 규제 정책에 따라 2017년 7월 VPN 앱을 앱스토어에서 삭제해야 했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실리콘밸리 기업을 규제하는 동안 중국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BAT로 불리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의 중국 토종 기업들이 급속도로 사세를 불렸다. 이제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의 턱밑까지 따라 붙었다. 중국 정부의 견제와 중국 토종 기업의 성장으로 애플의 점유율은 하락했다. 그럼에도 애플은 더 많은 중국 현지 파트너들과 기술 및 서비스 부문의 협력을 추구하겠다는 계산이다. 베이징과 선전 이외에 상하이와 쑤저우에도 연구개발 센터를 추가하는 건 물론 구이저우성에 아이클라우드(iCloud) 서비스 이용자를 위한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구글도 아시아지역 최초의 AI 센터를 베이징에 신설한다고 발표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5월 중국 정부의 사이버 보안 우려를 반영한 중국 정부기관 전용 윈도우 10 버전을 출시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왜 이렇게까지 중국에 공을 들이는 걸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이 미국 다음으로 큰 디지털 경제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 전자상거래의 42%를 차지하고 있다.

4차 산업의 총아 중 하나인 핀테크(정보기술과 결합한 금융서비스)에서도 중국은 빠르게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세계 핀테크 기업 투자에서 중국의 비중은 2013년 7%에서 2016년 47%로 급성장했다. 모바일 지급결제 규모로만 보면 중국이 미국의 11배 규모로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태다.

미·중 사이의 디지털 기술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2013년 4.9배였던 격차가 2016년엔 3.7배로 축소됐다. 베이징의 중관춘(中?村)이나 선전의 화창베이(?强北)에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 빅 데이터, 무인자동차, 스마트홈 등의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세계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의 3분의1 가까이가 중국에서 창업됐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장 규모는 물론 기술 격차까지 줄어들면서 실리콘밸리 기업의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에도 빠르게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직접 진출해서 점유율을 넓히기보다는 유망한 중국 스타트업을 발굴해 육성하거나 대기업과의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다.

애플과 구글에 초기 투자했던 세쿼이아 캐피털은 중국의 59개 유니콘 기업 중 11개에 투자하고 있다. 애플은 중국 중앙텔레비전의 춘절(春?) 특집 프로그램에서 540대 로봇 군무를 선보인 유비테크 로보틱(UBTECH Robotics)의 제품을 애플 스토어에서 독점 판매하도록 유치했다.

중국 IT 기업은 이미 세계 인수합병 시장에서도 큰손으로 부상했다. 지난 2년간 중국의 3대 인터넷 기업은 미국 3대 인터넷 기업보다 15건 더 많은 35건의 해외 M&A를 성공시켰다.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BAT가 중국의 4차 산업혁명 기업의 육성을 지원하는 벤처 캐피털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46개 중국 유니콘 기업들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21개 기업들이 BAT의 투자를 받았다. 텐센트와 알리바바 모두 세계 최대의 자동차 공유 서비스업체인 우버와 경쟁중인 디디추싱(滴滴出行)에 자본을 투자하고 있는 게 좋은 예다.

지난해 텐센트와 알리바바의 주가가 거의 100% 올라 세계 10대 IT 기업으로 도약했다. 그렇다면 주가 상승의 가장 큰 혜택을 본 이는 누군가. 텐센트의 마화텅(?化?)이나 알리바바의 마윈(馬云)이 아니다.

텐센트는 남아공의 네스퍼스, 알리바바는 일본의 소프트방크가 약 30%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텐센트와 알리바바에 각각 투자해 약 15년만에 1000배 이상의 평가 이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다.

실리콘밸리 기업의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은 이런 성공 사례와 유사한 측면을 갖는다. 독자적으로 진출해 중국 기업과 직접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중국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동반 성장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다. 따라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중국 기업에 자본을 제공하고 또 R&D에 투자하는 것은 물론 독점적으로 개발한 플랫폼까지 중국과 공유하려고 하는 노력은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필리핀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를 만났을 때 리 총리는 “봄의 강물이 따뜻해진 걸 오리가 먼저 안다(春江水暖鴨先知)”는 소동파의 시구를 인용해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 완화를 시사한 바 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해 우리도 중국 ‘테크 굴기’의 동반자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왕휘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동아시아와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일대일로: 중국과 아시아』(공저) 등이 있다.



이왕휘 아주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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