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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겨를] 세상에서 유일한 물건이 내손에… 버스킹 공연 등 축제 분위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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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심비' 충족하는 마켓 나들이

리버마켓ㆍ띵굴시장 등 속속 등장

가기 불편하고 가격도 비싸지만

“흥정하는 정겨운 분위기가 매력적”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지난 5일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에서 열린 '리버마켓'에 진열된 수공예품.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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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린 플리마켓(벼룩시장), 마드리드 엘 라스트로 플리마켓,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마켓… 세계 유명 관광도시엔 ‘여행 갔을 때 반드시 가봐야 하는 마켓’이 있다. 영어로 ‘Market(마켓)’, 한국어로 시장이지만 이곳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살 필요는 없다. 진열된 상품을 구경하고, 길거리 음식을 사먹고, 마켓이 펼쳐진 공간을 배경 삼아 사진 한 방 찍으면 여행이 완성된다.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놀고 즐기는 시장인 셈이다.

국내에도 이렇게 ‘놀고 즐기는’ 마켓이 3, 4년 전부터 전국 곳곳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경기 양평, 강원 철원, 서울 등지에서 열리는 ‘리버마켓’, 서울과 경기에서 열리는 ‘띵굴시장’, 부산 ‘마켓움’, 제주 ‘하루하나 프리마켓’, 전주 ‘착한플리마켓’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일주일에 한두 번, 주말마다 열리는 마켓에서 수공업자들은 공방에서 한 땀 한 땀 공 들여 만든 수공예품을, 청년 농부들은 직접 땀 흘려 농사지은 농산품을 갖고 모여든다. 해외 유명 관광도시 마켓처럼 수백 년 역사를 갖고 있거나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주말마다 수백 명의 발길이 쏠리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마켓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다. 교외 혹은 한적한 시골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아 주말 하루를 통째로 투자해야 한다. 많아야 일주일에 한두 번, 적게는 몇 주에 한 번 열릴 정도로 이용 가능 시간 역시 제한적인데, 마켓이 서는 시간에 맞춰 가더라도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다품종 소량생산’이라 조금만 늦어도 상품이 다 팔려 나가는 일이 태반이다.
한국일보

강원 춘천시 조양동과 죽림동 육림고개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은 2015년 첫 개장 이후 매년 1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떠올랐다. 춘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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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 블로거가 “예상했던 것보다 가격에 ‘0’이 하나 더 붙어있다”는 평을 남길 정도로 비싼 경우가 많다. 현대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24시간편의점과는 정반대로, ‘이용하기는 불편한데 물건 값마저 비싸다’는 얘기다. 합리적이라면, 굳이 마켓을 통한 ‘느린 장보기’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는 힘은 분명 있다. 먼저 마켓에서 판매하는 상품 자체가 가장 큰 경쟁력이다. 아무리 다른 요소가 훌륭해도 상품이 별로라면 마켓이 유지되기 어려울 터. 서비스가 아무리 형편 없어도 음식만 맛있다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손님이 몰리는 게 세상 이치다.

마켓 관계자들은 이곳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이 현대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심비(가격대비 심리적 만족)’를 충족시켜준다고 말한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더라도 ‘장인이 손으로 만든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란 사실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큰 심리적 만족감을 준단 얘기다. 특히 중고제품을 판매하는 게 기본인 외국 플리마켓과 달리, 한국의 마켓에선 1인 창작자들의 수공예품을 주로 판매하기 때문에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파는 대량 생산 제품이 이를 대체하기가 불가능하다.

‘재미’도 쏠쏠하다. 특정 시간과 장소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모이다 보니 마켓 자체가 축제가 된다. 실제 리버마켓처럼 규모가 큰 마켓에선 장이 설 때마다 버스킹 공연을 열겠다는 지역 밴드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공연팀 섭외가 어려운 작은 마켓의 경우엔 보물찾기, 물총놀이, 경품추첨 등 즐길 거리를 따로 준비하기도 한다.

마켓에 있는 ‘사람 냄새’가 사람들을 ‘느린 장보기’로 끌어들인다는 분석이 있다. 누가 만들었고, 누가 유통했는지 모르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상품과 달리 마켓에선 생산자 겸 판매자와 소비자가 직접 대면해 흥정과 거래를 한다. 그리고 이내 친구가 된다. 안완배 문호리 리버마켓 감독은 “마켓에서 일하는 창작자들은 손님이 마켓을 찾은 그날 하루를 완전히 책임져 준다는 생각으로 일한다”며 “물건도 좋지만 그 정겨운 분위기를 잊지 못하고 마켓을 다시 찾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마켓이 곧 하나의 공동체 문화로 자리잡아가기도 한다. 전주 ‘착한 플리마켓’을 기획한 황수진 착한사람들 대표는 “마켓을 통해 수공업자들끼리, 지역사람들끼리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소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며 “마켓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는 공간”이라고 밝혔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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