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1 (월)

"겨울의 끝자락, 눈 덮인 문경" 선비들 묵향 그윽한 옛길을 걷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포츠서울

문경새재 제1관문인 주흘관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문경=글·사진 스포츠서울 황철훈기자]경북 문경은 뛰어난 산세와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한다. 백두대간이 빚어낸 명산들로 둘러싸여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경하면 누구나 새재(鳥嶺)를 떠올린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 만큼 높고 험하다는 문경새재는 당시 영남과 한양을 잇는 가장 크고 번성한 영남대로의 요지면서 군사 요충지였다. 부자를 꿈꾸던 보부상이 커다란 등짐을 메고 힘겹게 고개를 넘었고 과거길에 오른 선비들은 장원급제의 꿈을 안고 이 길을 걸었다. 누군가에게는 부귀영화를 꿈꾸며 걸었던 희망의 길이요, 또 누군가에겐 터벅터벅 걸었을 절망의 길이였을 500년 고갯길 이다. 과거에 급제한 이는 금의환향 길로, 열의 아홉은 고개를 떨구며 걸었을 낙방길. 바로 문경새재길이다.

이곳만큼은 겨울이 채 가시지 않았다. 지겹지만 떠나면 아쉬울 겨울의 발목을 붙들기 위해 문경새재길을 갔다.

스포츠서울

문경새재 ‘옛길박물관’에는 선비들이 지니고 다녔던 휴대용 벼루를 비롯해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선비들의 애환이 서린 ‘문경새재’ 과거길을 걷다.
춘삼월이라지만 아직은 겨울이 채 가시지않은 문경 땅 영남대로. 낙동강 유역과 한강을 잇는 영남대로는 당시 나라 안의 가장 큰 길이었다. 그중 조령산을 넘는 문경새재길은 문경과 충북 괴산을 잇는 고갯길로 영남대로 3길 중 가장 빠르고 안전했다. 그 당시 부산(동래)에서 한양까지 추풍령길 16일, 죽령길 15일, 문경새재길은 14일이 걸렸다. 또한 군사들이 지키는 관방시설이 있어 치안이 담보됐다. 또한 조선시대 과거길로 상징되는 길로 선비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특히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선비들은 문경새재길을 고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경(聞慶)이란 지명은 ‘경사스러운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죽령길은 ‘죽죽 미끄러진다’, 추풍령길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여겨 꺼렸다.

스포츠서울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 ‘주흘관’의 또다른 이름은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 앞뒤로 서로 다른 명찰을 달았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문경새재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해 괴나리봇짐 대신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걸었다. 과거 선비들이 걸었던 길가엔 주막 대신 스타벅스가 길손을 유혹한다. 험하다고 악명(?) 높았다던 고갯길은 평탄한 흙길이다. 드넓은 광장이 펼쳐진 길 끝에 거대한 성벽이 좌우로 날개를 펼친 듯 서 있다. 길 왼쪽에는 생태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잠시 후 도착한 성문 앞에 도착하니 주흘관(主屹關)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으로 왜적을 막기 위해 숙종 34년(1708)에 세웠다. 문경새재길에 세워진 3개의 성 모두 왜란을 겪은 후 뒤늦게 세운 것으로 결과적으로 사후약방문 격인 셈이다.

스포츠서울

주흘관을 지나면 돌담장으로 둘러싸인 조령원터가 나타난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주흘관은 앞뒤로 서로 다른 명찰을 달았다. 영남지방으로 향하는 하행길인 주흘관, 반대로 한양으로 올라오는 길은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이다. 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 걷다보면 계곡 건너편에 왕궁과 마을이 나타난다. 수많은 사극과 영화를 촬영한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으로 조선시대의 거리를 정교하게 재현해 놓았다. 오른쪽 길가엔 두꺼운 돌담으로 둘러싸인 조령원터를 볼 수 있다. 조령원은 조선시대에 출장을 가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시설로 현재는 돌담과 함께 목조건물 한 채가 복원되어 당시의 정취를 전하고 있다.

스포츠서울

조선시대 새로 부임한 경상감사가 전임자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받던 정자 ‘교귀정’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조선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산불됴심’ 한글비석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흙길은 기암과 나무, 소담스레 내려앉은 하얀 눈이 어우러져 호젓한 겨울풍경을 그려낸다. 오른쪽엔 마치 여인이 춤사위를 펼친듯한 모습의 소나무가 누울 듯 자리했다. 소나무 옆 팔작지붕을 올린 정자는 교귀정(交龜亭)으로 조선시대 새로 부임한 경상감사가 전임자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받던 곳이다. 1470년경에 세워졌으나 1896년 3월 의병전쟁시 불타 없어진 것을 1999년 6월 복원했다. 제2관문인 조곡관에 이르기 전 조선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비석이 눈길을 끈다. 비석에는 빨간 글씨로 큼지막하게 ‘산불됴심’이 새겨져 있다. 당시 국한문 혼용으로 쓰인 비석은 더러 남아있지만 이처럼 순수 한글비석은 이곳이 유일하다.

