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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솔숲, 운치를 더하는…바다, 경치에 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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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딱 좋아! 강원도 양양과 속초

경향신문

지금 강원도 양양과 속초로 떠나보자. 동계올림픽이 끝났지만 아직 패럴림픽(3월9~18일)이 남아있어 강릉과 평창에선 다양한 이벤트도 열린다. 양양과 속초는 차로 20분 거리이지만 서로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자연을 닮은 양양에서 소나무 향기를 흠뻑 마시고, 도시 향기 가득한 속초에서 오랜만에 손님 대접을 받고 왔다.

■ 자연을 간직한 양양

양양 하면 전국 3대 관음성지인 낙산사, 설악산 대청봉, 밤낮없이 하얀 파도를 넘나드는 하조대와 죽도의 서퍼들이 떠오른다. 양양의 속살을 만나고 싶어 소나무숲을 찾기로 했다. 양양은 임금의 관을 만들 때 쓰는 황장목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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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양양 간 동서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 만에 양양 IC로 들어섰다. 목적지는 황장목으로 뒤덮여 있는 현북면 어성전길 432번지.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진초록 소나무숲이 부채처럼 끝없이 펼쳐졌다. 봄기운이 넘쳐나는 탁장사 마을은 유럽 소도시 같았다. 창가에 머무는 알록달록한 지붕과 너른 시골마당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포근했다. 천천히 달리는 차를 막아선 것은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 2마리였다. 예쁜 모자를 똑같이 눌러쓴 엄마와 어린 딸이 웃으며 강아지 이름을 불렀다. 그림동화책이 따로 없었다.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황장목 숲은 장대했다. 키가 5m는 훨씬 넘어 보일 만큼 소나무들이 훤칠했다. 새소리가 들려오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쭉쭉 뻗은 불그스름한 나무줄기를 따라 햇살이 찰랑거렸다. 겨울 끝자락에서 마주한 소나무숲은 운치가 남달랐다.

어성전 계곡은 놀라웠다. 남대천으로 흘러가는 강물은 맑고 투명했다. 꽁꽁 얼었던 얼음을 뚫고 강물이 시냇물처럼 졸졸 흘렀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봄이 온 것이 분명했다.

낙산해변은 여전히 눈부셨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해송의 싱그러움이 가슴속까지 파고들었다. 겨우내 움츠렸던 세포조직이 시원하게 열렸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바닷가로 나가면서다. 양양군청 양혜정 계장이 “낙산해변을 따라 2.2㎞ 산책로가 새로 생겼는데 발끝에 모래 한톨 묻히지 않고 바닷가를 걸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길고 깊게 뛰는 하얀 파도를 따라 걸었다. 온 마음을 다하면 평생소원이 이뤄진다는 낙산사가 손에 닿을 듯했다. 책 읽는 남자와 강아지 조형물 앞은 인증샷을 찍으려는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구탄봉의 소나무는 또 달랐다. 자연휴양림 송이밸리에서 임도를 따라 오르자 구탄봉 표지판이 나왔다. 산 능선을 자박자박 10여 분쯤 걸었을까. 빽빽하게 산비탈에 늘어선 소나무가 자그마했다. 척박한 환경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의 미덕이랄지, 잎이 2개인 이곳 소나무는 단단한 원통 모양의 물관을 갖고 있어 목재로 쓰기에 알맞아 보였다. 설악산은 눈이 덮여 있었지만 오솔길은 진초록이었다. 전망대에 오르자 듬직하고 늠름한 설악산 아래로 남대천 지류가 모여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조대, 낙산사, 속초까지 훤히 보이는 해안선이 또렷했다.

■ 도시로 변한 속초

“조금만 올라가면 됩니다. 길이 잘 닦여있어 걱정없어요.” 설악산 흔들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는데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울산바위에 안 가면 후회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해발 873m의 울산바위는 이름만 들으면 오르기 쉬워 보인다. 둘레가 4㎞, 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울산바위가 꽤 험준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간단한 옷차림도 상관 없다니 홀가분하게 정상으로 향했다.

좁은 산길을 따라 얼마나 올랐을까. 나무 계단이 나왔다. 편하게 천천히 걷다 보면 울산바위에 도달하겠지 싶었다. 어라, 1시간도 넘게 올랐지만 하늘로 향한 계단은 끝이 없었다. 깎아지를 듯한 바위를 굽이굽이 돌고 도는데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제 다 왔느냐”고 묻자 “아직 멀었다”고 했다. 극기훈련이 따로 없었다.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뒤를 돌아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생수를 챙기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마침내 정상에 섰을 때는 두 다리가 풀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역시 울산바위였다.

속초는 더 이상 낭만 가득한 항구가 아니다. 고층 빌딩이 빽빽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늘어선 도시다. 대포항 바위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오징어 회에 소주잔을 기울이던 낭만도 사라졌다. 횟감을 놓고 멍게, 해삼 1개만 더 달라고 흥정하는 풍경도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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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일인지 대포항이 한가했다. 평창과 강릉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데 주말인데도 왜 관광객이 보이지 않는지 궁금했다. 한 횟집 아주머니는 “서울에서 강릉까지 KTX, 양양까지 동서고속도로를 타면 2시간 만에 바다를 만나는 세상”이라면서 “당일치기 여행객이 늘어서인지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속초에 머무는 사람들이 줄었다”고 말했다. 건너편 튀김집 주인은 “올림픽 특수를 볼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손님이 없다”면서 “예전처럼 복잡하지 않아 지금 속초로 오면 한적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속초시청 하성란 계장은 “가뭄이 심해 걱정이긴 하지만 관광도시인 만큼 올해는 크루즈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모처럼 대포항에서 값을 흥정하며 생선회를 즐겼다.

<양양·속초 | 글·사진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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