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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배계규 화백의 이 사람] 폼페이오, 제2의 키신저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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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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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7월, 당시 파키스탄을 방문하던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헨리 키신저는 갑작스레 복통을 호소하며 요양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는 극비리에 중국으로 향해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만나기 위한 위장이었다. 회담을 마친 키신저의 손에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에게 전하는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 주석의 초청장이 들려 있었다. 훗날 ‘미중 데탕트 시대’의 개막으로 알려진 닉슨 대통령의 1972년 중국 방문은 이렇게 확정됐다.

미국 잡지 뉴요커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2018년 부활절 휴가 기간 북한 평양을 극비 방문한 것을 두고 “1971년 키신저의 베이징행을 연상시킨다”고 평했다. 키신저가 닉슨에 앞서 중국을 방문해 회담 여건을 조율한 것처럼, 폼페이오 역시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평양으로 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대리해 회담 조건을 논의했기 때문이다.

이런 회담이 그냥 이뤄지는 건 아니다. 키신저와 폼페이오는 ‘비밀 채널’을 가동해 회담 가능성을 타진한 것마저 닮았다. 키신저는 1970년 내내 파키스탄과 루마니아를 통해 극비리에 중국과 교신했고, 폼페이오도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으로 연결되는 ‘스파이 채널’을 통해 대북 대화 가능성을 살펴왔기에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뉴요커의 비유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은 닉슨의 중국행에 버금가는 ‘역사적 순간’이 될 것이다. 성공한다면 CIA국장에서 국무부 수장으로 옮겨 표면에서 북한과의 회담을 이끌게 된 폼페이오의 위상도 키신저에 버금갈지 모를 일이다.

물론 변호사와 사업가ㆍ하원 의원을 거쳐 이제 막 국무부에 입성한 게 고작인 폼페이오를, 외교분야 전문가이자 실제 외교관으로서도 전설로 남은 키신저에 빗대는 것은 무리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10여 년간 미국 외교를 주무르고 지금도 수시로 미국 정치권의 외교 조언가로 불려 나오는 키신저의 ‘진정한’ 후임이 이번에야말로 탄생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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