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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ESC] 이탈리아 중북부로 ‘느린 여행’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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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라이프 레시피|이기적인 여행

한곳에서 오래 머무르는 슬로 트래블 인기

전통 보존, 토스카나·에밀리아로마냐 눈길

1년에 한번 열리는 야외 공연장

고성 호텔, 와이너리 등 욜로족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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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마조레 광장’.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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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것은? 영화 <로마의 휴일>이나 콜로세움 같은 유적지, 그리고 수상도시 베네치아 정도다. 예전엔 사진 찍고 떠나기 바빴다. 더 많이 보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나라들이 인접한 유럽에서 오직 이탈리아만 둘러보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 큰맘 먹어야 갈 수 있는 데가 유럽이 아니던가! 하지만 최근엔 여행 행태가 바뀌고 있다. 한곳에 오래 머물면서 그 나라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그러기엔 이탈리아만한 나라도 없다. ‘슬로 트래블’ 여행지로 첫손가락에 꼽힌다.

‘슬로 트래블’은 여러 나라가 아닌, 한 나라 또는 한 나라의 특정 지역에서 오래 머무르면서 삶을 관조하는 ‘느린 여행’을 말한다. 슬로 트래블 대상지로 이탈리아의 중북부 지역인 토스카나주와 에밀리아로마냐주가 최근 특히 각광 받고 있다. 이미 알려진 관광지와는 다른 전통적인 이탈리아의 꽁꽁 숨겨진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각)부터 7일간 이 두 곳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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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보첼리의 고향

토스카나에서 가장 큰 도시인 피렌체에서 남동쪽으로 50여㎞를 달리면 이름도 생소한 라야티코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차로 1시간~1시간30분 거리다. 가는 길은 매력적이다. 푸릇푸릇한 목초로 도배된 낮은 언덕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새파란 하늘과 맞닿은 초록의 물결은 저절로 심신의 안정을 준다. 중간중간 바이크와 자전거 여행객들이 보인다. 이탈리아에서도 아름다운 라이딩 코스로 소문난 곳이다.

라야티코는 인구 1300여명의 작은 산속 마을이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사나 싶을 정도로 외딴곳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마을에 접어들면서 익숙한 얼굴이 인쇄된 광고판을 연속해서 볼 수 있다. 바로 팝페라(팝+오페라)라는 장르를 개척한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다. 그가 바로 이곳 라야티코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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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야티코 ‘침묵의 극장’. 이정국 기자


라야티코가 유명해진 것은 보첼리의 고향인 까닭도 있지만, 더욱 유명해지게 된 건 1년에 한번 보첼리가 여는 콘서트가 ‘침묵의 극장’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침묵의 극장은 보첼리가 건립한 야외 공연장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목초 평야에 작은 원형 무대만 설치돼 있다. 조형물은 매년 바뀌는데 이것 또한 명물이다. 지난해 설치된 대형 빨간 고추 조형물은 초록색 대지 위에 빨간 점이 찍힌 듯 보여 강렬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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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조형물이 인상적인 라야티코 ‘침묵의 극장’ 무대. 이정국 기자


콘서트는 항상 매진이다. 오는 7월30일에 열리는 공연도 지난 1월 이미 매진됐다고 한다. 공연이 열리는 날엔 관광객 1만여명이 이 마을을 찾는다. 그 가운데 80%가 외국 관광객이다. 라야티코의 알레시오 바르바피에리 시장은 “1960년 이후 도시로 사람들이 빠져나가 활기를 잃은 마을이었지만, 침묵의 극장이 생긴 뒤로 명소가 됐다. 한해 2만여명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말했다. 왜 침묵의 극장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바르바피에리 시장은 손짓을 하며 “주변을 보라, 자연의 침묵이 느껴지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이 극장은 1년에 단 하루, 보첼리의 콘서트가 열리는 날만 소리를 낸다.

