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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차이나 인사이트] 중국은 왜 한반도 문제 ‘당사국’을 자처하고 나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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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책임’ 회피하는 전략으로 한반도 문제 ‘중재자’라던 중국 이젠 ‘당사국’이라 주장하기 시작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변화 속 중국 배제 ‘차이나 패싱론’ 씻고 한·미 양국에 경고 메시지도 담아 중국은 향후 한반도 비핵화보다 영향력 확보 전략으로 선회하며 한반도 내 발언권 강화에 나설 듯

“북핵(北核)을 키운 절반의 책임이 중국에 있다”는 말이 있다. 중국이 대북 제재의 구멍 역할을 하는 바람에 북한이 핵을 개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 문제는 중국이 해결해야 한다”며 중국책임론을 거론한 배경이다. 반면 중국은 “북·미 모순이 북핵 문제의 실질적 원인”이라며 미국에 책임을 돌린다. 한데 그런 중국이 최근 자신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자처하고 나섰다. 책임을 지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나.

‘중재자’에서 ‘당사자’로

중앙일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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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이제까지 국제 사회가 제기하는 북핵 문제의 중국책임론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려 애를 썼다. 중국 외교부는 2016년 9월 “북핵 문제는 북·미 모순이 실질적인 원인으로, 미국이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유사한 발언을 중국 외교부는 2017년 9월에 이어 올해 1월에도 두 번이나 거듭했다. “북핵 문제를 중국과 연계하지 말라”는 입장을 매년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셈이다.

한데 최근 한반도 정세의 급변 속에 중국이 발 빠르게 그 입장을 바꾸고 있어 주목된다. 중국 정부가 4월 19일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게 대표적 예다. 여기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건 중국이 자신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콕 집어 표현했다는 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의 자기 위치와 관련해 ‘건설적 역할을 하는 국가’ 혹은 ‘독특한 역할을 하는 국가’ 정도로 머무르려 하지 않았나. 한데 이제는 입장이 180도 바뀌면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라고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과거 중국 외교부 기록을 보면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북한과 미국, 한국을 거론하면서 중국 스스로는 이 같은 당사자의 범주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지난해 8월의 경우 “중국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직접 당사자들이 용감하게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지고, 해야 할 역할을 해주기를 희망한다”고 권유하기도 했다.

중국 제외하는 ‘차이나 패싱’ 불식

중국이 과거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신분을 극구 고사(固辭)했던 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당사자가 되면 문제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는데 중국은 이게 싫었다. ‘책임’이라는 무거운 부담을 회피하고자 당사자가 되는 걸 한사코 반대했다. 대신 중국은 ‘중재자’ 입장을 내세웠다. 북핵 6자회담 개최를 알선한 게 좋은 예다. 중국은 또 중재자 신분에서 ‘쌍중단(雙中斷,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지와 한·미 연합훈련 중지)’과 ‘쌍궤병행(雙軌竝行,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체제 협상 병행 추진)’이라는 북핵 중재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던 중국이 왜 이제까지 자신이 고수해 온 중재자 신분을 던져버리고 갑자기 당사자 신분을 표방한 것일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 하나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한반도 정세의 급변 속에서 중국 표현대로 자신이 ‘주변화(邊緣化)’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차이나 패싱’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한 중국의 움직임이 대외적으로 드러난 게 지난 3월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 수용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김 위원장의 첫 해외 정상회담 파트너가 됨으로써 그 누구도 중국과 상의 없이는 한반도 문제를 함부로 결정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발신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북핵 문제를 미·중 관계에서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 다툼으로 보는 중국으로선 김 위원장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중국을 찾은 게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중국은 마치 이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최근 들어 확실한 ‘친북’ 행보를 걷고 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열린 중국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겅솽(耿爽) 대변인이 대북 제재 해제 바람을 잡은 게 대표적인 예다. 그는 “유엔 안보리에서 통과된 유관 결의에 따라 북한이 결의를 이행하거나 준수하는 상황에서 필요에 따라 제재를 조정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이는 관련 제재를 중단하거나 해제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한·미 두 나라에 대한 경고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신분을 주장하고 나선 두 번째 이유는 ‘차이나 패싱’ 논란을 야기한 두 나라, 즉 한국과 미국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차이나 패싱’이 그 실체 여부와 상관없이 중국의 자존심을 크게 손상한 것은 분명하다.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국이 중국과 충분히 상의하지 않았다며 내심 서운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이 중국을 제쳐 놓은 채 북한하고만, 그리고 미국하고만 소통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 초 남북한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한 신년사를 발표하자 한국이 이를 중국과 일언반구의 의견 교환도 없이 받아들이고, 또 중국 쿤밍(昆明)에서 한국이 북한과 비밀리에 접촉해 평창겨울올림픽 참가 문제를 논의한 것 등에 대해 중국이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은 한국이 북한과 벌이는 일, 그리고 미국과의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 있어 중국과 충분히 공유하지 않는다고 의심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심사가 뒤틀리게 된 건 한국이 중국을 배제한 종전 선언 문제를 꺼내면서다. 또 한국 정부에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부 학자들이 공개 세미나 등에서 중국이 비핵화 논의에 “숟가락을 얹으려 한다”고 말하며 중국에 대해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중국의 심기를 자극했다.

