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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차이나 인사이트] 한한령 피해 … 한국보다 중국이 더 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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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령 발동으로 한류 차단하고

한국에 경제 타격 안기려 한 중국

결과는 중국인의 한류 접촉 계속

한국 콘텐트산업도 건재 과시해

중국 호감도는 일본보다 떨어져

한·중 수교 이래 최저 수준 기록

한·중 관계에서 만들어진 신조어 가운데 ‘한한령(限韓令)’이란 참으로 아름답지 못한 말이 하나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해 중국이 보복 카드로 꺼낸 한류 규제령이다. 이미 1년 반을 넘어섰다. 한데 이달 중순 열린 현대중국학회(회장 이동률)와 현대일본학회(회장 박영준)의 공동학술회의를 통해 한한령의 피해를 따져보니 한국은 물론 중국 또한 크다. 특히 한한령을 발동한 중국의 엄청난 이미지 추락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 입장에서 한한령 카드는 효과적인 보복 수단이었을까?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선 우선 21세기 중국 대외문화 전략의 기본 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 대외문화 전략은 크게 방어적인 것과 공세적인 것의 두 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방어적 측면으로 문화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인식하는 경우다.

금세기 들어 중국은 문화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보기 시작했다. 2004년 9월 열린 당 대회를 통해 문화안보를 정치안보, 경제안보, 정보안보와 함께 국가의 4대 안보전략으로 확정했다. 중국 정부가 문화와 관련해 갖는 위기의식의 본질은 거대한 자본력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서구의 문화산업이 중국의 문화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데서 온다. 따라서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응은 외국 문화상품의 진입을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중국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신속히 향상하는데 있다. 중국이 외국 문화상품에 대해 강력한 규제 정책을 시행하는 건 이러한 ‘문화안보론’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일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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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 측면과 관련되는 건 중국 문화의 대외적 확장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소프트파워’다. 1990년대 말부터 중국은 ‘문화적 역량’을 ‘종합국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97년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문화는 전국 인민을 결집시키는 중요한 역량이자 종합국력의 중요한 지표”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 이미지는 정치 이미지, 경제 이미지, 문화 이미지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는데 외국인이 가장 인상 깊게 보는 중국 이미지의 요소로 문화(77.8%)가 1위로 꼽혔다.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1등 공신이 문화인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21세기 초반부터 중국 문화의 해외진출(走出去)을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자, 이제 이 두 축을 중심으로 한한령의 효과를 보자. 먼저 문화안보론에 근거해 중국은 한한령을 통해 두 가지 효과를 기대했을 수 있다. 하나는 자국민의 한류 콘텐트 접촉 기회를 줄이며 한류에 대한 호감도를 낮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 중국 시장을 봉쇄해 경제적 타격을 안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지난 3월 ‘2018 해외 한류 실태 조사’를 발표했는데 중국 내 한류 현황은 한한령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한국을 연상하는 이미지 Top 5를 보면 뷰티, 드라마, 한류스타, K-Pop, 관광지 등으로 한류는 여전히 중심 이미지를 형성했다.

더 흥미로운 건 한한령 이후에도 한류 콘텐트에 대한 중국인들의 접촉 기회가 크게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한령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1월 영화 ‘부산행’ 및 드라마 ‘도깨비’의 주연 배우 공유는 중국 웨이보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중국의 한류 콘텐트 이용량도 2016년 대비 2017년에 증가했다는 의견이 50%에 육박했다.

그렇다면 경제적 측면에선 효과가 있었나? 글쎄요다. 피해가 있긴 했지만 큰 충격을 받진 않았다. 2015년 경우 한국 콘텐트의 대(對)중국 수출 가운데 방송은 5%, 음악은 7%, 영화는 1%에 불과하지만 게임 산업이 73%에 달한다. 한한령 대상인 방송, 공연, 영화 장르가 대 중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것이다.

반면 한한령 발동 이후 한국 내 중국 이미지는 어떻게 됐을까? 2017년 3월 아산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하게 추락했다. 2015년 11월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5.54점으로 미국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었다. 그러나 한한령 이후인 2017년 3월엔 3.21점까지 하락했다. 이는 일본에 대한 호감도(3.33점)보다도 낮았다.

2017년 6월 한국과 일본 언론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한국인들의 81%가 한·중 관계가 나쁘다고 인식했다. 이는 2016년의 29%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더 큰 문제는 국가 간 미래 관계의 전망에 대한 인식 혹은 그와 관련된 국가 간의 신뢰도 문제인데 여기서 중국에 대한 인식이 더욱 부정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2016년 한국인의 38%가 중국을 경쟁 상대로 인식했다면 1년 후에 그 수치는 52.7%로 치솟았다. 또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신뢰도 역시 2016년 39.7%에서 2017년엔 18.8%로 반토막 아래로 떨어졌다. 중국은 한한령을 통해 한국의 여론을 자극 혹은 동원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드 배치 철회를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여론 추이는 중국의 기대와는 반대로 흘러간 것이다.

2016년 11월 사드 배치에 대한 한국인의 입장은 찬성(46.3%)과 반대(45.7%)가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한한령이 강화된 이후인 2017년 3월 조사에선 찬성이 50.6%로 상승했고 반대는 37.9%로 감소했다. 한한령이 중국에 대한 반감을 키우면서 오히려 사드 배치 찬성 쪽으로 흐른 것이다. 결국 중국의 한한령 조치는 한국 내 중국의 국가 이미지 및 신뢰도를 수교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뭐가 문제였나. 소프트파워인 문화를 하드파워 방식으로 행사한 데 있다. 힘(power)은 종종 강제(coercion)나 유인(induction)과 같은 하드파워의 방식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문화의 힘은 상대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바를 하게끔 만드는 매력(attraction)과 같은 소프트파워 방식으로 구사돼야 한다.

그러나 한한령은 문화를 하드파워의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소프트파워의 근본적인 목표, 즉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을 얻지 못함으로써 커다란 실패를 불렀다. 한한령은 취소만으로 그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인의 마음과 신뢰를 되찾기 위해선 중국이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에 앞서 중국이 과연 그런 의지를 갖고 있는가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권기영
중국 베이징대학교 예술대학 문화창의산업 전공 박사. 2001년부터 10년 동안 한국콘텐츠진흥원 중국사무소장을 역임했다. 중국 문화산업 정책과 한·중 문화산업 교류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마르크스와 공자의 화해』가 있다.



권기영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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