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와 페루 정부는 잉카의 유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잉카트레킹 코스 안에 인공 시설물 설치를 금지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모두 지고 가서 다시 가지고 나와야 한다. 한왕용 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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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자들 대부분은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첫 번째 우선순위로 페루 마추픽추를 꼽는다. 남미 정신문화를 이해하는 정점에 잉카문화가 있고, 그 잉카문화는 마추픽추에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실 마추픽추만 관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출발할 경우 비행기를 3번이나 갈아타고 쿠스코에 도착해야 한다. 다시 쿠스코의 고도(高度)를 견디며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까지 버스로 2시간 가야 하고, 거기서 또 기차로 2시간 이동해 마추픽추 역에 내린 다음, 줄을 길게 선 채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추픽추 행 버스를 타고 40여 분을 올라가야 마추픽추에 이른다. 마침내 눈으로 확인한 마추픽추는 그런 힘든 여정을 충분히 보상할 만큼 감동적이다. 여행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하루 200명에게만 허락되는 잉카트레킹의 행운을 얻은 여행자들은 마추픽추에 이르기 위해 3박4일 동안 43km를 걸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매일 수차례 작은 마추픽추를 만나게 된다. 중간 과정 없이 오직 마추픽추만 방문하는 경우에 비하면 3박4일에 걸쳐 마추픽추를 대략 20번 방문해 20번 감동하는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을과 마을을 잇는 정교한 돌길을 걷노라면 마추픽추를 볼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더해진다. 마치 잉카인이 되어 잉카 마을 안에 머무는 듯한 느낌이다.
잉카 마을은 모두 계단식 농장이 있다. 놀랍게도 이 농장들은 늘 물이 마르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한왕용 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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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열매를 먹고 2시간 쯤 지나니 잉카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50가구 정도 살았던 흔적이다. 잉카 사람들은 그 지역 산 중에 제일 높은 곳에 살림집을 짓고, 아래로 500m 쯤 떨어진 곳에 밭을 만들었다. 살림집 옆에 밭을 두고 편리하게 살 일인데 이 무슨 생고생일까.
아마 그건 태양신을 사랑한 잉카인들의 마음이 드러난 것이라 생각된다. 해를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산꼭대기에서 서둘러 아침을 맞이하고, 조금 더 길게 해와 같이 지내다가 하루를 마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잉카인들에게 태양은 신(神)이었다. 태양이 우주를 만들고 자신들도 만들고 매일 매일 세계를 움직인다고 믿었다. 마음속에 태양을 품은 채, 그를 그리워하고 그가 원하는 일들을 하며 그가 금지하는 것은 철저히 하지 않았다.
인간 사이의 사랑도 결국 이런 것이 아닐지. 누군가 어느 날 내 안에 들어오고 그를 그리워하며 그가 원하는 것을 하고 그가 싫어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사랑 아닌가. 사랑은 믿음이며 그 사랑을 믿는 한 연인 사이의 기쁨과 감동은 지속된다. 진한 사랑 한번 못해 본 사람이 사랑을 너무 아름답게 포장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신앙의 영역은 훨씬 순수하므로 이런 유추가 가능하다고 본다.
태양신을 사랑한 잉카인들의 마음은 큰 돌을 움직여 만든 신전과 섬세하게 설계된 마을의 모습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사랑으로 큰 돌을 쌓았고, 사랑으로 마을에 길을 냈다. 태양신을 사랑하면서 신이 자신들과 함께 한다는 믿음으로 만들지 않으면 이 깊은 골짜기에 이 큰 마을이 형성된 것은 불가능하다. 잉카문명은 한마디로 태양신을 사랑한 잉카인들의 ‘사랑 고백’이다.
잉카트레킹 43km는 잉카유적의 지극히 일부를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험한 산 중턱에도 길이 있는데, 우리가 보는 것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길을 어떻게 이토록 정교하게 닦았을까. 한왕용 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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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타령을 한참 하고 있으니 한왕용 대장이 “이건 통치자가 힘으로 백성을 노예 삼아 만든 개인의 치적 아닐까요?”라며 옆구리를 차고 들어온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통치자도 채찍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태양신에 대한 잉카인들의 순수한 사랑을 이용할지언정 이를 무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잉카 유적은 타율적으로 만들어지기에는 너무 경이롭고 아름답다.
8시간 쯤 걷고 캠프촌에 도착했다. 잉카트레킹 도중에는 건물로 된 숙소가 없다. 잉카의 유적을 더 잘 보존하기 위한 유네스코와 페루 정부의 노력이 대단하다. 무조건 텐트를 치고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숙식의 쓰레기 심지어 용변의 결과물까지 다시 지고 가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한 팀에 13명 정도 현지 도우미를 동반할 수 있다.
오랜만에 텐트 생활을 해본다. 바람 소리도 느끼고 아침에는 새소리에 잠을 깬다. 그러나 옆에서 세상모르고 ‘잠 삼매경’에 빠진 한 대장의 코고는 소리는 어떤 방법을 써도 참아지지 않는다. 텐트는 소리에 참 민감한 구조다. 화장실 텐트를 이용하는 일도 쉽지 않다. 최고의 감동을 주는 잉카트레킹에서 감수해야 할 작은 대가들이다.
홍창진 신부(경기도 광명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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