▶가는 길: 로마공항을 경유, 피렌체공항과 피사공항에 도착해 자동차를 빌려 내비게이션에서 ‘Teatro Del silenzio’(침묵의 극장)을 검색하면 된다. 기차 등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피렌체에선 차로 1시간~1시간30분.

▶먹을 곳: 다 파스퀴노. 시장이 추천하는 지역 맛집. 구운 소시지와 토끼 고기가 들어간 넙적한 모양의 파스타가 유명. (Via Volterrana 306, 56030, Lajatico/+39 0587 6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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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재래시장 안의 노천 술집. 이정국 기자


노천 술집에서 와인 한잔

토스카나 북쪽에 있는 아펜니노산맥을 넘어가면 에밀리아로마냐가 나온다. 에밀리아로마냐에서 가장 큰 도시는 볼로냐다. 우리에겐 ‘볼로녜세 파스타’(볼로냐식 파스타)로 더 유명한 곳이다. 간 고기를 듬뿍 넣어 만든 파스타 말이다. 볼로냐의 매력은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데 있다. 유럽에서 중세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기도 하다. 1500년대부터 교황령(로마 교황이 통치하는 세속적인 영토)으로 선포돼, 이탈리아가 통일이 된 1800년대 중반까지 전쟁의 포화를 피해갔기 때문이다.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유서 깊은 도시라고 해서 노회한 분위기는 아니다. 도시 중앙에 있는 마조레 광장에 가면 바닥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은 세계 최초의 근대적 대학인 볼로냐대학교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학 교육이 발전한 곳이라 청년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도시 전체가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넘친다. 곳곳에서 젊은 연인들이 키스를 하고 손잡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유럽에 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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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센다답(사진 왼쪽)과 아시넬탑.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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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레 광장에서 20여분 걸으면 커다란 두 개의 탑을 만날 수 있다. 아시넬리탑과 가리센다탑이다. 가리센다는 붕괴 위험 때문에 출입이 금지돼 있고 아시넬리는 입장료(3유로. 약 3900원)를 내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높이는 98m다. 탑에 설치된 486개의 나무 계단을 빙글빙글 돌면서 올라가는데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20여분 정도 걸린다.

꼭대기에 도착하면 볼로냐의 전경이 펼쳐진다. 탑에서 내려오면 바로 볼로냐 재래시장이 이어진다. 식사하기 전 출출하다면 잠시 이 시장의 선술집에 앉아 이곳의 명물인 모르타델라(돼지고기를 갈아서 만든 햄)에 와인 한잔 하도록 하자.

▶가는 길: 볼로냐에도 국제공항이 있지만 한국에서 가는 직항로는 없다. 피렌체나 밀라노 공항에서 기차를 타 볼로냐 중앙역에서 내리는 게 가장 좋다. 피렌체에서 기차로 45분, 밀라노에선 1시간 정도 걸린다. 가격은 피렌체 기준 9.45유로부터(한화 약 7800원)인데 고속, 완행, 시간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

▶먹을 곳: 볼로냐 관광청이 추천하는 아 발루스(A balus). ‘볼로녜세 라자냐’ 같은 현지 전통음식을 맛보기 좋은 곳이다. (Via del Borgo di San Pietro 9/2A, 40126 Bologna/+39 051-237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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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코발디 카스텔조콘도 와이너리의 포도밭. 이정국 기자