그래서인지 중국 정부의 의중을 은연중 대변한다는 말을 듣는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사설에서 중국을 배제한 남·북·미 3자에 의한 종전 선언이 거론되고 있다며 이는 “특별히 가소로운(尤其可笑)” 일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 역시 남·북·미 3자만 참여하는 종전 선언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중요 당사국이자 정전협정 서명국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전쟁 정전 협정 당사자인 중국을 어떻게 빼놓을 수 있느냐는 반론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중국에 한반도 문제에서의 ‘차이나 패싱’ 불안감을 자극한 시발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개최 선언이었다. 트럼프는 “북한 문제는 중국이 풀어야 하는 문제(North Korea is China’s problem to fix)”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마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이 북핵 문제는 중국을 통해서 풀어야 한다며 ‘중국책임론’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젠 ‘더는 중국이 필요 없고 미국이 북한과 직거래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격이 됐다.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시진핑 주석이 세 차례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한·미 입장에선 갑작스러운 북·중 정상회담이 ‘새치기’로 비친다는 것이다. 남북한 정상의 판문점 회동에 앞서 1차 북·중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졌고, 2·3차 정상회담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다롄(大連)에서의 북·중 2차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태도가 강경해졌다며 그런 변화의 동인으로 ‘중국 배후설’을 지적하기도 했다.

비핵화보다 영향력 노려

중국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진행했다는 건 북핵 문제가 한·미의 주도 때문에 현상 변경될 가능성이 커지자 ‘북한에 대한 비핵화’와 ‘한반도 영향력 확보’ 중에서 후자 쪽으로 전략의 무게 중심을 옮긴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전술적 미시 조정이 전략적 거시 조정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이 앞으론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북한과의 관계를 희생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로선 복잡한 북핵 협상의 변수를 최대한 줄이려는 차원에서 중국이 잠시 한 발 뒤로 물러난 지점에서 무게 중심을 잡고 있어 줬으면 하고 바랐을 수 있겠다. 하지만 타이밍이 문제가 된다. 굳이 이 시점에 종전 선언 문제를 선제적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중국은 북핵 문제에서 자신이 소외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어깃장을 놓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할 수도 있다. 자칫 한·미 주도의 북한 비핵화 노력을 방해(打亂)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남북한 정상회담 다음 날 중국 군용기가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한 건 중국의 불편한 심기를 시사하는 것으로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차이나 패싱’으론 북핵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싫든 좋든 중국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비핵화 로드맵을 그려가야 할 것이다.

◆ 이성현
미국 그리넬대 졸업 뒤 하버드대학에서 석사, 중국 칭화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팬텍펠로우로도 활동했다. 현재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을 겸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대 한반도 연구센터 선임 연구위원이기도 하다. 최근 논문으로 ‘역사적 시각에서 본 중국의 대북정책 임계점’ 등이 있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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