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
거북모양 바위에 올려 지은 청암정
안쪽 들어서니 사방에 퇴계선생 편액
빼어난 풍광에 단골촬영지로 유명
500년 넘게 지켜온 안동 권씨 집성촌
소나무 숲·기암괴석 계곡 어우러져
이중환 '택리지'서 길지로 꼽히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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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닭실마을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겨울에도, 2년 전 여름에도 이 마을에 들렀었다.
새벽잠이 없어 항상 동트기 전에 마을을 찾았다. 그때마다 이곳은 닭 울음소리를 빼면 적막강산이었다. 궁금한 것은 많은데 풍경은 말이 없고, 아직 잠들어 있을 고택의 주인들을 깨울 수도 없었다. 기사를 쓰기 위한 재료들은 그저 봉화군의 관광안내 책자에서 주워담을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지역 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에 닭실마을 권씨 종손과 마주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기에 취재에 나서기로 했다.
“닭실마을은 원래 안동 관할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시가 중심에 중인과 아전이 살고 봉화 같은 외곽은 양반이 살았지요. 그런데 조선 중기에 닭실마을을 포함한 일부 지역이 봉화로 편입됐습니다. 10개 문중이 봉화로 넘어갔지요. 이 지역 사람들은 ‘안동사람으로 죽을지언정 봉화에는 살지 않겠다’는 구호를 외치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봉화 닭실마을 지역 명사로 선정된 충재 권벌 선생의 종손 권용철씨가 삼계서원 앞마당에서 마을 연원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흰 광목으로 만든 두루마기를 입은 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이 안 돼 탈상을 못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근의 대학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다가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학예사로 일했다는 그는 얼마 전 낙향해 서원을 돌보고 있다.
그가 사는 닭실마을은 조선 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명승지로 꼽아 더욱 유명해졌다. 충재 선생이 직접 창건한 청암정, 큰아들 청암공 권동보가 만든 석천정사, 소나무 숲과 기암으로 이뤄진 석천계곡 등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중 삼계서원은 선조(宣祖) 21년(1588년)에 건립됐고 현종(顯宗) 원년(1660년)에 사액(賜額)된 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훼철(毁撤)됐다가 1960년대 초반 무너뜨린 건물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구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흉물스러워 최근 허물고 다시 목조로 지어 옛 모습을 되찾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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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서 깊은 삼계서원은 향사를 봄가을 2회만 지내고 있다. 서원의 원래 목적이 제사가 아니고 공부이기 때문이다. 권씨는 “요즘은 서원에 학생이 없기 때문에 일가가 모여 음력 3월에 향사를 지낸다”며 “매년 3월 둘째 주 일요일에 지내지만 앞으로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배려해 토요일로 변경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기독교에 보내는 유가(儒家)의 배려인 셈이다. 7월 염천에 두루마기를 입고 ‘3년상’을 치르는 종손답지 않은 혁신적인 생각이라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향사라는 게 조상을 숭모하는 시간인 만큼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종손 권씨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청암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암정은 충재 선생이 큰아들 권동보와 함께 세운 정자로 자연 그대로의 바위 위에 정자를 올린 구조다. 거북 모양을 한 너럭바위를 다듬지 않고 주춧돌과 기둥의 높낮이를 조절해 지은 정자다. 사방을 연못으로 둘러 돌다리를 건너지 않고서는 정자에 오를 수 없게 돼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물 위에 뜬 거북 등에 정자가 놓인 형상이다.
청암정의 경치가 워낙 빼어나다 보니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가 됐다. ‘동이’ ‘스캔들’ ‘바람의 화원’ ‘정도전’을 이곳에서 촬영해 일약 유명해졌다. 권씨를 따라 청암정에 들어 다과를 앞에 놓고 앉아보니 퇴계 이황 선생 등이 쓴 편액들이 사방에 걸려 기품을 더하고 있었다. 청암정에 앉아 진보적(?) 종손의 세계관을 듣다가 자리를 파하고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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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면 서벽리 옥석산과 문수산 일원에 걸쳐 있는 백두대간 수목원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목원으로 전체면적 5,179㏊ 중 206㏊를 중점 조성해 개방하고 있다. 2009년 첫 삽을 떠 7년 만에 완공한 수목원은 총사업비 2,200억원이 투입된 대역사였다. 우리나라의 희귀 특산식물과 고산식물을 수집, 증식해 보전하기 위해 설립된 수목원의 아이콘은 백두산 호랑이로 4.8㏊의 숲에 방사돼 있다.
하지만 수목원의 진짜 주인은 식물유전자원의 영구저장을 위해 만든 시드볼트(Seed Vault·씨앗금고)다. 안전한 보관을 위해 터널형으로 지어진 시드볼트에는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의 식물 종자 1만여 종 12만 점이 보관될 예정이다. /글·사진(봉화)=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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