스포츠서울

두 번째 관문 조곡관(鳥谷關)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잠시 후 마주한 두 번째 관문 조곡관은 제1관문인 주흘관에 비해 지형이 좁아지고 산세가 험하다. 조곡관(鳥谷關)도 문루 뒤쪽에는 영남제2관(嶺南第二關)이란 현판을 달았다. 2관문인 조곡관에서 3관문인 조령관까지는 4.5㎞의 흙길이 이어진다. 경사가 살짝 느껴지는 정도로 어렵지 않은 길이다. 조곡관을 지나는 길에 길손들의 오아시스 ‘조곡약수터’가 나타난다. 먼 길 떠나는 길손의 갈증과 허기진 배를 대신 채웠으리라 생각하니 물맛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다. 3관문인 조령관 도착 직전 돌탑을 쌓은 듯한 책 바위를 마주한다. 소원을 빌면 장원급제를 한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로 당시 수많은 선비들이 소원을 빌었고 지금도 입시철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은 제1관문과 제2관문과 달리 성곽은 바깥쪽인 북쪽으로 뻗었다. 성문 또한 바깥쪽으로 났다. 북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아내기 위해서다.

제1관문인 주흘관에서 조곡관(제2관문)을 지나 조령관(제3관문)까지 이어지는 6.5㎞의 새재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평탄한 흙길이다. 각 관문에서 관문까지는 1시간, 총 2시간 정도 걸린다.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지는 새재길은 청정 계곡과 함께 기암괴석, 푸른 숲이 절경을 펼친다. 발걸음 닿는 길목에는 수백년 새월 속 켜켜히 쌓인 선인들의 발자취가 향기처럼 스몄다. 발자취가 남긴 향기를 찾아 시간을 걸었다.

스포츠서울

고모산성의 익성인 석현성 ‘진남문’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 ‘토끼비리’는 반질반질 윤이났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위풍당당 ‘고모산성’과 벼랑길 절경 ‘토끼비리’
문경 고모산성은 고모산에 축조된 신라 석축 산성이다. 본성 1256m와 보조 성곽인 익성 390m를 합해 총 1646m 규모에 이른다. 진남휴게소에 차를 주차하고 오른쪽 산길을 걸었다. 10여 분을 오르자 하얀 성곽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모산성의 익성(翼城)인 석현성으로 문경시가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석현성의 왼쪽 성곽은 산비탈을 따라 고모산성에 닿아있다. 오른쪽 성곽길을 따라 걸으면 좁디좁은 벼랑길 ‘토끼비리’다. ‘비리’란 위험한 낭떠러지를 말하는 ‘벼루’의 경상도 사투리로, 남벌에 나선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에서 길을 잃었는데 때마침 달아나는 토끼를 쫓아 길을 내게 되었다 하여 ‘토천(兎遷)’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벼랑길 ‘토끼비리’ 아래에는 유유히 영강이 흐르고 길 위는 너무 가팔라 감히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벼랑길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 탓에 반질반질 윤이 났다. 영남대로 옛길 중 가장 험한 이 길은 영남에서 한양을 가기 위해선 꼭 거쳐야만 했던 길이다.

스포츠서울

진남문을 통과하면 길게 이어진 석현성이 저멀리 고모산성과 닿아있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고모산성 남문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고모산성 성벽길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석현성 안쪽에 들어서 계단으로 이어진 왼쪽 성벽을 올랐다. 성벽은 고모산성 남문까지 이어진다. 눈앞에 펼쳐진 고모산성은 익성으로 쌓아올린 석현성과는 규모 자체가 달랐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거대한 석벽이 그야말로 철옹성이다. 임진왜란 때 산성의 규모에 놀란 왜군이 성이 텅 빈 줄도 모르고 진군을 주저했다고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비록 옛 모습을 복원한 성이지만 당시의 위용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성곽길은 차도 지날 수 있을 만큼 넓다.

스포츠서울

고모산성에 오르면 진남교반이 한눈에 들어온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성곽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영강과 3개의 교량이 마치 미니어처로 꾸며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진남교반(鎭南橋畔)’이다. 다리 주변이란 뜻의 진남교반은 높은 곳에 올라야만 볼 수 있는 진풍경으로 산으로 에워싸인 지형이 마치 움푹 들어간 화산 분화구를 닮았다.

