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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 온 지 셋째날. 드디어 맑게 갠 하늘을 보게 됐다. 이런 쾌청한 날은 아침부터 들뜬다. 샤워를 하고 수아를 씻기고 아침을 먹었다. 전날과 같이 크로아상 2개, 볶음밥과 과일로 배를 채운 그녀는 앙탈부리지 않고 얌전히 유모차에 몸을 맡겼다. 첫 일정은 루체른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다는 ‘빈사의 사자상’이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프랑스왕 루이16세를 위해 희생됐던 스위스 용병을 기리기 위해 만든 조각상이라고 한다. 걸어가도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만능 치트키 ‘스위스 패스’를 갖고 있기에 버스를 탔다. 스위스 패스는 8일 이용권이 43만원 가량 하는 고가의 교통권인지라 스위스 어지간한 도시에선 대부분의 교통수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이런 걸 구매하면 본전을 뽑아야 하기에 자주 이용하게 된다는)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걷다 보니 빈사의 사자상 팻말이 보인다. 사자상은 한적한 공원 안에 있었다. 비수기라 그런지 기념 촬영하러 온 관광객도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핫스팟에서 기념촬영을 하려했더니 수아는 유모차에서 딥슬립을 즐기고 있었다. 사자상과 포즈가 상당히 비슷해 보이는데 얼굴 각도가 10도가량만 더 기울었으면 완벽했을 것 같다. 1, 2, 3 찰칵.
수아야, 눈으로 본 기억은 나지 않겠지만 ‘빈사의 사자상’과 함께 했었다는 걸 알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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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코스로 가려고 했더니 대형 마트 ‘COOP’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말로 읽으면 코업, 코압, 쿱 중 하나인데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원래 구경하면 시장(마트)구경 아닌가. 마침 컨버터를 하나 사야해서 마트를 갈 상황이었다. (스위스는 전기 플러그가 우리나라와 달라서 컨버터가 필요하다) 마트에서 와인구경도 하고 치즈구경도 하고 소시지구경도 하고··· (컨버터는 언제 사니)
거금 3만원에 달하는 아주 값비싼 컨버터와 수아의 점심꺼리 크로아상과 우유를 산 뒤 오늘의 메인 플레이스인 필라투스산으로 향했다. 필라투스산은 보통 산악열차를 타고 오르지만 겨울철에는 열차가 운행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간 뒤 크리엔스(Kriens)라는 지역에 내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구글맵을 통해 대중교통을 잘 검색한 뒤 버스에 올라탔다. 타는 건 좋았는데 내리는 게 문제였다. 크리엔스라는 명칭이 지역 이름이어서 버스가 어느 지역을 지나서부터는 모든 정거장 이름이 크리엔스 어쩌구저쩌구였다. 이런 경우엔 2가지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 지역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관광객처럼 보이는 이들의 동태를 살피며 눈치껏 내리는 방법이다. 내가 계속 두리번거리니 앞좌석의 할머니가 이심전심 내 마음을 콕 읽으시고 어깨를 툭툭친다. 독일어로 열심히 설명을 하시는데 신기하게도 우리말로 “다음다음 정거장에 내려”라고 말하는 듯 들린다. “2정거장 더 가요?(2 stops more)” 확인차 물어보니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독일어로 열심히 답하는데 거참 신기하게도 우리말로 “2정거장 뒤에 내리면 돼”라고 들린다. 2정거장을 더 가니 할머니가 나더러 빨리 내리라고 손을 휘이휘이 젓는다. 등 떠밀려 내렸는데 인도 여행객으로 추정되는 가족도 나를 따라 내린다. (여행객들이 내리면 대체로 맞는 것임) 주위를 둘러보니 필라투스산 가는 길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혹시 이곳을 찾는 독자들이 있다면 ‘Zentrum Pilatus’라는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됩니다) 경황없이 내려서 할머니한테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한 게 미안하다. 어쩜 서로 다른 언어로 해도 이렇게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일까. 여행을 갈 때마다 여행에서 언어 장벽이란 게 실상 크지 않고 여행자의 언어는 이심전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라투스 곤돌라를 타기 위해서는 약간의 산책이 필요하다. 날씨도 좋으니 즐겁게 산책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슬슬 걸어가는데 경사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서울 남산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 명동역에서 출발했다면 리라초등학교까지 올라가기 위해 경사를 올라야 하는 정도라고 할까. 유모차를 끌고 언덕을 올라 올라 오르니 곤돌라 탑승장 입구가 나왔다.
곤돌라에 오르니 수아도 잠에서 깼다. 저 멀리 루체른 호수와 마을들이 보인다. 광활한 알프스의 설경이 장관이다. 여행온지 사흘 만에 처음으로 만족감을 느꼈다. 집 밖에 나갈 때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좋아했던 수아도 곤돌라 밖의 풍경을 연신 둘러보며 자연을 눈에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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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돌라에서 내려 필라투스 쿨롬(전망대)에 도착했다. 산 위는 역시 바람 소리가 다르다. 전망대 건물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더니 태풍 소리가 들려온다. 수아가 없었다면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 돌아다녔겠지만 아동 보호 차원에서 이번엔 전망대 건물 안에서 자연을 감상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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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 도심으로 다시 돌아왔다. 루체른은 맑은 호수 뒤로 눈 덮인 설산들이 쫙 펼쳐진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전날은 비가 내려 이런 풍경을 느끼지 못했지만 날씨가 좋아지니 루체른의 매력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에 오면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멋질 것으로 생각된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수아가 대학생이 될 때 또 한번 와야겠다. 17년 뒤 루체른은 얼마나 달라질 것일까. 대학생 수아가 베이비 수아 때의 사진을 보면서 같은 장소를 거니는 것도 본인에게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루체른 호수 주변을 거닐다 다음 목적지인 베른으로 향했다. <4편에서 계속>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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