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끝물, 항구도시의 푸진 먹거리
갓김치·젓갈 … 맛깔난 밑반찬 감동
시장 구경하며 군것질 하는 재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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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암산에서 본 여수 밤바다. 왼쪽 먼곳에 거북선대교, 오른쪽에 돌산대교가 보인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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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의 후렴구다. 동시에 여수에서 맛난 음식이 입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터지는 탄성 소리다. 코끝 알싸한 갓김치부터 아이스크림처럼 입에서 살살 녹는 삼치회까지, 여수의 맛은 하나같이 긴 감탄사를 자아낸다. 봄 기운 슬몃 찾아온 지난달 19∼20일, 전남 여수에서 다섯 끼를 먹고 왔다. 단언컨대, 지금까지 다섯 번의 ‘일일오끼’ 중 식당 고르는 데 가장 애를 먹었다. 맛보고픈 음식도 많거니와 쟁쟁한 식당이 워낙 많아서였다.
12:00 밥도둑 무한리필 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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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봉산동 청정게장촌에서 1인 정식을 주문하면 간장·양념게장과 15가지 반찬을 내준다. 게장은 무한정 추가해 먹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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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밥 추가요.” 점심시간,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애타게 밥 찾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를 잡고 게장백반정식(2인 이상, 1인 1만원)을 주문했다. 금세 한상 가득 게장과 반찬이 깔렸다. 게장은 간장·양념 두 종을 스테인리스 그릇에 수북이 쌓아줬다. 꽃게가 아니라 돌게(민꽃게)다. 여수 거문도가 고향인 박현숙(52) 사장은 “돌게가 크기는 작아도 살이 꽃게보다 달다”며 “처음엔 여수산만 썼는데 요즘엔 인천 것도 쓴다”고 말했다.
게장은 정갈했다. 꽃게보다 내장이 적고 알이 없어서인지 비린맛이 덜했다. 주방 앞쪽에 무한리필용 게장이 있었지만 더 먹진 않았다. 다른 밑반찬 때문이었다. 여수에서 ‘쏙’이라 부르는 딱새우장, 두툼한 돌김에 밥을 얹고 한 옴큼 올려 먹는 토하젓, 시원한 갓물김치가 인상적이었다. 혼밥족을 위한 1인 정식(1만 2000원)도 있는데 양이 2인분과 별 차이가 없다.
18:00 갈치만으로 배부른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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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동의 허름한 밥집 ‘홍가’에서 먹은 갈치조림. 살이 단단한 먹갈치를 매콤달콤하게 졸여 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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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시간, 가게 문을 열었다. “식사 되죠?” 물으니 “잠깐 기다려보소. 밥 좀 있나 보고.” 정민숙(68) 사장이 시큰둥하게 답했다. 메뉴는 세 가지 뿐이었다. 갈치조림(1만 2000원), 홍어(2만원), 돼지 목살(2만원).
“갈치 드소, 갈치가 지금 젤로 맛낭께. 근디 오늘은 꼴뚜기를 못 주겄네. 명절이 지나부러서 시장에 살 것이 없당께.”
반찬 8가지가 먼저 상에 올랐다. 양념게장, 풀치(갈치 새끼) 조림, 무나물, 꼬막무침 등이 하나같이 때깔이 좋고 맛있었다. 곧 양철냄비에서 자글자글 끓는 갈치조림이 나왔다. 국물부터 한 숟갈 떴다. 양파·무·감자가 듬뿍 들어 있어 달큰했다. 조미료로 만든 맛이 아니라 숭덩숭덩 썰어 넣은 채소에서 우러나온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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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가 갈치조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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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를 넣어 냄비 바닥을 긁으니 갈치가 뭉텅 따라올라왔다. 갈치는 살이 잘 부서지지 않았고 고소한 맛이 두드러졌다. 정 사장은 “여수 어선이 동중국해에서 잡은 먹갈치만 쓴다”며 “갈치가 가장 맛있는 11·12월에 잡아서 바로 급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행과 2인분을 먹고 공기밥을 더 시켜 먹었는데도 갈치가 남아 있었다. 1인분에 2만~3만원 하면서 정작 갈치는 몇 토막 안되는 제주나 서울 식당과 비교할 수 없는 양이었다.
이튿날 8:00 시장 주전부리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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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최대 규모 시장인 서시장에는 없는 게 없다. 떡이나 빵, 분식을 사 먹으며 시장을 둘러보면 재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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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들른 곳은 서시장. 커피 한 잔 사들고 시장으로 들어섰다. 주부떡집에서 걸음을 멈췄다. 두툼한 호박시루떡을 한 입 물었다. 단맛이 인위적이지 않고 쫀득한 식감이 두드러졌다. 여수에서 호박시루떡을 많이 먹는 이유를 물었다. “글씨, 나도 모르겄소. 그냥 옛날부터 많이 먹었지라.” 김덕기(61) 사장이 맛 좀 보라며, 거문도 쑥으로 만든 쑥떡도 건넸다. 향이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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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박을 채 썰어 찐 호박시루떡. 여수에서 많이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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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수산시장 옥상에서 생선을 말리는 모습.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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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 씹을 틈 안주는 삼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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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는 삼치를 회로 먹는다. 활어회가 아니라 잡자마자 죽은 삼치를 저온 숙성한 뒤 먹는 선어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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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릴없이 익히 알려진 식당을 찾아갔다. 수산시장 옆 골목 대성식당(061-663-0745)이다. 마침 거문도에서 잡은 삼치가 박스에 담겨 식당에 들어왔다. 김정연(44) 대표가 박스를 열었다. 6㎏짜리 삼치는 구이로 먹던 삼치와는 아예 다른 종처럼 보였다.
회는 김 대표의 어머니 유춘애(61)씨가 직접 뜬다. 유씨는 “살이 워낙 물러서 회를 뜨기가 쉽지 않다”며 “삼치는 포를 뜬 뒤 0~1℃ 저장고에서 5시간 숙성해서 먹어야 가장 맛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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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거문도에서 잡자마자 식당으로 온 삼치. 한 마리 6kg 정도 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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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여수 스타일로 먹어봤다. 간장 양념장에 삼치살을 적신 뒤 바삭한 돌김에 얹고 갓김치를 한 점 올렸다. 여수 앞바다가 통째로 입안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감칠맛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 ‘게미’의 최상급을 경험한 것 같았다. 이번에 발길을 돌린 삼치회 전문식당은 조일식당(061-655-0774), 월성소주코너(061-653-5252)다. 모두 문수동에 있다.
17:00 돌문어라면 먹고 드립커피까지
작은 부둣가인 종포항에 최근 젊은 여행객이 줄 서서 먹는 맛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평일에는 오후 5시부터 저녁 장사만 하고, 주말에만 점심부터 음식을 파는 자신감 넘치는 젊은 식당 돌문어상회(061-665-4595)다. 지난해 3월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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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돌문어상회 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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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문어상회는 인테리어도 재밌다. 황선호(40) 돌문어상회 대표가 항구 쓰레기더미에서 어구(漁具)를 주워다 직접 꾸몄단다. 한데 왜 돌문어였을까. 황 대표는 “여수의 수많은 해산물 중 돌문어가 아직 빛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며 “대학 중퇴 뒤 스무살부터 여수에서 장사를 했는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이 찾은 식당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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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포항에 있는 카페 달콤에서 마신 커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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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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