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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아직 살만한 세상]“열매 따러 꼭 와”…경찰관이 자살기도 여고생과 나무 심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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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시도하던 여고생 400m 추격해 확보

-무화과 심으며 닫힌 마음 열어…“딸 같아서”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아파트 10층 난간에 여자가 걸터앉아있어요.”

지난달 18일 오후 1시 50분께 누군가가 자살을 시도한다는 신고를 받은 서울 대치지구대 2팀은 곧장 강남구 대치동의 해당 아파트로 출동했다. 알고 보니 자살을 시도하려는 여성은 고등학생 A 양으로 전날 “친구가 자살하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실종됐다”는 또 다른 신고 내용의 주인공이었다. 지구대는 전날 A 양을 찾지 못해 행방을 알 수 없는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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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지구대 직원이 건물 옥상에서 A 양과 함께 무화과 나무를 심는 모습. [사진제공=대치지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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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팀의 박용진(27) 경장 등 2명은 곧장 해당 아파트에 도착해 10층까지 달려 올라갔다. 그러나 신고자의 말과 달리 아파트 난간엔 아무도 없었다.

그 사이 김훤국(53) 경위 등 다른 직원들은 아파트 주위를 수색했다. 근처 PC방까지 확인하고 나온 김 경위는 우연히 아파트 근처에서 한 여학생을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A 양임을 안 김 경위는 천천히 다가가 학년과 나이를 물었다. 그러나 답변이 예상하던 바와 다르자 김 경위는 A 양의 신원을 재확인하고자 무전기를 들었다. 그 순간 여학생은 도망쳤다. A 양 다른 학년과 이름을 말하고선 달아난 것이다. 김 경위가 곧장 A 양을 쫓아가면서 아파트 단지 내에선 예상치 못한 추격전이 벌어졌다. 김 경위가 400m 넘게 달린 끝에 겨우 A 양을 붙잡았다. 당시 A 양 팔에는 자신의 이름, 연락처, 학교 등이 적혀 있었다. 극단적인 선택 이후 자신의 신원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지구대 직원들은 A양을 우선 진정시키기 위해 지구대로 데려왔다.

A 양이 이틀째 굶었다는 것을 알게 된 박찬엽 2팀장은 우선 A 양에게 햄버거를 쥐어줬다. 배부터 채운 후 진정시키자는 판단이었다. 이어 지구대 주위를 함께 산책하면서 자신의 딸 이야기, 대학 이야기 등을 하며 조금씩 A 양의 맘의 문을 열었다. 극단적인 결심을 생각한 이유도 부진한 학교 성적과 어머니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뭔가 작은 삶의 목표를 가져 위험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고 판단한 박 팀장은 당일 옥상에서 직원들과 심기로 한 무화과나무를 떠올렸다. 옥상에 A 양을 데리고 간 직원들은 A 양이 직접 나무를 심도록 했다. 이어 “나중에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으면 꼭 따러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삶의 의지를 놓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A 양의 얼굴엔 조금씩 미소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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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지구대 직원이 A 양과 스마트폰 영상을 보며 라포를 형성하는 모습. [사진제공=대치지구대] 김훤국 경위 [사진제공=대치지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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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양이 무사히 집에 돌아간 이후에도 A 양의 어머니에게 직접 연락해 딸의 상태를 확인한 김 경위는 “막 태어난 꽃과 같은 아이가 학업이나 부모 문제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며 “우리 딸과 나이도 비슷해 딸처럼 여겨져 A 양에게 언제든지 지구대에 놀러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 경장도 “현장에서 막 붙잡았을 때 뭔가 좌절하는 듯한 아이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며 “조장이 상황을 잘 이끌어주고 모든 직원들이 합심한 덕분에 아이를 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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