스포츠서울

하늘재 정상석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켜켜이 쌓인 역사를 걷다 ‘하늘재길’
하늘재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로 경북 문경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 미륵리까지 이어지는 2㎞ 길이다. 하늘과 맞닿을 듯 높다 하여 하늘재라 불리지만 실은 해발 525m에 불과한 순하디 순한 오솔길이다. 이 길을 개척한 주인공은 신라 제8대 아달라왕(156년), 1862년 전 일이다. 신라는 이 고갯길을 교두보 삼아 한강으로 진출을 꾀했고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막는 중요 거점으로 삼았다. 신라가 중흥을 꿈꾸며 개척한 이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향하던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도 넘었다. 결국 신라의 영욕을 함께 한 길이다.

스포츠서울

평탄하게 이어지는 ‘하늘재길’은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하늘재길은 경북 문경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 미륵리까지 이어진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하늘재길은 평지에 가까운 완만한 경사길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거리도 2㎞ 남짓해 1시간이면 족하다. 왕복한다 쳐도 2시간, 넉넉잡아 3시간이다. 이 마저도 부담스럽다면 하늘재 정상부근에서 출발해 충주 미륵리 방향으로 내려오면 된다. 문경에서 하늘재 정상까지는 포장이 되어있어 차로 쉽게 이동할 수 있고 그다음부터는 완만한 내리막길이라 식은죽 먹기다. 하늘재 정상부근에 도착해 나무 계단을 오르면 길쭉하고 커다란 돌로 세운 하늘재 정상석이 서있다. 하늘재 정상석 왼쪽에는 하얀 눈이 내려앉은 포암산이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했다.

순한 숲길이라지만 아직은 겨울산길인지라 등산화와 아이젠은 필수다. 또한 신발 안으로 눈이 스미는 것을 막아주는 스패치도 꼭 챙겨야 한다. 하얀 눈이 제법 두껍게 내려앉은 숲길은 마치 솜이불을 덮은 듯 포근해 보인다. 실제 발걸음도 솜이불 위를 걷는 듯 폭신하다. ‘뽀드득 뽀드득’ 발걸음 소리가 아침 정적을 깨운다. 숲 전체를 전세 내 걷는 기분으로 차가운 겨울바람도 싫지가 않다. 오히려 머리가 맑고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깊은 숨을 내쉬어본다. 나무향 가득한 초봄 공기는 마치 폐부를 씻겨내 듯 가슴이 시원하고 상쾌하다.

스포츠서울

‘비엘만 스핀’ 동작을 연상케하는 일명 ‘김연아 소나무’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숲 중간에는 재밌는 볼거리도 있다. 일명 ‘연아 닮은 소나무’로 머리 뒤로 들어 올린 발을 양손으로 잡고 도는 김연아 선수의 전매특허 기술인 ‘비엘만 스핀’ 동작을 빼닮았다. 하늘재길이 끝나갈 무렵 나무숲 사이로 난 하얀길은 계곡을 따라 나란히 이어진다. 계곡을 건너는 조그마한 구름다리를 지나면 이윽고 하늘재길의 종착지인 미륵대원지에 도착한다. 미륵대원지는 고려시대 석굴 사원터로 당간지주, 거북이 모양의 석조귀부,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석등, 석조여래입상 등이 남아있어 당시 화려했던 고려시대 절의 모습을 짐작게 한다.
color@sportsseoul.com

문경 여행정보
스포츠서울

고모산성 입구에 자리한 색다른 문화공강 ‘문경오미자테마터널’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둘러볼만한 곳=
진남휴게소 인근에 자리한 문경오미자테마터널은 540m 길이 폐탄광 터널을 이용해 만든 색다른 문화공간이다. 입구에 커다란 오미자 조형물을 시작으로 판매장과 와인바 카페가 들어섰다. 길게 이어진 터널에는 형형색색 화려한 조명으로 꾸민 별빛터널과 포토존, 트리아트존, 갤러리 등이 이어진다. 터널 끝에는 터널 벽면에 세계 유명건축물을 투사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미디어 파사드도 볼 수 있다. 운영시간은 하절기에는(3~10월) 오전9시30분~오후 8시, 동절기는(11~2월) 오전 9시 30분~오후 7시까지며, 매주 월요일은 쉰다.

스포츠서울

문경의 별미 돼지네막창의 ‘약돌 한우’와 ‘약돌 돼지고기’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먹을만한 곳=문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자리한 ‘돼지네막창’은 문경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맛집으로 문경의 별미 약돌 한우와 약돌 돼지고기를 맛볼 수 있는 집이다. 약돌 돼지란 출하 3개월전부터 약돌(거정석)을 갈아 먹여 생산된 고기로 누린내가 없고 육질과 맛이 뛰어나다.

[기사제보 news@sportsseoul.com]
Copyright ⓒ 스포츠서울&sportsseoul.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