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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스태프가 사는 세상] 김용주 전시디자이너의 플러스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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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국립현대미술관 김용주 기획관의 필통에는 플러스펜만 13자루가 있다. 고유의 손맛을 잃지 않기 위해 모든 도면을 플러스펜을 이용해 직접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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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전시공간 디자이너 김용주 기획관의 필통엔 검정색 플러스펜 10자루가 있다. 초록, 빨강, 파랑색 플러스펜을 합치면 플러스펜만 총 13자루. 그는 전시 공간을 디자인할 때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전부 핸드 드로잉으로 해요. 제 주변에도 핸드 드로잉을 권하고요. 컴퓨터의 그래픽 툴에 익숙해지면 컴퓨터가 구현할 수 있는 한계에 갇혀버립니다. 여기 묶여 자기 손맛을 잃어버리면 결국엔 누가 했는지도 모르는 카피 디자인을 하게 될 수 있어요. 디자이너에게 고유의 드로잉을 갖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김 기획관은 매 전시마다 플러스펜 12자루 들이 한 박스를 다 쓴다. 볼펜이 아닌 플러스펜인 이유는 “강약 조절이 가능하고 선의 표현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검은색으론 평면을 구성하고 색깔이 있는 펜으로는 체크할 사항을 표기, 형광펜은 영역을 칠할 때 사용한다.

플러스펜과 더불어 또 하나의 친구는 몰스킨 노트다. 프랑스 노트 브랜드 몰스킨은 딱딱한 표지와 신축성 있는 밴드가 트레이드 마크로, 작가들이 사랑하는 노트로 유명하다. 새로운 전시 기획이 시작될 때마다 김 기획관은 몰스킨 노트를 펼치고 플러스펜의 뚜껑을 뽑는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일단 하나의 도면을 그린 뒤 다른 생각이 떠올라도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고 기존의 그림 위에 덧그린다는 것이다. “아이디어의 진척을 확인”하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다.

“저는 항상 A에서 B로 갔다가 C로 가고, 마지막에 다시 A로 돌아와요. 하지만 매번 첫 아이디어로 돌아간다고 해서 처음부터 A를 밀고 나가면 안돼요.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반박하는 과정에서 첫 아이디어가 훨씬 단단해지거든요. 전시공간 디자이너는 큐레이터, 작가, 그래픽 디자이너, 관람자까지, 수많은 사람과 협업하고 소통하기 때문에 자신을 포함해 누구든 설득할 수 있어야 해요.”

글ㆍ사진=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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