시간이 멎는 와이너리의 매력

요즘 이탈리아에서 뜨는 관광 상품은 와이너리 투어라고 한다. 한곳에 오래 머무는 슬로 트래블 트렌드에 힘입어서다. 이탈리아 현지 자유여행 전문 여행사인 투어핀의 이용직 대표는 “이탈리아에서 개인이 와이너리 투어 하기가 쉽지 않은 탓인지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와이너리마다 맛과 특징이 다르다. 예술품 같은 와이너리가 있는가 하면 양조과학을 내세운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쌍벽을 이루는 와인 강대국이다. 세계적으로 최고급으로 인정받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을 생산하는 토스카나의 ‘프레스코발디 카스텔조콘도’ 와이너리와 최근 급부상중인 에밀리아로마냐의 ‘몬테 델레 비녜’를 다녀왔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토스카나의 몬탈치노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이탈리아 토착종인 브루넬로를 사용한 고급 와인이다. 이탈리아 현지에서도 저렴한 것이 50유로(한화 약 6만5000원)일 정도로 고급 와인이다. 1800년대부터 이어진 카스텔조콘도 와이너리는 보기에도 입이 떡 벌어지는 규모와 전통을 자랑한다. 포도 재배 면적이 30㎢에 달한다. 특히 미술관처럼 꾸민 지하 와인 저장고의 미적 완성도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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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델리 비녜 와이너리. 이정국 기자


반면, 이탈리아 와이너리치고는 뒤늦은 1983년에 생산을 시작했을 정도로 역사가 짧은 몬테 델레 비녜는 카베르네 소비뇽 같은 외래 품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자생 품종을 고집하는 전통적인 와이너리들이 보기엔 파격적인 시도다. 도전은 인정받는 중이다. 지난해부터 이곳 와인이 이탈리아의 프랑스 미식 평가서 <미쉐린가이드>에 해당하는 <감베로 로소>가 발간한 와인 가이드북에서 와인 잔 3개(미쉐린가이드의 별 3개와 같은 개념)를 받고 있다.

양쪽의 맛을 비교하면,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깊고 그윽하고, 몬테 델레 비녜는 산뜻한 맛이다. 값도 10유로(한화 약 1만3000원)대에서 시작해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보다는 저렴하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보면서 하는 시음회는 여행객에게 시간이 멈춘 듯한 경험을 안겨준다.

▶와이너리 찾아가는 법: 와이너리는 대부분 도시에서 먼 농촌에 있는데다, 일정 인원이 모집돼야 성사되기 때문에 개인이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 여행사에 문의를 하는 게 편하고 안전하다. 문의 투어핀 (02)766-6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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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비아노 성에서 내려다본 전경. 이정국 기자


고성에서의 하루

고성에서 하룻밤? 말만 들어도 설레지 않는가. 에밀리아로마냐 파르마시 외곽인 살소마조레 테르메에 위치한 카스텔로 디 타비아노 호텔은 고성과 숙소를 접목시켜 독특한 체험을 제공하는 곳이다. 애초 11세기에 전쟁을 대비해 세워진 성이었으나 이를 19세기에 한 귀족 가문이 사들여 리조트로 바꾸었다. 성은 19세기 귀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원형을 그대로 보존했다. 40여분 동안의 성 투어(입장료 9유로. 한화 약 1만1000원)를 하는 동안 여기저기 탄성이 터진다. 귀족들이 쓰던 식기와 가구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그 아름다움이 최근 생산되는 공산품하곤 차원이 다르다. 한적한 시 외곽이라 호텔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초원이다. 방 안에서 보이는, 조명을 받은 고성의 야경도 놓쳐선 안 될 풍경이다. 1박 숙박료는 한화로 10만원 후반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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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타비아노 성의 내부. 이정국 기자


▶가는 길: 인근의 도시는 30㎞ 떨어져 있는 파르마다. 그곳에서 택시나 렌터카를 이용하는 게 좋다. (Via Tabiano Castello, 4 Salsomaggiore Terme PR/+39-348-8955378)

▶먹을 곳: 호텔 안의 레스토랑인 안티코 카세이피초의 음식과 서비스가 훌륭하다. 특히 밀반죽을 기타 줄로 만든 제면기 위에서 밀어 면을 뽑는 스파게티 시타르는 식감이 색다르고 맛깔스럽다.

토스카나 에밀리아로마냐/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도움 에밀리아로마냐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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