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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진부한 ‘할리우드 공식’을 거부한 복수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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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쓰리 빌보드

한겨레

<쓰리 빌보드>의 등장인물들은 ‘이쪽’과 ‘저쪽’이라는 경계로 쉽게 나눠지지 않는다.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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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통계를 내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등장한 수많은 ‘복수’ 장르의 영화 중 대다수는 가족, 특히 자식에게 가해진 위해에 대한 복수가 그 주를 이루고 있다. 이유인즉 이 경우 보편적으로 복수를 하게 된 이유가 쉽게 이해되면서 심정적으로도 절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 <쓰리 빌보드>(원제: 미국 미주리주 에빙시 외곽에 세워진 세 개의 광고판) 역시 그런 대다수 ‘복수’영화들의 기본 상황을 깔고 들어간다. 이야기인즉 이렇다. 주인공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 분)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좁은 2차선 도로 빼고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지방 소도시 외곽도로를 지나다가 차를 멈춘다. 그리고 길가에 30년 가까이 방치돼 골격만 앙상하게 남은 3개의 대형 광고판을 유심히 살펴본다. 곧바로 광고판을 관리하는 업체를 찾아가 임대계약을 한 그는 3개의 광고판에 각각 다음과 같은 문구들을 새겨 넣는다. ①‘죽어가는 동안 강간당했다’ ②‘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③‘뭐 하고 있는 거야, 윌러비 서장?’

그는 왜 존경받는 경찰서장을 비난했나

이 설정은 이 영화의 각본가이자 감독인 마틴 맥도나가 20년 전 미국여행을 하면서 실제로 목격했던 광고판을 거의 그대로 영화 속으로 가지고 온 것이다. 당시에는 ‘구글’은커녕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던 터라 그 광고판을 누가 어떻게 세우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을 감독은 끝내 알지 못했다. 하여 감독은 ‘그 광고판을 세운 사람’이라는 미지수에 ‘피해자의 엄마’라는 상수를 대입했다. 이 광고판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방정식을 풀어나가기 시작한 결과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나오게 됐다. 그렇다고 마틴 맥도나가 내놓은 결과물이 단순히 근의 공식에 대입해 간단하게 얻어진 답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이쪽’과 ‘저쪽’이라는 경계로 쉽게 나눠지지 않는다.

감독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
20년 전 여행 도중 발견한 광고판
강간범 못 잡은 경찰 비난하는 내용
이 경험에 상상력 덧입혀 영화화…


주인공 밀드레드는 딸이 죽어가는 동안 강간당한 다음 시신이 불태워져 버려지는 일을 겪은 엄마다. 그는 분노했는가? 물론이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이미 그런 일이 있기 전부터 있어왔던 거다. 본래 그의 가족은 보험 광고에나 등장할 것 같은 ‘사랑과 웃음 넘치는 가족’ 같은 유형이 아니다. 문제의 비극적 사건이 터지기 직전 딸과의 마지막 말다툼(여기에서 밀드레드의 딸은 엄마를 ‘bi**h’라고 부르고, 밀드레드 역시 그 못지않게 독한 말을 딸에게 돌려준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가슴에 뽑을 수 없는 대못으로 박힌다) 장면 또는 19살짜리 여자아이와 바람이 나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간 남편이 잠깐 집에 들른 동안 벌어진 짧고 격한 충돌 장면 등으로 나타나는 밀드레드의 과거는, 이미 사건 이전부터 그녀의 삶이 충분히 망가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의 분노에 대해 우리는 조금씩 의심을 품게 된다. 그가 지역사회의 존경받는 경찰서장, 그것도 췌장암으로 몇달 되지 않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윌러비 서장’(우디 해럴슨)을 비난하는 광고판을 세우자 그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비난이 들끓기 시작한다. 광고판을 내리라고 설득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온 신부에게 그는 ‘당신네들 사제 패거리들이 아동 성추행을 일삼아 왔으니 그들과 한패인 당신도 똑같아’라는 말로 쫓아내 버린다. 이어 그의 광고판에 항의 민원을 넣은 치과의사가 ‘노보케인’(치과용 국부마취제) 주사도 없이 이를 뽑으려 들자 충분한 것 이상의 응징을 가하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에게 그나마 호감을 품은 난쟁이 ‘제임스’(피터 딩클리지)에게 모욕감을 주고, 그에게 물병을 던진 학생들에게 가차 없는 폭력을 가하는 밀드레드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분노가 딸의 처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분노인지, 아니면 그의 인생 자체에 대한 분노인지를 점점 구별해내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이를 구분짓는 뚜렷한 경계선 같은 것이 실제로 존재할까? 그런 건 진부한 ‘할리우드’식 이야기에나 존재하는 헛소리라는 게 이 영화의 기본 입장이다. 마틴 맥도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매키 식 스토리텔링 같은 건 그저 공식이며, 공식이란 건 엿같이 지루한 겁니다. 그런 것들 덕분에 우린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아는 마블이나 디시(DC) 영화나 보고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건 ‘이번엔 어떤 컴퓨터 효과를 써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려나?’를 궁금해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이러한 마틴 맥도나의 공식에 대한 혐오는 영화 초반, 밀드레드의 대척점에 서 있는 듯 보이는 캐릭터인 ‘딕슨’(샘 록웰)에 대해서도 어김없이 적용됐다. 흑인과 아이를 패길 일삼는 다혈질의 폭력적인 경찰인 딕슨은 자신이 내심 존경하고 따르는 윌러비 서장을 들쑤시는 밀드레드를 괴롭히는 일에 집중한다. 간판을 관리하는 광고가게 점주를 위협하고, 꼬투리를 잡아 밀드레드의 직장 동료를 체포하고, 당연하지만 밀드레드 본인에게도 시비를 건다. 더구나 그는 마마보이다. ‘그 나이에’ 엄마에게 귀가시간 허락을 받고 ‘엄마’라는 말만 나오면 말을 더듬는 마마보이. 한마디로 세상에 저런 찌질이도 또 없지 싶은 캐릭터인 것이다.

