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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차이나 인사이트] 비핵화 담판 무대로 김정은 등 떠민 건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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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비핵화 진정성 엿보려면

김정은 마음 바꾼 이유부터 봐야

미국 압박과 북한 경제난에 더해

예상 밖 중국의 강력 제재가 원인

북한이 손아귀 벗어난다 본 중국

북한 경제의 숨통 죄는 압력 가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또 속으면 안 된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최근 분위기는 조심스럽지만, 과거와는 분명 다른 것 같다는 쪽으로 무게가 쏠리고 있다. 물론 정확한 답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북한의 진정성을 엿보기 위해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왜 ‘최후의 보검’이라던 핵무기를 포기하고 ‘핵·경제 병진’에서 ‘경제 총력’ 노선으로의 전환을 결심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 그런 움직임이 있었나.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을 움직인 건 누군가. 북한을 비핵화 담판에 나서게 한 결정적 요인은 무언가. 복잡한 한반도 정세만큼이나 이 또한 어느 하나의 요인으로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크게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미국의 제재와 압박이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종잡을 수 없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무력 과시와 매파 기용, 실제 준비한 것처럼 보이는 ‘코피(bloody-nose)’ 전략에 정권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외과수술용 폭탄을 시리아에 투하하는 위협도 목도한 바다.

중앙일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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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가 정말 밥을 먹여줄지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지금이 제값 받기에 적절한 시점이라는 판단하에 미국과의 정면 대결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했다고 봐야 한다.

두 번째는 북한 내부의 경제방식 전환 요구 압력이 더는 미룰 수 없는 임계 상황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는 동안 자원배분이 왜곡되고 주민에 대한 통제력에 문제가 생겼다. 북한 전역에 430여 개를 넘어선 장마당이 어느덧 정상적인 시장으로 작동하는 ‘우리식 장마당 시장경제’로 정착되면서 불합리한 공권력에 항거하는 주민들이 등장했다.

이처럼 폭발력이 잠복한 주민들의 불만 해결을 공권력 강화만으로 이룰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인민보안원의 단속 손길이 자연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취약 구조가 결국 김 위원장에게 ‘경제 총력’ 노선으로의 전환을 재촉한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정작 김 위원장을 비핵화 담판 무대에 나서도록 등 떠민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중국의 강력한 대북 제재다. 이게 세 번째 요인으로, 방아쇠 같은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최대 타격은 유엔 안보리 결의 2375호에 따라 지난해 9월 22일 중국 상무부가 발표한 대외무역법 ‘공고문’이다.

이미 북한 무연탄 수입 쿼터 제한과 철광석 수입금지로 휘청거리던 북한 경제는 이 조치로 섬유제품 수출이 막히고, 중국진출 북한기업이 120일 이내 폐쇄 명령을 받으면서 더는 제재의 그물망을 빠져나갈 탈출구를 잃게 됐다. 올해 초 주(駐)선양 북한 총영사관의 지정호텔 겸 연회장으로 사용되던 칠보산호텔 폐쇄는 사실상 대북 제재의 완결편이다. 중국의 대북 제재는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원론적인 유엔결의안 준수 차원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국이 변심(變心)한 이유는 어디에 있나. 중국이 차린 잔칫상에 재를 뿌리곤 하던 북한의 행태가 도를 넘어서며 북한이 중국의 손아귀 안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인식을 중국에 준 게 주요 요인이다.

북한은 중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참여할 때마다 “미국 장단에 놀아대는 줏대 없는 제재 놀음”이라며 중국을 비난했다. 성토에만 그친 게 아니다. 잇단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체면에 생채기를 냈다. ‘잔칫상 재 뿌리기’다. 대표적인 예가 북한이 지난해 9월 3일 실시한 6차 핵실험이다. 이날은 중국이 정성을 기울여 준비한 브릭스(BRICs) 비즈니스포럼 개막식 날이었다. 북한은 시진핑 주석의 개막 연설 4시간 전에 전격적으로 핵 실험을 감행했다. 국제 자유무역주의 리더의 위상을 과시하며 집권 1기의 외교 성과를 선전하려던 시 주석 입장이 여지없이 구겨졌다.

북한의 심술 부리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6년 9월 중국 항저우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 기간 북한은 동해 상으로 미사일 세 발을 쐈고, 지난해 5월 14일에도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포럼’ 개막일에 맞춰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했다.

특히 시진핑의 특사 쑹타오(宋濤) 당 대외연락부장이 지난해 11월 북한을 찾았다가 김 위원장도 만나지 못하고 빈손 귀국한 2주일 후 북한은 미국 도달 거리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해 이를 만류하던 중국의 뒤통수를 또 한 번 때렸다.

‘북한이 미국과 싸우는 게 아니라 중국과 싸우고 있다’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북한은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처럼 제재를 주도한 미국보다 제재에 동참한 중국에 대한 섭섭함이 뼈에 사무쳤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우리 방북 공연단에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란 가사가 나오는 노래 ‘뒤늦은 후회’를 불러달라고 요청한 것 또한 이유 없는 주문은 아니었다.

마침내 인내에 한계를 느낀 중국이 지난해 가을부터 북한 경제의 숨통을 죄는 손아귀에 바짝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4분기 북·중 교역이 42%나 감소했다는 통계는 북한이 느낄 통증의 정도를 짐작하게 한다. 올해 1분기엔 또 61%나 줄었다. 필자는 주선양 총영사로 근무하며 지난해 하반기 북·중접경 지역에서 벌어진 대북 제재 숨바꼭질의 생생한 현장을 목격했다. 하나둘 짐을 꾸려 철수하던 북한식당과 여성 복무원들의 초조한 발걸음, 위축된 북한 상사원의 그늘진 얼굴 등.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절대 약하지 않다. 중국은 북한의 일탈 행위로 인해 미국과의 충돌에 연루되는 위험을 극력 피하면서도, 과도한 압박으로 북한이 중국을 이탈하는 것 또한 바라지 않을 뿐이다. 북·중 관계는 역사적인 특수성, 지정학과 지전략적 가치, 그리고 2016년 기준 무려 92.7%에 이르는 북한의 대중 경제 의존도 등 다층적으로 엮여있는 특수 관계란 점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지난 3월 김 위원장이 깜짝 방중했듯이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은 어떤 형식이든 중국과의 연계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도 최근 한반도 문제에서의 ‘중국 역할론’을 강조한다. 그래서 지난주 북·중 정상이 다롄에서 또 한 번 깜짝 회동하지 않았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서 통일 문제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비중은 절대 가볍지 않다. 우리가 미국과의 긴밀한 동맹 못지않게 중국과의 관계에도 정성을 기울이는 전략을 짜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봉섭
주중 대사관 공사 등 중국 대륙과 홍콩의 주중 공관에서만 20여 년 넘게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한·중관계와 중국 외교안보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현재 중국 외교안보와 북·중 관계, 동북아 지정학과 한반도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신봉섭 강원연구원 객원연구위원·전 중국선양주재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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