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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예산 9조 집행’ 그럼에도 10명 중 6명이 모르는 이 사람은?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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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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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립 유치원의 설치와 사립 유치원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가진다.

2. 초등 돌봄교실을 전면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3. 학원의 심야영업을 막을 수 있다.

4. 시·도 단위의 일제고사를 치를지 말지 결정한다.

5. 고등학교 신입생을 학교별로 뽑을지(비평준화), 추첨으로 배정할지(평준화) 정한다.

6.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어떻게 뽑을지 정한다.

7. 내 아이의 교실에 공기청정기를 놓을지 말지 정한다.

이런 막대한 권한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요? 혹시 교육부 장관이라고 생각하셨나요? 틀렸습니다. 정답은 바로 교육감입니다. 지방교육자치법에 따라 교육감에게는 예산 편성, 학교 설립·폐지, 인사 등 17가지 권한이 부여돼 있습니다. 서울시교육감은 9조1513억원의 예산을, 전국 시·도교육감은 모두 60조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교육감한테는 유치원과 공립학교 교원 5만여명에 대한 인사권도 있군요. 이런 막대한 권한 덕에 교육감은 ‘교육 소통령’으로도 불리지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교육부가 교육자치를 강화하는 방향의 ‘교육자치 정책 로드맵’을 내놓으면서 교육감의 권한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율형 사립고와 특수목적고 등을 지정 취소할 때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규정 역시 삭제될 것으로 예상돼, 교육감은 외국어고·국제고·자사고 지정과 취소 권한도 가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 ‘교육 소통령’ 뽑는 교육감 선거…현실은 ‘깜깜이’

교육감을 직접 선거로 뽑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입니다. 직선제는 교육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교육 문제와 관련된 주민 의견을 더 듣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초창기 유권자들의 무관심으로 10~20%대 투표율을 보여 논란이 되기도 했죠. 다행히 2010년부터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게 되면서 투표율은 올랐지만, 역시나 유권자의 관심은 크게 증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후보자 등록이 마감된 이번 6·13 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국 17개 시·도에 총 61명이 등록해 평균 3.6 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유권자는 누가 이름을 올렸는지, 과거 경력은 어떠했고 어떤 공약을 내놓았는지 모르는 상태죠. 이를 두고 ‘깜깜이 선거’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그 실상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5월22일 <문화방송>(MBC)이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서울시교육감 지지도 조사를 보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조희연 현 교육감의 지지율이 27.8%에 불과합니다. 반면 61.9%는 ‘모름·없음·무응답’을 선택해 무응답이 1위를 달리는 후보 지지율보다 2배가 높습니다.

한겨레

조영달 후보.(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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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선거는 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걸까요? 교육 전문가들은 상당수의 유권자가 자신의 이해관계와 투표가 엮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는 “학부모 등이 아니면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당장 내 일이 아니더라도 더 긴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해당사자가 투표권이 없으니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최은순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은 “교육이라고 하면 아이를 학교에 보낸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려야 한다”며 “더 심각한 문제는 이해당사자인 학생들에게 투표권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은 만 19살 이상의 성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소년들은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선거연령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는데, 결국 국회의 벽에 가로막혀 입법이 좌절됐죠. 최 회장은 “만 16살로 선거연령을 내려 고등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학생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홍보활동을 벌일 거라고 생각한다”며 “최소 고등학생은 투표권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정당 기호 없는 후보들…후보자 선택 ‘가늠자’ 핵심공약 5가지

교육감 선거는 정당 추천이 아니기 때문에 기호가 없습니다. 후보들은 대부분 진보·보수를 표방해 후보로 나왔고, 유권자들은 자신의 성향에 맞는 후보자들에게 표를 행사해왔죠. 역대 교육감 선거를 보면, 가장 큰 변수는 단일화 여부였습니다. 각 진영에서 단일화를 하지 못하고 후보가 난립하게 되면, 표는 더욱 분산돼 버리니까요. 실제 2014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결과를 보면, 조희연 교육감은 39.08%로 당선됐지만 보수 성향의 문용린·고승덕 두 후보의 득표율 합계는 54.9%로 조 교육감을 앞질렀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 때도 진보·보수 진영은 후보 등록에 앞서 자체 경선 등을 통해 단일 후보를 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전국의 상황을 보면, 진보 진영은 대부분 현직 교육감을 중심으로 후보 단일화를 이룬 반면 보수 진영은 단일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시·도 교육감 후보의 공약을 진보·보수로 무 자르듯 나눌 수는 없지만, 진보·보수 진영은 정책에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진보진영 예비후보들은 일찌감치 핵심 정책을 ‘공동공약’ 형태로 발표하기도 했죠. 당시 전국 15개 시·도 교육감 예비후보들이 참여해 “무상교육, 혁신학교, 인권조례, 고교 평준화에서 시작된 교육복지와 교육 민주화를 한 차원 더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경쟁과 서열화 논리가 당연하게 여겨졌던 교육 체제를 변화시키는 데 진보 교육감 후보들이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보수는 각자 어떤 정책들을 들고나왔을까요? 2010년 지방선거는 무상급식 바람이 크게 일었습니다. 올해는 과거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던 보수 후보들조차 무상급식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극명하게 의견이 갈리는 쟁점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쟁점이 바로 특목고 존치 여부입니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 후보들은 자율형 사립고나 외국어고·국제고와 같은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선거에서도 외고·자사고 폐지를 공약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현행법은 자사고·특목고 등을 지정 취소할 때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어 그간 교육부의 반대로 실현하지 못했던 공약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교육부는 이 동의 규정을 없애겠다고 밝힌 상황이죠. 특목고 폐지 여부가 교육감의 손에 달릴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반면 중도를 표방하고 있는 조영달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외고·자사고를 그대로 두되 선발방식을 추첨제로 바꾸겠다는 입장입니다. 특목고는 유지되지만 고교 입시를 사실상 폐지하겠다는 거죠. 보수 후보로 분류되는 박선영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학교 선택의 다양성을 주장하며 자사고와 특목고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서울 전체 고교의 입학 방식을 현행 교육청 배정 방식이 아닌 학생·학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지원제도로 바꾸겠다는 공약도 내놨습니다.

