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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박수찬의 軍] 트럼프 정부, 이스라엘처럼 대북 ‘코피 작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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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미국 공군 F-22 스텔스 전투기가 2015년 10월 서울 에어쇼에 참가해 시범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공군 제공


비밀이 아닌 비밀. 2007년 9월 시리아 동부 사막에 건설되던 원자로가 완공단계에서 외부의 공격을 받아 파괴된 사건은 공식적으로는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중동 정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사건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할 정도로 국제사회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스라엘군은 고집스럽게 침묵을 지켰다.

작전이 이뤄진 지 10여년이 흐른 지난달 21일 이스라엘군은 “2007년 9월 시리아가 동부 데이르 에조르주 사막 지역에 건설하던 원자로를 공습으로 파괴했다”고 인정하며 관련 자료를 처음 공개했다. 시리아가 건설하던 원자로와 공습 후 파괴된 원자로를 하늘에서 촬영한 사진, 공습 과정을 담은 영상 등이 대거 포함됐다.

이스라엘이 시리아 원자로 공습을 인정하면서 한때 수그러들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제한적 군사옵션으로 거론된 코피((Bloody Nose) 작전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코피 작전의 실체는 물론 효용성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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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공군 F-16 전투기가 2009년 7월 17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에서 열린 레드 플래그 훈련에 참가해 비행하고 있다. 미국 공군 제공


◆시리아 공습 전격 인정…이란 공격 능력 과시 분석

상자 밖(Outside the Box) 작전이라 불린 공습 작전을 위해 이스라엘 공군은 2007년 9월 5일 오후 10시30분부터 이튿날 오전 2시30분까지 4시간 동안 F-16 전투기 4대와 F-15 전투기 4대를 투입했다. 사전에 침투해 원자로 인근에 매복해있던 이스라엘 특수전부대가 레이저 표적지시기로 공습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최종 확인해 전투기 편대에 전달했다. F-16의 호위를 받은 F-15는 정밀유도폭탄을 투하, 원자로를 일격에 파괴했다.

시리아가 북한의 지원으로 건설하던 원자로는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북한 영변 핵시설과 매우 유사한 구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로가 가동되면 북한처럼 핵무기 개발에 쓰이는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스라엘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와 관련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2011년 출간된 회고록 ‘결정의 순간’에서 “당시 이스라엘군의 타격 목표는 시리아가 북한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건설하던 원자로였다”며 “이스라엘은 부시 행정부에 공습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직접 공습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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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공군이 2007년 9월 5일 공습을 감행한 직후 파괴된 시리아 원자로. 이스라엘군 제공


이스라엘이 10여년만에 시리아 원자로 공습을 인정한 것은 이란을 의식한 행보라는 관측이 많다. 군사행동을 통해 시리아의 핵개발을 좌절시킨 선례가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서 이란이 핵개발을 재개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전임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 유럽, 이란이 체결한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핵협정에 따라 핵개발을 동결하고 있던 이란은 미국이 탈퇴할 경우 핵개발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개발에 성공한 상황에서 경량화, 소형화된 핵탄두만 확보하면 핵 억제력을 갖추게 된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협정 체결 전부터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다양한 공작을 벌여왔다. 비밀정보기관 모사드는 2000년대부터 10여년 동안 이란 핵과학자를 연쇄적으로 암살했으며, 이란이 밀반입하는 재료에 불량품을 섞었다. 스턱스넷이라는 강력한 컴퓨터 바이러스로 이란 고농축우라늄(HEU) 원심분리기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2012년 이란과 인접한 아제르바이잔에 비행장을 확보, 독자적인 공습을 감행할 준비를 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가 개선되면서 사우디 영공을 경유해 이란을 공습하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은 시리아와 다르다”, 코피 작전 쉽지 않아

