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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대한항공 2대 주주’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능할까요?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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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대한항공·한진칼 지분 10% 이상 보유

투자기업 상대로 첫 공개서한 발송

법적으로 다양한 주주권 행사 가능하나

의결권 찬·반 행사나 배당 확대 요구만

정부·정치권 기금운용 입김 우려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필요하단 시각

연구용역 보고서 “적극적 주주활동 필요”

이사 후보 추천·위임장 대결 등 제안


한겨레

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5월7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갑질'을 규탄하고 조 회장 일가에게 경영 일선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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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에 대한 각종 갑질 및 밀수·탈세 혐의 수사가 이어지면서 ‘대한항공·한진칼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6월 초 대한항공에 공개서한을 발송하고, 뒤이어 경영진을 면담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을 상대로 공개서한을 발송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연금이 그동안 묵혀둔 ‘주식회사 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인데,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주주권을 행사할지 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올해 3월말 기준 대한항공 최대 주주는 ㈜한진칼(29.6%)이며, 국민연금은 약 12.5% 지분을 갖고 있다.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 일가가 지분 약 25%를 보유한 한진그룹 지주회사인데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11.8%를 보유 중이다.

공개서한 발송은 주주 권리 중 하나

상법과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일정 비율의 주식을 일정 기간 동안 보유한 주주는 주주총회 소집청구, 회계장부 열람, 주주제안권, 이사해임 청구, 주주대표소송 제기 권한, 이사의 위법행위 유지(중지) 청구 등을 행사할 수 있다. 이렇게 법에 명시돼 있는 주주권 외에도, 회사에 공개나 비공개로 서한을 보내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주주가 지닌 권리 중 하나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기업가치가 훼손돼 결과적으로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찬·반 의결권 행사, 배당성향(당기순이익 가운데 배당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은 기업에 대한 비공개 대화·명단 공개 정도만 해왔을 뿐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첫 공개서한 발송에 대해 “앞서 대한항공에 비공개 서한을 보냈으나 제대로 된 답변이 오지 않았다”며 “갑질 사건이 알려진 이후 주가가 하락했고, 오너 일가 리스크가 장기적으로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들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개서한에 대한 답변 공개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며, 경영진 면담은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조 회장 일가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기업 경영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개선책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러한 활동으로도 대한항공 사태에 대한 해법 모색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론상으로는’ 더 강한 주주권 행사가 가능하지만, 공개서한·면담 이외 활동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 주주권 행사에 소극적이었던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특정 기업 지분을 5% 이상 보유하는 경우,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가 아닌 ‘경영 참여’로 바꾸면 지분변동시 5일 이내 공시 등 의무가 발생해 투자에 지장이 오고, 시장에 혼란을 초래한다며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주주대표소송에 대해서도, 시민단체나 주주들의 참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주주대표소송이란, 경영진의 불법 행위로 회사가 손해를 입었을 경우, 주주가 해당 경영진을 상대로 회사에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소액주주 운동을 했었던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1996년 에버랜드가 헐값으로 발행한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제일모직 이사 및 감사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2006년 소송에 필요한 최소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자들을 찾았는데, 외국계 투자자들은 참여 의사를 밝힌 반면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 소송에 대해 2012년 대구고법 민사3부는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장남 등에게 조세를 회피하면서 에버랜드의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해 이건희 회장 등의 주도로 이뤄졌고, 암묵적으로 제일모직에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도록 한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한 바 있다.

국민연금기금 운용이 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주주권 행사 역시 악용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 수탁자 책임 원칙)’를 마련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예정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투자 회사의 중·장기적 발전과 가치 향상을 추구함으로써 자산을 맡긴 국민·고객의 중장기적 이익을 위해 충실하게 이행해야 하는 원칙이다. 기관투자자는 이러한 원칙을 자율적으로 이행하되, 만약 지키지 못할 경우 사유나 대안을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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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소속 단체 대표자들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 결의한 것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는 고발장을 접수하러 들어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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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다면?

국민연금공단이 고려대 산학협력단에 맡긴 연구용역 ‘국민연금 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연구진은 “특정 기업·산업의 부적절한 행위가 미래세대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다른 기업 가치에 부당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국민연금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 회사에 대한 공개서한 발송 뿐 아니라 주주대표소송, 사외이사·감사 후보 추천, 의결권 행사 위임장 대결 등 주주권 행사 폭을 지금보다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투자 회사와 서신 교환 등 비공개 활동을 우선으로 하되, 사외이사 후보 추천 등 주주제안 같은 공개적인 활동은 위법 행위나 피해 금액 확인, 그에 준하는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민연금이 정부, 재계, 노동계 등 이해관계자 그룹의 부적절한 영향력 행사 등을 최소화하려면 주주활동 관련 조직 및 의사결정 체계를 개편하고 책임성 및 투명성을 높이는 등 주주활동 거버넌스 변화를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7가지 원칙에는 주주활동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한 철학 공개·정부나 정치권, 가입단체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정책 제정 및 공개, 투자 회사 재무적·비재무적 위험 요인 점검, 주주활동 주기적 보고·역량 및 전문성 강화 등도 포함돼 있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이러한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스튜어드십 코드안’을 마련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국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국민연금기금 규모는 약 621조원이며 이 가운데 국내 주식에 투자한 금액은 약 131조원으로 우리나라 주식 시가총액 7%에 달한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시이오(CEO)스코어가 낸 자료를 보면, 지난해 9월말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지닌 기업은 275곳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지배구조나 배당 문제에 대해 주주들이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는데,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면 이러한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크다”며 “그러나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할지, 과도한 경영 참여가 있지는 않을지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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