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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아직 살만한 세상] 60년만에 고국와 길 잃은 80대 獨 교포, 20대 순경이 찾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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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포, 연락처도 분실, 역 혼동해 길 잃고 헤매

-젊은 순경, 번호 알아내 지인과 만나게 도와줘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한 백화점 인근에서 주민들이 직접 원하는 장소를 순찰하는 ‘탄력순찰’을 돌던 신구로 지구대 김덕현(27) 순경은 중절모를 쓴 한 노인이 길을 해매는 듯한 모습을 발견했다. 김 순경이 다가가자 그는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유일하게 연락할 수 있는 지인의 연락처를 잃어버려 큰일”이라며 김 순경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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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독일 교포 송모(81) 씨를 돕고 있는 김덕현(27) 순경(왼쪽)의 모습.

[사진제공=신구로 지구대]

알고 보니 그는 쾰른대학 의학 박사인 송모(81) 씨로 미국 생활 20년, 독일 생활 40년 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한 동포였다. 친한 친구의 여동생을 개인적으로 돕기 위해 전날 입국한 송 씨는 실수로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공항 직원에 건네주고 나와버려 그 누구에도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 경기 구리역에서 여동생을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작정 구리역에 갔지만 여동생을 만날 순 없었다. 결국 그는 역 인근의 모텔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이튿날 수중에 현금이 부족했던 송 씨는 환전을 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다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환전할 수 있는 곳은 인천공항이 유일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무사히 환전을 마친 그는 다시 구리역으로 향했다. 역에 도착해 모텔을 찾았지만 모텔은 보이지 않았다. 당시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독일에서 쓰는 2G폰 뿐이었다.

송 씨의 사정을 들은 김 순경은 우선 여동생의 자택 번호를 기억나는 대로 말해보라고 했다. 송 씨는 지역번호를 포함해 2~3개의 자택 번호를 생각해냈다. 그러나 모두 다른 사람의 번호거나 없는 번호였다. 김 순경은 송 씨가 기억해낸 번호를 재조합해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여러차례 시도 끝에 다행히 송 씨가 찾던 여동생과 연결이 닿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송 씨가 원래 목적지인 경기 구리역이 아닌 서울 구로역에 내린 것이었다. 오랫동안 타지 생활을 한 송 씨가 우리말 지명을 착각했던 것.

김 순경은 “OO모텔에 짐을 두고 왔다”는 송 씨의 말을 듣고 구리역 인근의 OO모텔을 검색하는 기지를 발휘해 해당 모텔을 찾아냈다.

김 순경은 송 씨를 모텔에 데려다주기 위해 카카오톡 택시를 불렀다. 택시기사에게 상세한 설명을 하고 송 씨에게 자신의 명함과 휴대전화 번호를 쓴 쪽지까지 손에 쥐어줬다. 카카오톡 택시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그가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은 김 순경은 이후 여동생의 자택에 전화를 걸어 그의 안전을 확인하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다음날 송 씨는 지구대에 전화를 걸어 “한국 경찰이 세심하게 도와줘 고국의 고마움을 느꼈고 너무 감사했다”며 “독일에 오면 식사 대접이라도 꼭 하겠다”며 김 순경에게 그의 주소와 연락처를 전달했다.

김 순경은 “그 분이 다음날까지 고마워해 뿌듯하고 기분좋았다”며 “탄력순찰의 효과를 본 것 같아 앞으로도 탄력순찰을 통해 시민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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