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의 고장 정도로 알려졌던 경북 의성군의 수식어가 달라졌다.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거머쥔 여자 컬링 국가대표 덕분이다. 컬링 선수 4명의 고향으로 알려지면서 위상은 높아졌지만 5만3000명이 사는 농촌은 달라진 게 없다. 봄이면 어김없이 농민 일손이 바빠지고, 4월에는 어김없이 산수유꽃이 만발한다.
'산수유마을'로 불리는 경북 의성 사곡면 화전리에 산수유꽃이 활짝 피었다. 산수유마을에는 수령 440년에 달하는 노거수를 비롯해 산수유나무 약 10만 그루가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달 중순까지 만개한 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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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꽃 활짝 핀 의성 산수유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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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 들어선 의성읍을 벗어나자마자 이곳이 산수유의 고장임을 알려주는 풍경이 펼쳐졌다. 912번 지방도 가로수가 죄 산수유나무였다. 심은 지 얼마 안 된 키 작은 나무들이었지만 노란 꽃망울이 잔뜩 피어있었다.
20분 만에 사곡면 화전리, 산수유마을 어귀에 다다랐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봤던 한 장면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혜원(김태리)이 자전거 타고 좁은 농로를 달리는 장면. 길 왼편에는 초록 마늘밭이 싱그럽고, 오른편엔 어른 키의 세 배는 족히 넘는 산수유나무가 샛노란 꽃을 틔운 장면을 여기서 촬영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대부분 경북 군위에서 촬영했다. 주인공 혜원(김태리)이 산수유꽃 만발한 농로를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장면은 의성 산수유마을에서 촬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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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는 20~30개 꽃이 한 뭉텅이로 피는 모습 뿐 아니라 나무 모양도 독특하다. 줄기가 두툼한 아름드리가 아니라 수많은 갈래로 이뤄졌다. 가장 오래된 나무는 줄기가 23개에 달한다. 이 나무 한 그루에서 산수유 열매 100근(약 60㎏)이 난다. 씨를 뺀 무게다. “지금은 농기구가 좋아져 힘 덜 들이고 산수유를 따지만 어렸을 땐 나무에 올라타 열매를 따고 한 알 한 알 과육을 벗겨냈지요. 나뭇가지가 보기보다 엄청 억세거든요.” 노 국장이 가지 하나를 부러뜨릴 듯 꺾었는데도 멀쩡했다.
화전2·3리에는 수령 300년이 넘는 산수유나무만 3만5000그루에 달한다. 비교적 최근에 심은 나무까지 더하면 10만 그루가 넘는다. 개울가와 논둑 뿐 아니라 동구길, 산등성이도 노랗게 물들었다.
사곡면 화전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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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넓은 평야가 있는 화전 3리와 달리 산골짜기에 들어선 화전 2리는 훨씬 아기자기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려있고 다래넝쿨이 많아 예부터 ‘숲실’로 불리던 마을이다. 마을 뒷산 전망대에 오르니 아늑한 마을 풍경이 고스란히 한눈에 들어왔다. 어느 방향을 둘러봐도 골짜기마다 노란 물감을 뿌려 놓은 듯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화전2리 마을. 골짜기에 들어앉은 마을이어서 예부터 '숲실'이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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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마다 노란 물감을 뿌려놓은 것처럼 산수유꽃이 만발했다. 가을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보는 것도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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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마을을 먹여 살리는 건 산수유만이 아니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작물은 마늘이다. 화전리 주민 수입의 80%가 마늘이란다. 행사 음식을 준비하던 임순자(71) 할머니가 마늘 자랑에 열을 올렸다. “의성 마늘 먹다가 다른 거 먹으면 영 심심허지. 컬링 선수들이 꿀에 절인 마늘 먹고 힘냈다잖소.”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다. 의성 마늘은 일교차 큰 지역에서 자라는 ‘한지(寒地)형 마늘’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난지형보다 씨알이 작고 옹골차다. 매운맛과 단맛이 강하고 살균작용을 하는 ‘알리신’ 함유량이 많다. 사화산(死火山)인 금성산(530m)에서 나온 화산 토질과 큰 일교차가 의성 마늘 맛의 비결이란다.
의성에서는 주로 '한지형 마늘'을 재배한다. 일교차 큰 지역에서 자라는 종으로, 맵고 단맛이 강하다. |
산수유와 마늘 말고도 의성의 자랑거리는 많다. 의성을 전국에 알린 게 컬링이지만 의성컬링센터는 일반인이 이용할 수 없다(오는 9월 일반인을 위한 컬링체험장이 개장한다). 대신 문화유산이 많다. 삼한시대 초기 국가인 ‘조문국’의 유적, 천년고찰 고운사가 유명한데 동선을 잘 짜야 한다. 의성 면적은 서울의 두 배에 가깝고 산길과 비좁은 도로가 많아서다.
여자 컬링 대표팀이 지난 3월12일 고운사에서 열린 축하행사를 마친 뒤 명상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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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고운사가 있다. 조계종 16교구 본사다. 컬링 국가대표 선수들이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예선에서 탈락한 뒤, 그리고 평창 올림픽이 끝난 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68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뒤, 고운 최치원(587~900)이 가운루·우화루를 증축했다. 그의 호로 절 이름을 지은 이유다. 템플스테이, 사찰음식체험 같은 일반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은데 봄에는 느긋하게 산책만 해도 좋다. 노루귀 같은 야생화가 지천이다. 가운루 창에 비친 산사의 풍경이 근사하고, 우화루 뒷마당에 앉으면 지붕들 위로 보이는 등운산의 자태가 곱다.
절 곳곳에 목련꽃이 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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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루 뒷마당에서 본 등운산. 고분처럼 봉긋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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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고운사에서 산책을 하다가 만난 노루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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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3월 31일 시작한 의성 산수유마을 꽃맞이행사가 오는 8일까지 이어진다. 주민들은 이달 중순까지 활짝 핀 산수유꽃을 볼 수 있을 거라 한다. 서울시청에서 산수유마을까지는 290㎞, 자동차로 약 3시간 걸린다. 마을에는 마땅한 숙소가 없다. 하룻밤 묵는다면 의성군청 주변 모텔이나 산운마을·사촌마을에 있는 한옥을 이용하면 된다. 안동 가는 길에 금봉자연휴양림도 있다. 행사장에서 칼국수·비빔밥·파전 등을 팔지만 맛집을 찾는다면 역시 군청이 있는 의성읍으로 가야 한다. 소머리국밥(7000원)을 파는 들밥집(054-834-2557), 돼지 모둠숯불구이(1인분 8000원)가 맛있는 문소식육식당(054-834-2217)을 추천할 만하다. 시장 한편에는 연탄불에 닭발(1만원)을 굽는 식당이 모여 있다.
의성읍 문소식육식당에서 먹은 마을양념모둠숯불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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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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