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의 천년고찰 강천사. |
[순창=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 순창, 전라북도 순창은 고추장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원래 하나의 강력한 이미지가 있으면 나머지는 죄다 그에 가려지기 마련이다. 마동석이 내면연기를 잘하지만, 울룩불룩한 근육만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순창 강천산 오르는 길은 평탄하다. |
전남과 맞붙은 순창은 산수가 좋기로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다. 호남의 금강(이런 별칭이 많기는 하다)이라는 강천산과 회문산이 솟고 적성강과 섬진강이 흐른다. 여기다 훈몽재와 강천사 등 유불(儒佛)의 향기도 진하게 서린 유서깊은 고을이다. 매콤달콤한 고추장은 순창이란 근사한 비빔밥을 돋보이게 하는 양념일 뿐이다.
졸졸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을 끼고 오르는 순창 강천산 탐방로 |
다들 자신 만의 비상금처럼 강천산을 꽁꽁 숨겨두고 몰래 가을 단풍놀이를 다니지만, 사실 자연이 좋고 먹거리가 푸짐한 순창은 여름 여행지로도 딱이다. 강천산에 한번 올라갔다 내려와 섬진강 상류 계곡에서 시원한 물놀이를 즐기고 있노라면, 여름더위 따윈 남의 SNS에서나 볼 일이다.
강천산은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
◇고추장처럼 매운 핫플레이스
순창에 가면 국내 최초 군립공원인 ‘강천산’을 먼저 들러야 마음이 놓인다. 아무래도 날씨가 휘떡휘떡 뒤바뀌는 여름날엔 언제 비가 들이칠지 모른다. 강천산은 등산객도 좋아하지만 탐방로가 나지막해 남녀노소 가볍게 둘러보기에 좋다. 입구부터 병풍폭포가 기다렸다는 듯이 양팔 벌려 맞는다. 일부러 끌어올린 물을 내리는 방식이지만 높이 100여m에서 떨어지는 낙수 소리가 근사하다. 보기만해도 가슴 앞섶이 활짝 열린듯 시원하고 후련해진다. 여행의 시작이다.
순창 강천산에는 폭포도 많다. 구장군 폭포. |
맑은 물이 깔린 계곡을 따라 탐방로가 이어진다. 거슬러 오를수록 캄캄하다. 나무그늘이 하늘을 땡볕을 가려 시원하다. 자세히 보니 죄다 단풍 수종이다. 가을엔 또 얼마나 화려해질까. 지금도 진록이지만 눈부시도록 고운 녹색이다. 샙그린과 시트러스 그린, 한없이 푸른 그린의 나뭇잎을 스치고 들어온 공기를 들이쉬니 피부 셀 하나 하나에 스며들어 젊어진 기분이다.(내려와 거울을 보니 꼭 그런건 아니었다.)
강천산이 있어 순창의 여름은 시원하다. |
용이 올라 승천했다는 강천산을 오른다. 재미가 쏠쏠하다. 박세리처럼 맨발로 시냇물을 건너고 현수교를 건넌다. 이른 더위에 입에서 불이 나오니 정말 용이 된 기분이다. 탐방로 끄트머리에는 널찍한 광장이 나오고 여기서 쏟아지는 구장군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깎아지른 120m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비올 때만 흐르는 건폭이라 인공으로 흘려보내지만 장마철엔 더욱 많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쏟아지는 세 물줄기를 감상하며 느긋하게 냉차라도 한잔 한다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용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강천산을 가면 승천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암절벽에서 흐르는 폭포, 순창 강천산 구장군 폭포. |
내려오는 길에도 줄곧 멋진 계곡이 함께 동행한다. 시원한 바람을 몰고 다니니 여느 산행길보다 매력적이다.
순창 장군목. |
◇섬진강의 첫줄기를 찾아서
섬진강,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류와 합류하기 전 적성강이 흐르는 곳에 장군목이 있다. 임실과 맞닿은 장군목은 신선이 노는 곳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운치가 기막힌 곳이다. 장군목을 품은 내룡마을은 ‘용궐산 장군대좌형’ 지세라 해서 명당으로 소문났다.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섬진강 212㎞의 최상류에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뚝뚝 놓여있다.
순창 장군목. 요강바위도 이곳에 있다. |
하나하나가 수석이고 조각품같다. 직선이 없이 곡선으로 이뤄졌다. 망측하고 요사스럽다. 둥글둥글한 것이 풍만한 여성의 나신을 빼닮았다.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이 요강바위다. 커다란 너럭바위에 자연적으로 구멍이 뻥 뚫린 것이 꼭 요강을 닮았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아이를 못낳는 여인이 구멍에 들어갔다오면 대번에 수태한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이 숨었다 등 신묘한 전설과 이야기를 품은 마을의 보배다.
