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2 (일)

[월드 트렌드, NOW] 베네수엘라 경제난에… “에이즈 약 떨어졌다” 와라오족 멸족 위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의료지원 끊겨… 사망자 속출
한국일보

니콜라스 마두로(오른쪽)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영부인 실리아 플로레스와 함께 4월24일 오리노코 삼각주 인근 투쿠피타 시를 방문해 오리노코 강을 바라보고 있다. 투쿠피타=로이터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정글 속 원주민 부족 가운데 하나로 여전히 고대의 생활 양식을 이어 가고 있는 와라오(Warao)족이 에이즈 때문에 멸족 위기에 빠졌다.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 들어 심각한 재정난으로 보건행정이 붕괴하고 약품 보급까지 어려워지면서 에이즈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7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동북부 오리노코강 삼각주 일대에 거주 중인 원주민 와라오족 사회에서 에이즈가 급격히 확산하고 있는 현장을 전했다. 이 지역에서 정부 보건시스템과 부족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은 간호사 라파엘 페케뇨(34)는 “2010년에서 2012년 사이 에이즈 진단을 받은 이들의 80%가 이미 사망했다”며 “부족 공동체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에이즈 확산을 막을 항레트로바이러스제 보급이 끊겼다며 “무기 없는 병사의 심정”이라고 말했다.

정글 내 강가에 수상가옥을 짓고 사는 와라오족 가운데 에이즈 환자가 처음 관측된 것은 2007년. 도심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다 돌아온 보균자가 퍼뜨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에는 세계 수준으로 불린 보건 의료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해 급격한 확산을 막았으나, 마두로 현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경제가 붕괴하고 약품 보급이 줄어들고 유능한 의료 인력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변방의 와라오족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 전염병 전문가로 수년간 와라오족 문제를 다뤄 온 야코부스 드 바르트 베네수엘라 중앙대학 생물의학연구소 결핵연구실장은 “적절한 외부 개입이 없다면 와라오족 자체가 존속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현재 베네수엘라 정부는 위기에 몰린 와라오족을 구원할 처지가 못 된다. 경제 붕괴로 인해 수도 카라카스에서조차 물물교환 시장이 설 정도로 물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국가 차원의 예방 노력도 사라졌다. 에이즈 예방의 기본인 무료 콘돔 보급도 끊겼다. 콘돔을 구매하려면 최저임금 기준으로 수일간 일해야 한다.

와라오족을 위협하는 것은 질병만이 아니다. 대부분이 베네수엘라 공용어(스페인어)를 구사하지 못해 좋은 일자리는 꿈도 꿀 수 없고 경제난으로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저임금 일자리도 부족하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미 와라오족 가운데 일부는 아마존 밀림을 건너 약 2,000㎞ 떨어진 브라질 마나우스까지 도피해 난민촌을 만들었다. 마나우스 시의회의 엘리아스 에마누엘 의원은 “연방 경찰이 그들을 돕고 있으며, 우리 복지 체제 내로 끌어들이는 게 타당하다”면서도 “외부 원주민들을 돕는 중앙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