이스라엘이 시리아 원자로 공습 사실을 인정하자 북한 핵시설을 제한적으로 폭격하는 코피(Bloody Nose)작전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코피 작전을 부인했지만 이스라엘의 결단이 시리아의 핵무기 개발 의도를 좌절시킨 것처럼 북한 핵시설을 대상으로 제한적 타격을 감행하면 북한의 핵보유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이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감행하면서 북한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자 제한적 군사옵션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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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군 B-1B 전략폭격기가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훈련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미국 태평양사령부 제공


올해 들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 대화 분위기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이어지자 이같은 기류는 잠시 주춤했지만 대북 강경파로 분류되는 존 볼턴 전 주(駐)유엔 미국 대사가 지난달 23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되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코피 작전을 포함한 대북 군사옵션이 가동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미국이 제한적 대북 타격을 감행한다면 미국 본토에서 군사력을 증강하지 않고도 작전을 실행할 수 있다. 북한의 방공망은 미국 공군의 스텔스 폭격기를 탐지, 요격할 능력이 없다. 반면 미국은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 있는 B-1B를 비롯한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만 동원해도 평안북도 영변 일대 핵시설은 충분히 타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코피 작전은 시리아 공습보다 실효성이 훨씬 낮은 반면 위험은 더 높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큰 효과를 거둔 것은 시리아 핵시설이 하나뿐이었고 가동되기 전 단계였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은 평안북도 영변의 플루토늄 추출용 5MW 원자로와 고농축우라늄(HEU)을 생산하는 원심분리기 외에 제3의 핵시설을 가동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국이 영변 핵시설을 대상으로 코피 작전을 감행한 뒤에도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지속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설령 북한 내 핵시설을 모두 찾아내 파괴해도 이미 추출된 핵물질과 생산된 핵탄두의 행방을 추적해 확보하지 못하면 코피 작전은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다. 공습 과정에서 핵물질이 누출될 경우 발생할 방사능 피해는 정확한 규모를 산출하기 힘들다.

이같은 위험을 조금이나마 낮추기 위해서는 북한 핵 관련 정보의 양과 정확도가 매우 높아야 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정보수집활동이 가장 어려운 국가인 북한에서도 극비로 취급되는 핵 관련 정보를 미국이 제대로 수집하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코피 작전이 북한의 반격을 불러일으킬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일반적으로 정밀타격수단을 동원한 제한적 공습은 대규모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1981년 7월 이스라엘이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를 공습했을 때 이라크는 반격에 나서지 않았다. 시리아도 원자로가 파괴됐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행동은 삼갔다. 당시 이라크는 이슬람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던 이란과 긴장관계에 있었고, 이스라엘 공격에 필요한 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도 거의 없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여러 차례 패했다. 이스라엘의 핵무기에 맞서 화학무기를 대량 비축하고 있었지만 이를 사용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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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152mm 장사정포가 평양 김일성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노동신문 제공


반면 북한은 코피 작전이 단행될 경우 군사적 대응을 감행할 능력과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까지 탄도미사일과 장사정포 발사를 지속하며 군사적 운용능력을 키워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적들의 핵전쟁책동에 대처한 즉시적인 핵반격작전태세를 항상 유지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고 존엄의 발언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북한군은 코피 작전이 현실화될 경우 전략군이 운용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 15를 비롯한 탄도미사일과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배치된 장사정포를 동원해 한국, 미국, 일본을 상대로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를 저지하려면 공습 초기 북한군 탄도미사일과 지휘통제 시설도 함께 마비시켜야 한다. 이는 사실상 전면전이자 선제공격이다.

코피 작전이 확대되면 국제법 위반 여부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유엔 헌장 2조 4항에 따르면, 모든 유엔 회원국은 국제관계에서 다른 나라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 또는 유엔의 목적과 양립하지 않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무력 위협 혹은 행사를 삼가도록 하고 있다.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 유엔군사령부 소속으로 한반도 유사시 병력과 장비를 파견해야 할 유럽 국가들이 지원을 거부할 위험도 있다.

군 소식통은 “코피 작전은 대북 압박용으로 유효할 수 있으나 군사적 효용성은 미지수”라며 “만약 미국이 군사옵션을 검토한다면 코피 작전보다 규모와 위력이 큰 옵션이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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