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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His 스토리] 트럼프 이민정책 설계한 ‘숨은 실세’ 스티븐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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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와 자녀를 격리하는 정책을 논란 끝에 철회한 가운데, 이 이민정책을 설계한 극우 성향의 반(反)이민주의자인 스티븐 밀러(32) 백악관 선임 정책 고문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밀러 고문은 2016년 대선 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보좌한 인물로 다른 참모들에 비해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민자 자녀 격리정책부터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 해임,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 낙마 등 큰 논란을 일으킨 정책 결정을 조정한 숨은 실세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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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 정책 고문. /유튜브 캡처


◇ 이민자와 자녀 격리 ‘무관용 정책’ 설계자

24일(현지 시각) 미국 CNN은 최근 역풍을 몰고온 이민자 무관용 정책에 대한 주요 책임은 정책 설계자인 밀러 고문에게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강경한 이민자 정책을 내세웠지만 여론의 역풍을 우려해 이민자의 가족을 건드리는 문제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이었다. 지난해 3월 존 켈리 당시 국토부장관이 꺼낸 이민자 자녀 격리 발언이 큰 반발을 사자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이 정책을 철회했다.

그러나 밀러 고문은 다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이 정책을 밀어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DACA·불법체류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 폐지를 선언하자 밀러 고문은 “이민법 개정안에는 불법 이민자들이 입국을 장려하는 허점들을 막는 새로운 내용들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트럼프 행정부는 결국 불법 밀입국자를 형사처벌하고 이에 따라 밀입국자의 미성년 자녀를 분리·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후 최근 6주간 2000여 명에 달하는 불법 이민자의 자녀들이 보호 시설에 격리 수용되면서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커스텐 닐슨 국토부장관 등 주변 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책을 철회할 것을 설득했다.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공화당 의원들도 반대에 나섰다. 그러나 밀러 고문은 “무관용 정책만이 불법 이민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정책”이라며 백악관 참모진 중 거의 유일하게 철회를 반대했다.

지난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 자녀 격리 정책을 철회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지만, 밀러 고문이 백악관을 지키고 있는 한 강경한 이민정책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밀러 고문이 이민 정책을 맡고 있는 한 우리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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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밀입국자 부모와 미성년자 자녀를 강제 격리 수용하는 정책을 철회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문서를 들어올려 보이고 있다. /타임


◇ 학창시절부터 反이민주의자 성향

CNN에 따르면, 밀러 고문은 고등학생 때부터 이민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그는 지역 언론인 ‘산타모니카 룩아웃(Santa Monica Lookout)’에 “학교가 영어를 못하는 히스패닉 계열의 학생들에게 스페인어로 된 자료도 제공하며 도움을 줬기 때문에 오히려 히스패닉 학생들의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졸업 후 입학한 듀크대에선 이민과 다문화에 대해 다룬 ‘크리스마스 전쟁’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는 등 이민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밀러 고문은 보수 정치인인 미셸 바크먼 당시 미네소타 하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제프 세션스 당시 상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세션스의 강경한 이민정책의 핵심 토대를 만들었다. 특히 2013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양당이 공동발의한 이민법 개혁안에 강하게 반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 개혁안은 불법 이민자 500만여명에게 합법적인 체류 지위와 취업을 허가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 백악관 ‘숨은 실세’…논란됐던 정책의 핵심

밀러 고문은 2016년 1월 트럼프 대선캠프에 합류해 당 경선대회와 대선 등 중요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보좌했다. 유세 현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전 관중들에게 나서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그의 주된 역할이었다. 그는 당시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은 나라를 망친 사람들”이라며 거친 표현도 마다하지 않으며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을 보였다.

그 덕분인지 밀러 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주변 참모들이 여러번 교체되는 인사 소용돌이 속에서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신임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밀러 고문은 언론에 크게 노출된 적은 없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 논란이 됐던 정책 결정을 조정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발표해 논란에 부딪힌 ‘반이민 행정명령’을 설계했다. 이 정책은 중동·아프리카 7개국 출신을 미국에 입국할 수 없도록 한 조치로 지역 법원과 연방 공무원들이 대대적 반발에 나선 바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하던 제임스 코미 전 FBI(연방수사국) 국장의 해임에 관여하는 등 인사 정책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차기 주한 미대사 내정자였던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낙마한 데에도 밀러 고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추측도 있다.

최근에는 백악관이 ‘무관용 정책’으로 인한 역풍을 겪은 뒤 밀러 고문의 입지가 불확실해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일 밀러 고문이 트럼프 대통령의 미네소타 덜루스 유세 현장에 동행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이 같은 의혹이 무색해졌다는 분석이다.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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