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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물처럼 스며든, 괴생명체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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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1960년대 ‘미-소 냉전’ 배경의 판타지

미국, 아마존에서 포획한 괴생명체 통해

경쟁국 소련 앞지를 무기 만들려 고심

이때 괴생명체와 우연히 만난 한 청소부

목소리 장애가 있는 그와 괴생명체는

몸짓과 눈빛으로 우정을 쌓아가는데…

결국 파시즘이라는 껍질 속에 담긴

진짜 이야기는 소외된 존재들의 사랑



한겨레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한 장면. 1960년대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 이곳에서 일하는 언어장애를 지닌 청소부 엘리사(샐리 호킨스)는 어느 날 수조에 갇힌 채 실험실에 들어온 신비로운 괴생명체에 이끌린다. 이십세기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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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이하 ‘셰이프’)의 형제 격인 작품으로 영화 <악마의 등뼈>와 <판의 미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작품은 각각 스페인 내전이 한창일 당시와 전쟁이 일단락된 뒤의 시점을 호러 판타지의 어법을 빌려 다루고 있다. 감독은 이 작품들에서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파시즘을 단죄함과 동시에 희생자들을 진혼하고 있다.

<셰이프>에서도 파시즘에 대한 그의 혐오감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이에 대한 단죄 역시 언제나처럼 가차 없다. 다만 달라진 것은 <셰이프>가 스페인 내전보다 훨씬 큰 전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스페인 내전이 2차 세계대전의 ‘예고편’이라고 이야기될 정도로 국제적 양상을 띤 내전이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지리적으로는 스페인 내부에서 벌어진 전쟁이었다. 그에 비해 <셰이프>가 끌어들인 전쟁은 전 지구적인 규모의 전쟁이자 3차 세계대전으로 불리기도 하는 미-소 냉전이다.

냉전 속 외로운 사람들이 만들어낸 ‘온기’

그렇지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핵심은 사랑이다. 그의 어떤 영화보다도 개인적이며 서정적으로 표현됐다. 즉 <셰이프>는 냉전이라는 커다란 껍질 속에 사랑이라는 작은 노른자가 들어 있는 양상이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에서는 계란이 꽤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주인공 ‘엘리사’(샐리 호킨스)가 괴생명체에게 가장 먼저 해주는 일은 바로 삶은 계란을 주는 일이다. 또한 이 둘이 가장 먼저 나누는 대화도 ‘계란’이라는 한마디다. 아무튼 이 영화의 껍질에 해당하는 부분부터 들여다보자.

미-소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대의 미국, 바닷가에 가깝고 나머지 모든 것들과는 먼 작은 도시에 있는 정부의 비밀 실험시설에 새로운 화물이 도착한다. 바닷물에 부식된 듯 뻘겋게 녹이 슨 이 대형 수조 안에는 아마존에서 잡아 온 인어 생명체가 들어 있다. 미국 당국은 이 생명체로부터 소련에 뒤처진 우주개발 경쟁을 만회할 뭔가를 찾고 싶어 하고, 시설의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이 기대에 부응하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짐작하셨겠지만 이 인물은 영화의 간판 악의 축으로서 기독교 근본주의, 백인 우월주의, 남성 우월주의 등을 고루 갖춘 파시즘의 화신이다. 그리고 그의 야심만만한 계획에 이 괴생명체와 사랑에 빠지는 여인과 그들을 돕는 제3의 인물이라는 예기치 못한 ‘불순물’이 끼어든다.