섬진강 상류의 맑은 물을 관조할 수 있는 여름 여행지 장군목. |
1993년 내룡마을에 큰 일이 생겼다. 요강바위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도둑을 맞았다. 무게가 15톤이나 나가고 폭이 3m나 나가는 거암을 어떻게 훔쳐갔을까. 마을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바로 얼마전부터 도로를 낸다고 땅을 파던 사람들이 용의자로 떠올랐다. 도둑들은 주도면밀했다. 마을에 공사중 푯말을 내걸고 중장비를 동원해 실제 작업중인 것처럼 했고, 사건 당일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는 의미로 여행을 보내줬다고 한다.
이후 전국에 수소문한 끝에 1년 6개월 만에 되찾아왔다. 내다 팔려고 경기도 광주 석재상에 갖다놓았던 것을 주민들이 찾아왔다. 원래 있던 자리에 도로 놓았다.
순창 장군목의 기기묘묘한 바위들, 가운데 큰 바위가 요강바위다. |
장군목 주변 길은 풍경좋은 섬진강 자전거 도로로 소문났다. 강을 내려다보는 전망대 구실을 하는 현수교도 있다. 이 출렁다리는 길을 지나는 라이더들을 죄다 멈춰세울만큼 경치가 좋다. 진안부터 순창을 거쳐 곡성, 구례를 지나 멀리 광양까지 길이 이어진다.
순창 훈몽재. |
◇매콤달콤 속 고소한 여행지
순창은 산수만 좋은 곳이 아니다. 천년고찰 강천사와 유교 교육의 산실 훈몽재 등 역사·문화적 명소도 많다. 선운사의 말사인 강천사는 강천산 탐방로 중간에 위치했다. 신라 진성여왕 때(887년) 풍수의 대가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한때는 1000명이 넘는 스님이 살았다는 큰 절이었지만 왜란과 전쟁으로 유실되고 60여년 전 재건한 경내엔 한쪽 끝이 뭉툭해진 삼층석탑(전북 유형문화재 제 92호)과 석등 만이 옛모습으로 남아있다.
순창 강천사. |
삼인대(三印臺)는 강천사에서 냇물을 건너면 만날 수 있다. 비는 1744년(영조 20년)에 세운 것이다. 사람 셋의 3인(三人)이 아니라 도장 셋의 3인(三印)이다. 연산군 12년(1506년) 중종반정이 성공한 후, 반정에 반대한 신수근 일파를 숙청하고 그의 딸 신씨를 폐비시켰다. 10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유옥 등 3명의 지방관리 3명은 비밀리에 이곳 강천산 계곡에 모였다. 후궁 박씨가 염려한 그들은 대신 억울하게 폐위된 신씨를 복위시켜야 한다고 상소를 하기로 결의했다.
이때 이들은 소나무 가지에 각자의 관인을 걸어놓고 맹세했다. 삼국지 도원결의처럼 모든 것을 걸겠다는 선비로서의 결기요 의지였다. 상소는 올라갔고 그들은 예감대로 화를 당했다.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 지방 후학들이 이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한 삼인대를 세웠다. 삼인대(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7호)는 순창을 비롯한 호남 유생들의 결기를 상징하는 비석으로 굳건히 지켜오고있다.
순창 삼인재. |
훈몽재도 있다. 문필봉이 우뚝서고 추령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명당 자리에 현대유학교육의 산실로 자리잡은 곳이다. 역사는 길다. 조선 명종 3년(1548년) 하서 김인후가 처갓댁이 있는 순창 점암촌으로 들어와 후학 양성을 위해 초당을 짓고 ‘훈몽(訓蒙)’ 편액을 걸었다. 이후 하서의 5대손 김시서가 훈몽재를 중건했다. 1820년 후손들이 훈몽재를 중건하고 어암서원을 건립했다. 이후에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한국전쟁 등으로 소실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다.
순창 훈몽재. |
이후 순창군은 훈몽재와 부속건물 자연당, 양정관, 심연정 등을 복원하고 유학 예절 교육기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와 외국인 등 많은 이들이 유학의 기본을 되새기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훈몽재에는 고당 김충호 산장과 지암 유승훈 훈장이 늘 지키고 있어 언제라도 들러서 만날 수 있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있어 미리 신청하면 체험할 수 있다.
demory@sportsseoul.com
순창은 고추장의 고장이라 돌로 만든 의자 역시 장단지를 닮았다. |
순창여행정보
●먹거라=물맑은 고장답게 곳곳에 매운탕 맛집이다. 장군목 요강바위 인근에 위치한 장구목은 각종 매운탕을 비롯해 정갈한 상차림을 내는 집. 농가맛집으로 인증 받은 곳이다. 민물새우탕이 시원하다.(063)653-3917
순창에서 유명한 피순대를 맛보고 싶다면 순창시장 내 ‘2대째 순대’를 가면된다. 애기보와 암뽕, 선지만 가득 채워넣은 순대로 끓여낸 국이 생김새와는 달리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낸다. 칼칼한 국물도 일품.(063)653-0465.
●숙소=순창에서 고추장 담그기, 농촌체험 등을 해볼 수 있는 체험마을이 있다. 아미산 아래 깨끗하고 시설좋은 숙소까지 함께 있다. 체험만 할 수도 있지만 숙박만 할 수는 없다. 장류체험관(063)650-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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