현행 교육감들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행사할 순 없음에도, 가장 많이 질문을 받는 교육 쟁점이 바로 대학입시정책입니다. 교육감이 대입정책을 정할 수는 없지만,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이 논의 중인 만큼 유·초·중등교육을 관장하는 교육감들에게도 그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대입정책은 진보 후보인 조희연 서울교육감과 중도 조영달 교육감 후보가 비슷한 입장입니다. 두 후보 모두 “대학입시정책은 교육감 권한 밖의 사무”라며 선을 그으면서도 조심스레 입장을 밝혔습니다. 조영달 후보는 △고교 내신 절대평가 도입 △수능 절대평가 과목 단계적 확대 등의 입장을 밝혔고, 조희연 후보는 직접적인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2018 민주진보교육감 예비후보 공동공약에서 수능 시험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름을 올린 바 있습니다. 지난 서울촛불교육감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는 “대입 수시의 학생부종합전형 비중은 클수록 좋고, 수능 절대평가도 5등급(현행 9등급)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다만 현재 학부모들의 반발이 큰 만큼 (정시 비중을 일부 늘리는 방향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했죠. 보수 쪽의 박선영 후보의 공약은 확연히 엇갈립니다. △수능 절대평가 반대 △대입 정시 확대 △학생부종합전형 간소화 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혁신학교 확대 여부도 쟁점입니다. 전인교육을 표방하며 토론 중심의 수업을 강조하는 혁신학교는 진보 교육감의 상징이기도 하죠. 경기도를 시작으로 현재 전국에 350개의 혁신학교가 운영 중인데요. 진보 교육감 후보들은 혁신학교가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학교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혁신학교 확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보수 후보들은 혁신학교로 인한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주장하며 추가 지정 중단 혹은 폐지로 맞서고 있습니다.

진보 성향 후보들은 학생인권조례 등 학생의 자치권을 강화하는 공약을 내놓는 반면, 보수 성향 후보들은 교권을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보수 성향의 후보들은 학생인권조례에 포함된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 금지’ 등을 거론하며 학생들에게 동성애 인정 가치가 전파될 수 있다는 이유로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고 있지만,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은 일부 교권 강화 대책을 내놓기도 했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모든 교육지원청에 교권 전담지원팀을 운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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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공모제도 진보·보수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쟁점입니다. 교장공모제는 교장자격증이 없는 평교사에게도 교장 공모에 참여할 기회를 열어주는 제도를 말합니다. 진보 성향 후보들은 교장자격증이 있어야 교장 하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무이하다며 교장공모제 확대에 찬성하고 있고, 보수 성향 후보들은 경험 부족과 자질 검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교장자격증이 뭐길래…“승진점수 따려 한달 월급 뒷돈 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확대를 주장하고 있고, 박선영 후보는 축소 입장입니다. 중도로 평가되는 조영달 후보는 내부형 교장공모제와 경력에 따른 승진을 하는 교장자격제를 투 트랙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물론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선 교육감 선거에서 개개인의 정책이 사라지고, 진보·보수로 나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강태중 중앙대 교수(교육학과)는 “정치적 색채를 가지고 교육감이 되기보다 자신이 학교 교육에 어떤 소신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며 “그간 한국 사회의 상황을 봤을 때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교육의 입장에선 불행한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어 강 교수는 “이런 때일수록 언론에 보도되는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후보를 판단하지 말고, 상세하게 나와 있는 후보의 공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당선 이후에도 자신이 뽑은 혹은 뽑지 않은 당선자가 공약을 잘 지켜나가는지도 잘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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