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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화제의 법조인]장경욱 변호사, 세상에 끄집어 낸 고문조작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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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가해자가 진실을 이야기해야 교훈이 됩니다"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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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8월 서울 장지동 보안사령부 수사분실. 한 청년의 고통 섞인 비명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약관을 갓 넘긴 젊은이는 보안사 베테랑 수사관의 고문으로 들어보지도 못한 간첩죄를 강요받았다. 그로부터 30년이 훌쩍 지난 후 이들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신분이 바뀐채 다시 법정에서 마주했다.

법무법인 상록의 장경욱 변호사(50·사법연수원 29기·사진)는 어느 개인의 비극으로 사라질 뻔한 이 사건을 기어코 세상으로 끄집어냈다.

"고문이 어떤 식으로 자행되고 그런 시설들은 왜, 어떻게 만들어져 운영되는지 가해자들이 직접 이야기해야 기억으로 남아 교훈이 될 텐데 정작 피해자들 입에서만 나오고 있습니다"
장 변호사는 전직 보안사 수사관 고병천씨에 대해 착잡한 심경을 털어 놓았다. 그는 재일동포 간첩단 조작사건의 피해자 윤정헌씨의 재심 사건에서 유일한 보안사 측 증인으로 나와 "고문한 사실이 없다"고 거짓 증언한 혐의를 받는 인물이다.

윤씨 사건은 대법원 재심 결과 무죄가 확정됐지만 여전히 큰 산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가해자에 대한 단죄였다.

장 변호사는 "고씨를 위증으로 고소하는 데 회의적이었다"며 "전례가 없었기 때문인데 추재엽 전 서울 양천구청장이 보안사 수사관 시절 고문을 한 사실을 부인해 실형을 선고받은 것을 보고 가능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추 전 구청장은 지난 2010년 선거 과정에서 자신을 고문수사관이라고 지목한 상대 후보자 측과 소송전을 벌이다 재판에서 고문을 부인한 게 위증으로 인정돼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어렵사리 고씨를 위증죄로 고소했지만, 그를 재판에 넘기기까지는 험난했다. 장 변호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고소했더니 공안부로 갔다. 검사는 변호인도 없는 상태에서 고씨와 윤씨를 공안검사실에서 대질하게 했다"며 "윤씨가 자신을 고문한 사람과 마주하자 당시 과거 기억이 떠올라 무서운 마음에 전화를 해왔다. 대질 후 추가조사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소시효는 다가오고 민사소송 소멸시효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보통 형사소송 판결문을 증거로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할 수 없이 고씨를 상대로 민사소송부터 걸었다"고 말했다.

반전은 기대하지 않은 민사재판에서 일어났다. 1심 재판부는 고씨가 고문에 가담했고 윤씨의 재심에서 허위 진술했다고 판단했다. 고씨는 항소를 포기했다.

장 변호사는 "곧바로 민사판결문을 담당 검사에게 증거로 냈다"며 "공소시효가 다가와 검사에게 '기소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후 고씨는 공소시효를 단 이틀 남기고 재판에 넘겨졌다.

장 변호사는 "형사재판에서 사죄의 진정성 없이 자백하고 집행유예 전략으로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며 "아니나 다를까 고씨는 두 번째 재판에서 자백했다"고 설명했다.

장 변호사의 눈에 비친 당시 고씨는 빠져나가기 급급한 모습이었다. 마지못해 범죄 인정과 추상적인 사죄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장 변호사는 "고문을 인정한다면 어떤 지시로 어떻게 고문했는지, 피해자는 더 있는지, 공범도 이실직고해야 했다"며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받지 않는데도 결국 말뿐인 사과만 내놓았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반성 없는 고씨를 법정구속했다.

그러나 아직 제2의 윤정헌씨들이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채 숨어 지내고 있다. 장 변호사는 "간첩조작 사건으로 피해를 본 재일동포들은 한국에 대한 신뢰가 약하다"며 "법정에 서는 데 겁부터 내고 재심을 요청해도 '한국에서 하면 되겠어?'라는 반응"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일부는 자신이 국가폭력의 피해자라고 판단하지 못한채 똑같이 고문에 의해 허위 밀고한 사람만 원망할 정도로 트라우마가 크다"며 "당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100명이 넘는데 재심을 신청하지 않았더라도 진상규명 차원에서 간첩으로 내몰린 재일동포 피해자들에 대해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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