다분히 ‘로즈웰 미스터리’(1947년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에서 발생한 외계인 미스터리 사건)를 연상시키고 있는 이 설정은 우리에게 꽤 익숙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①탐욕 또는 맹신을 품은 인간에 의해 포획, 감금된 괴생명체와 ②우연히 그 생명체를 마주치고 서로 교감을 하게 되는 주인공 ③그들의 의사소통의 한계와 종의 장벽을 뛰어넘은 사랑 또는 우정 ④그 사랑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인간들의 파괴적 반격이라는 흐름에서 <셰이프>는 영화 <킹콩>이나 <이티>(E.T.)류의 몬스터(외계인, 크리처, 괴생명체) 로맨스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 <셰이프>는 이런 몬스터 로맨스가 다룰 수밖에 없게 되는 시스템의 폭력과 그에 대한 비판을 사랑 이야기 못지않은 비중으로 담는데 이 과정에서 매우 재미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바로 시설 소속 연구원인 ‘호프스테틀러 박사’(마이클 스툴바그)다. 비록 소극적으로 한 발 물러나 있었으나 결국 ‘순수’의 수호자로 기울게 되는 <악마의 등뼈>의 의사 ‘카사레스’와 <판의 미로>의 의사 ‘페레이로’의 확장판 격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다. 체제의 부역자로서 안전한 지위를 누리던 그는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 희귀하고 아름다운 생명체를 시스템의 폭력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 모두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그는 “소련 놈들이나 동양 놈들이나 다들 감정 지능 있지만 우리가 죽이잖아?”라고 내뱉는 스트릭랜드와도, “우리가 새로운 걸 배울 필요는 없어. 미국이 새로운 걸 못 배우게 하면 돼”라고 말하는 소련 측과도 끝내 섞일 수 없다. 그런 인간적 온기를 가진 덕분에 그는 자진해서 “세상에서 가장 외로워 보이는”(이는 주인공 엘리사가 괴생명체를 두고 한 대사) 존재가 되어 괴생명체의 손을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의 ‘노른자’를 이루는 인물은 모두 외로운 존재들이다. 주인공 엘리사는 이 비밀시설의 청소부다. 도입부의 내레이션에서 ‘목소리를 잃은 공주’로 소개되는 그녀는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하지는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를 연기하는 샐리 호킨스의 수수한 외모 역시 그를 동화 속 공주 또는 ‘야수를 죽인 미녀’(피터 잭슨 판 <킹콩>의 마지막 대사)로 보이게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괴생명체가 있다. 고향인 아마존의 원주민들에게는 신, 시스템이라는 종교의 광신도들에게는 적을 제압할 비장의 무기인 이 괴생명체. 그러나 엘리사에게는 고향에서 끌려와 육중한 쇠사슬에 묶인 채 비밀시설의 수조에 감금돼 있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워 보이는 존재’일 뿐이다. 때문에 이 둘이 서로 사랑에 빠지기까지에는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짤막한 말을 걸어주고, 음악을 들려주고, 춤을 춰주는 것, 그 정도다. 하지만 충분하다. 그들 모두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를 찾지 못했던 외로운 존재들이었기에. 이 두 ‘말 못하는’ 외로움이 서로 나누는 교감은 스트릭랜드를 위시한 다른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폭력으로 인해 더욱 선명하게 그 색채를 드러낸다.

그렇게 우리는 영화의 껍질로부터 노른자에 점점 다가간다. 노른자는 그것을 감싸고 있는 물속에서 조용히 유영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밝고 따뜻한 광채를 발산한다. 하지만 잠깐. 껍질에서부터 그 광채까지 다다르려면 우리는 헤엄을 좀 쳐야 한다. 시스템과 파시스트와 괴생명체, 그리고 외로운 사람들이 흘리는 피와 신음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버네사 테일러(<다이버전트>, <왕좌의 게임> 등)와 공동작업한 아름다운 각본, 그 안에 1960년대의 공기를 그대로 재현해낸 미술과 의상, 주제곡 격인 앨리스 페이의 ‘유윌 네버 노’(You'll Never Know)를 위시하여 베니 굿맨과 글렌 밀러를 포함한 1950~60년대 재즈 스코어들과 샹송, 그리고 놀라운 시각효과 같은 재료들을 모두 녹여 하나의 꿈처럼, 동화처럼 흘러가게 한다.

배우 샐리 호킨스의 눈부신 존재감

그리고 우리는 배우들의 연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렛 미 인>, <비지터> 등에서 익히 보여주었던 절대적 외로움의 이미지에 유머러스한 인간미를 얹어 영화 전체에 탄탄한 틀을 치는 리처드 젱킨스의 연기도 그렇거니와, 그리도 철두철미하게 폭력적이고 야비하지만 결국 그 역시 시스템의 외로운 소모품이었음이 드러나는 일련의 과정을 한 차례도 에너지를 떨어뜨리지 않고 줄곧 끌어올리면서 보여주는 스트릭랜드 역의 마이클 섀넌의 연기 역시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샐리 호킨스라는 배우의 존재와 그녀의 연기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엘리사 역에는 오직 그녀만을 생각했다고 밝혔듯, 샐리 호킨스가 아니었다면 엘리사는 그만큼 강한 리얼리티와 설득력을 가진 캐릭터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나 괴생명체가 갇힌 수조에서 음악에 맞춰 빗자루와 양동이를 소품 삼아 추는 그녀의 춤, 리처드 젱킨스와 함께 티브이의 한 장면에 맞춰 소파에 앉은 채 추는 짤막하고 귀여운 탭댄스, 그리고 어떤 대사보다 섬세하고 강한 수화 등 그녀의 몸이 전하는 대사들 덕분에 <셰이프>에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그 어떤 영화보다도 풍부한 색채와 윤기가 흐르게 되었다.

우연히도 이 영화의 시사에 앞서 샐리 호킨스의 또 다른 출연작인 <패딩턴 2>의 시사가 있었다. 그런데 재밌게도 <셰이프>에서는 <패딩턴> 1편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물에 잠긴 욕실’ 장면이 매우 환상적이고도 아름다운 버전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이 장면 속의 엘리사와 괴생명체처럼 우리는 <셰이프>라는 물속에서 완전히 힘을 뺀 채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느림과 빠름, 차가움과 따뜻함, 고요함과 소음, 간지럼과 타격, 상승과 추락 모두를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한때 원래 우리의 체액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몸속에 스며들고 우리는 거의 아무런 저항 없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말하자면 모양을 바꾸는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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