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0 (금)

[차이나 인사이트] 중국 비즈니스는 베일 속 ‘자오쟈런’이 지배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국에서 대기업 성장 위해선

정치적 후원 세력 있어야 가능

베일 속에 숨은 정치 세력이

현대 중국서 ‘자오쟈런’으로 불려

돈과 권력이 유착된 권귀 계층

중국 건전 성장 가로막는 장애물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완커(萬克)는 지난해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307위로 민영이었지만 국유기업으로 바뀌었다. 현대중공업(313위)보다 앞선다. 자산 1196억달러에 종업원은 5만8000여 명을 웃돈다. 한데 그런 회사의 왕스(王石) 회장이 2년 가까이 적대적 M&A 공격에 시달리다가 백기사로 등장한 국유기업에 경영권을 넘기고 지난해 6월 은퇴했다. 중국 기업이 정치 권력의 한낱 전리품에 불과하다는 민낯을 드러낸 케이스다.

완커는 1984년 설립돼 91년 선전주식거래소에 두 번째로 상장될 만큼 정치적 배경이 강한 기업이다. 중국에서 민영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정치적 후원이 필수다. 특히 부동산개발은 정부의 인허가 문제가 얽혀 있어 웬만한 배경이 아니면 사업을 진행하지도 못한다.

중앙일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대도시의 대형 프로젝트는 최소한 부총리급이 후견인이라고 한다.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개발사업을 한 만큼 완커의 대단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완커는 특히 화룬(華潤)이란 중앙정부 직속의 국유기업이 후견인 역할을 하는 재무적 투자자로서 정치적 위상도 높았다.

한데 2000년 설립된 민영기업 바오넝(寶能)이 완커를 상대로 적대적 M&A에 나섰다. 2015년 6월부터 12월까지 완커 지분의 22.5%를 사들였다. 그것도 차입금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차입매수 방식을 이용했다. 6개 은행과 15개 증권사 및 펀드를 동원했다. 왕스 회장은 적대적 인수를 추진하는 바오넝을 “문앞의 야만인”이라 비난했다. 사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정한 자금의 “돈 세탁”을 위해 기업인수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믿었던 화룬이 힘을 쓰지 못했다.

화룬은 38년 공산당 자금 조달을 위해 지하조직으로 설립됐고 그 회장은 정부의 차관급 인사인데도 말이다. 당시 화룬 회장 쑹린(宋林)이 부패 혐의로 숙청된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심복으로 그 자신 부패 조사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토양에서 일개 민영기업이 국유기업을 배경으로 가진 기업을 상대로 싸움을 건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한데 완커가 바오넝에 쩔쩔맨 이유는 뭔가. 신흥 기업 바오넝이 중국 비즈니스를 지배하는 ‘자오쟈런(趙家人)’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오쟈런은 ‘조(趙)씨 집안 사람’이란 뜻이다. 루쉰(魯迅)이 21년에 지배계층에 무기력하게 착취 당하는 하층민 ‘아Q’를 주인공으로 해 쓴 소설 ‘아Q정전’에 등장한다. 아Q는 소설에서 조씨 집안을 턴 범인으로 몰려 허무한 죽음을 맞는다.

자오쟈런은 세도가다. 현재는 중국 공산당의 특권 계층을 의미하는 은어로 쓰인다. 당시 중국에선 완커와 바오넝의 싸움을 두고 ‘문앞의 야만인과 배후의 자오쟈런’이란 글이 나왔는데, 자오쟈런이 문앞의 야만인을 조종해 완커 인수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글은 중국에서의 비즈니스가 ‘개인-중소기업-그룹-자오쟈런’의 4개 계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표면상 그룹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정치권력을 소유한 자오쟈런들의 실력과 협상에 의해 사업의 승패가 결정된다고 분석했다.

오래 전부터 자오쟈런들은 적당한 민영기업을 물색해 이 기업의 뒤를 봐주고, 그 반대 급부로 차명 주식이나 역외 펀드를 받았다. 중국 유수 민영기업의 주식 소유자 구성을 보면 종업원 지분의 비중이 큰 회사들이 많은데, 자오쟈런이 종업원의 이름으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 뉴욕타임스는 과거 원자바오 전 총리 일가가 중국 최대 민영 금융그룹인 핑안(平安)에 22억 달러의 차명 주식을 보유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렇다면 포춘지 500대 기업에 드는 완커 인수는 어지간한 직급의 자오쟈런들로선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화룬을 통해 완커의 뒤를 봐주던 저우융캉이 몰락하자 꽤나 높은 중국 고위층들이 탐을 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문제는 완커라는 하나의 먹잇감을 놓고 자오쟈런들 사이에서 보험과 은행, 증권사의 자금을 동원한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금융감독 기관들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들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이게 바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분노의 칼을 빼 들어 금융권 사정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지난해 초부터 중국 당국은 금융분야에서 부패로 인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발표한 뒤 2월에는 은행감독위원회 위원장을 교체하고, 4월에는 보험감독위원회 위원장 샹쥔보(項俊波)를 부패 혐의로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은행감독위 위원장으로 새로 부임한 궈수칭(郭樹淸)은 “규칙이 있어도 지키지 않고, 법도 무시하는 현상”으로 인해 은행업계가 대혼란에 빠진 바, 독한 약을 쓸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자오쟈런들에 대한 처벌을 시사한 것이다.

결국 완커를 공격했던 바오넝의 회장이 제거됐고, 이에 따라 완커에 대한 인수도 동력을 잃고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완커의왕스 회장은 더 이상은 경영권을 유지하지 못하고 또 다른 자오쟈런에게 기업 지분의 상당 부분을 넘기고 은퇴를 선언했다.

바오넝의 자오쟈런 저항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으로 피신해 중국의 추문을 폭로하고 있는 정취안(政泉) 홀딩스의 궈원구이(郭文貴)도 자오쟈런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지난해 4월 중국의 반부패 수사를 총괄하고 있는 당시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왕치산(王岐山)이 하이난(海南)항공의 자오쟈런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중국의 많은 기업들이 상처를 입었다. 안방(安邦)보험과 푸싱(復星)그룹, 완다(萬達)그룹 등.

중국에서 어떤 그룹의 회장이 구속되거나 처벌을 받고, 혹은 빠르게 성장하는 현상의 배후엔 늘 이 같은 자오쟈런 세력의 부침이 함께 하고 있다. 자오쟈런 간의 권력배분 협상 결과에 따라 그룹의 운명이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대형 그룹의 동향은 중국 내 정치권력의 변화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돈과 권력이 유착한 권귀(權貴) 계층은 현재 중국의 건강한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다. 시진핑이 19차 당 대회 보고에서 중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주요 모순 중의 하나로 거론한 ‘불균형 발전’의 원흉이기도 한 것이다. 시 주석이 과연 중국 비즈니스를 지배하는 실세인 자오쟈런들을 제대로 척결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엄정명
연세대와 시카고대 MBA에서 공부했다. 삼성생명 베이징주재 사무소 소장을 거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중국에서의 금융 등 오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엄정명 중국경제 칼럼니스트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