그러나 딕슨 역시 밀드레드의 반대쪽에서 권위주의와 관료주의, 그리고 악의와 폭력을 상징하는 악의 축 캐릭터에만 머물지 않는다. 영화가 마련해둔 어느 극적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관객은 그의 결점을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그를 ‘저쪽’으로 밀쳐뒀던 경계선이 사라졌음을 깨닫게 된다. 이렇듯 뻔한 흐름을 따르지 않는 뱃심을 가진 영화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 마법 같은 순간. 그것을 끌어내는 또 한명의 핵심 캐릭터가 바로 밀드레드의 광고판에서 실명이 거론되는 윌러비 서장이다. 성격과 배경에서 밀드레드와 딕슨에 비하면 비교적 평이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캐릭터는 또 다른 방식을 통해 로버트 매키 식 공식에서 벗어나며 영화의 자전축을 흔들어놓는다.



딸 잃은 엄마의 ‘복수극’이지만
선악 구분짓지 않는 신선한 연출
리얼리티 위해 리허설 거부한
주연 맥도먼드의 연기도 일품


그러고 보면 <쓰리 빌보드>에서는 ‘주요 등장인물은 반드시 영화 초반에 소개돼야 한다’는 공식도 어김없이 깨진다. 적어도 영화에서 적잖은 비중을 가지는 두 명의 캐릭터는 영화 중반이 한참 지난 뒤에야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흔해빠진 모정의 ‘복수’영화에서 벗어나는 결정적인 순간은 엔딩이다. 아마도 누군가는 ‘뭐야? 이렇게 끝?’이라는 탄식을 흘릴지도 모를 이 장면은 우리가 단단한 벽을 쌓아 올려 ‘이쪽’과 ‘저쪽’이라는 정해놓았던 경계선을 보여주는 대신 의미심장한 유머로써 미묘하게 속삭인다. 이런 식으로 <쓰리 빌보드>는 대개의 복수영화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결론적 훈계로부터 벗어난다.

사전 리허설을 거부한 주연배우

마틴 맥도나의 흥미진진한 시나리오만큼이나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 또한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녀가 이 역을 거절했더라면 완전히 엿 될 뻔했죠”라는 감독의 말처럼, 다름도 아닌 우디 해럴슨마저도 압도돼 보일 정도로 강력하고 깊이 있는 연기를 한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유머와 분노, 그리고 슬픔과 화해가 뒤얽힌 이 멋진 이야기를 이렇게 깊이 있고 생생한 해상도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듣자 하니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밀드레드와 충돌하는) 다른 캐릭터들과의 친근감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 사전 리허설을 거부한 것 때문에 감독과 기싸움을 좀 했던 모양인데,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녀의 선택은 전적으로 옳았다.

더불어 어는점부터 끓는점까지 이 한 영화에서 모두 아우르고 있는 샘 록웰의 연기 또한 맥도먼드만큼이나 폭발적이다. 초반에는 영화의 주변부를 떠도는 듯 보이다가 어느새 중심이 되어 있는 딕슨 캐릭터 역을 가뿐히 소화하는 그로 인해 영화는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 배우들이 보여준 이런 출중한 연기들 역시 로버트 매키 식 스토리텔링 공식에 넣어서는 결코 출력해낼 수 없는 것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겠다.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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