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은희경·노홍철 등 강연자로 나서
요조·정원영 공연도 이어져 흥겨운 밤
선상환경토크, 우리 시대 기후 토론
블라디보스토크·가나자와·후쿠오카도 둘러봐
그린보트 출항 전 모습. 환경재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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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리조트’ 또는 ‘움직이는 호텔’로 통하는 크루즈 여행은 안전한 배 안에서 편안하게 쉬고 즐길 수 있어 ‘나홀로’ 여행족에게 인기다. 환경재단이 2005년부터 일본 피스재단과 10회에 걸쳐 진행한 ‘피스&그린 보트’는 여기다 환경, 인권, 역사, 문화,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게스트가 탑승해 관광을 뛰어넘는 지식 충전소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11회를 맞은 그린보트는 환경재단 단독으로 지난달 12일부터 7일간 정재승 교수, 은희경 소설가 등 30여명의 각 분야 전문가를 포함한 일반인 1400여명이 승선한 가운데 진행됐다.
‘부~웅!’ 경적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실제 가까이서 본 5만7천t 네오로만티카호의 위용은 웅장했다. 전장 221m, 전폭 34m에 객실 수가 789실에 이르니, 바다 위에 떠 있는 호텔이나 다름없다. 그린보트는 크루즈 여행 방식이다. 배에서 숙식과 각종 유흥 및 체육시설을 즐기며, 기항지인 2~3곳의 도시에 들러 관광지를 둘러본다. 올해는 ‘소중한 지구,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를 주제로 부산항에서 출발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가나자와와 후쿠오카를 방문한 뒤 귀환하는 6박7일의 일정으로 구성됐다.
육지보다 더 유쾌하고 짜릿한 ‘만남’
여행 기간 대부분을 크루즈 안에서 보낸다?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할 만큼 지루한 일상이 되지 않을까. ‘뭐, 책이나 읽지!’ 했는데, 기우였다. 선내에는 오락·체육(헬스장과 수영장)·도서관·스파 등의 시설이 마련돼 있어 잠시도 한가할 틈이 없었다. 승무원들이 주축이 된 공연과 댄스 강좌, 이한철·요조·정원영 공연 등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매일 밤 각 선실로 선상신문이 배달되는데, 다음날 식당 오픈 시간, 선내 이벤트, 기항지 관광 등이 자세히 안내돼 있어 불편함이 전혀 없다. 무엇보다 매일 밤 카페테리아와 바 등에서 열리는 화려한 공연과 축제는 1400여명의 여행객들이 하루의 여독을 풀고 스스럼없이 한데 어울리는 윤활유가 되어주었다. 박현수(54·서울 목동)씨는 “홀로 하는 여행은 처음인데, 안전한 크루즈 여행이어서 남편이 흔쾌히 동의해줬다”며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친자매 이상의 친분을 나눌 수 있어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그린보트에서의 단체 사진. 환경재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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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명의 전문가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릴 수 있다는 점도 그린보트의 매력이었다. 이정원(50·서울 광진)씨는 “작년에 이은 두번째 탑승인데, 기항지 투어도 좋지만 정재승·은희경·이제석 등의 강연이 너무 좋고, 다음에도 또 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첫 탑승자로 이름을 올린 방송인 노홍철은 수시로 일반인과 어울려 식사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등 방송에서 보기 힘든 소탈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인기와 사랑을 독차지했다.
환경·인권·역사·문화·정치부터 ‘세월호’까지
도시의 문명이 미처 닿지 않은, 파괴되지 않은 자연을 오롯이 본적이 있었던가. 높은 빌딩과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희뿌연 미세먼지는 지구와 자연의 본모습이 아니다. 푸른 하늘과 맑고 투명한 바다를 보고 있자니, 그 거대하고 웅장한 자태에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절로 겸손해졌다. 특히나 올해 그린보트는 ‘환경’ 관련 포럼과 강연을 더욱 알차게 엮은 점이 눈에 띄었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등은 강연뿐 아니라 ‘선상환경토크: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라는 주제로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최열 이사장은 “환경을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더욱 가치 있는 만남의 장”이라며 “그린보트에서 얻은 지식들을 토대로 일상으로 돌아가 환경지킴이가 되어 달라”고 말했다. 이밖에 정재승 교수는 ‘4차 혁명 시대를 맞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고, 노홍철은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말고, 용기를 내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주기도 했다. 강무영(23·중앙대 경영학부)군은 “군대 제대한 지 얼마 안 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영감을 얻고 싶어 승선했다”며 “좋은 사람들의 강연과 만남 덕분에 인생의 나침반 1개쯤 얻은 것 같다”고 흡족해했다.
세월호 추모의 시간. 진실의 종이배 접기. 조성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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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에는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여행객들은 ‘기억의 실팔찌’를 만들고, ‘진실의 노란 종이배’를 접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플래시몹을 펼치기도 했다. 은희경·오은·김경욱 작가와 뮤지션 요조는 세월호 낭독 추모콘서트를 열었다. 오은 시인은 세월호 4주기에 부쳐 직접 쓴 시 ‘법석이다’를 낭독해 참가자들을 숙연케 했다.
과거와 역사를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다
각 기항지에서는 관광 외에 환경?역사?문화 프로그램 등 다양한 테마 탐방이 이뤄졌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지이자 한인 강제이주의 아픈 역사가 녹아든 고려인문화센터를 방문해 조상들의 아픔을 직접 느끼는 역사 체험이 진행됐다.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의 블라디보스토크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작이자 종착지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인 강제 이주 역사가 있는 여행지다. 김미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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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 불릴 만큼 고풍스러운 아르바트 거리, 해안 길을 따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해양공원, 혁명광장, 개선문, 영원의 불꽃, 잠수함박물관, 191m 독수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시내 전경까지 유럽 특유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제2의 교토’라 불리는 가나자와에서는 역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1932년 4월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제의 주요 인사들을 향해 폭탄을 던져 대한독립의 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린 윤봉길 의사가 생애 마지막을 보냈던 곳이기 때문이다. 윤봉길 의사는 사형선고를 받은 뒤 이곳으로 압송됐으며, 생을 마감했다. 현재 노다야마 국립묘지에는 윤봉길 의사의 순국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가나자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를 거의 겪지 않아 옛 거리와 가옥 등 역사적인 문화유산이 잘 보존돼 있는 곳이다. 과거 게이샤의 춤과 연주를 보면서 술과 식사를 즐겼던 주점들이 모여 있어 교토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히가시차야 거리, 성체의 지붕이 흰색 기와로 이뤄진 가나자와성, 일본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겐로쿠엔은 대표적인 관광지다. 특히 금박공예, 가가유젠(염색) 등의 전통 공예는 물론 다도, 화과자 같은 음식문화에 이르기까지 에도시대 문화와 예술도 접할 수 있다.
일본 가나자와 성. 조성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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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는 일본의 가장 남쪽인 규슈지역의 최대 도시다. 일본을 대표하는 먹거리인 명란젓, 돈코쓰라멘 등의 유명 맛집이 즐비한 곳이다. 안타깝게도 후쿠오카는 오후에 입항한데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진면목을 다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거리마다 꽃을 가꾸는 등 풍요로운 자연환경으로 녹색도시의 매력을 갖췄음을 알 수 있었다.
관광과 지식의 충전, 나홀로 즐기는 고독과 일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관계를 만나고 싶다면? 더불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지구와 환경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한번쯤 ‘그린보트’를 타보자.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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