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아시아경제 오성수 화백]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지하철 성수역 3번 출구, 성수동 카페골목은 초입부터 다채로운 소리들이 반깁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무채색 건물들에선 때가 묻고 녹이 슨 문 틈새로 '지잉' 기계소리와 쇳소리가 들려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몇 발자국 걸음을 옮겨 봅니다.
구두 조형물이 걸린 수제화 공방에서는 구두를 만드는 장인들의 망치 소리가 리듬을 탑니다.
수제화 골목을 지나자 잔잔한 음악소리와 커피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까지 더해집니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눈보다는 귀로 더 잘 느낄 수 있는 동네란 생각이 드네요.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맛있는 전시회' 닮은 한국의 브루클린=언제부턴가 낡은 공장에 예술인들이 하나둘 터를 잡더니 이곳은 어느새 예술의 거리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먼저 성수동의 대표명소로 자리잡은 '대림창고 갤러리 컬럼'에 들러 봅니다. 이곳은 1970년대 정미소로 지어졌습니다. 1990년부터 20년 넘게 물류창고로 쓰이다가 2011년 몇몇 젊은 예술가들이 인수했다는데요. 문화 무풍지대였던 성수동을 '예술의 거리'로 만든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도착하자마자 보인 건 붉은 벽돌 위에 투박한 글씨체로 적힌 '사무실'이란 글자. 잘못 찾아왔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이 '사무실' 안에서 은은한 커피향이 풍기고, 희미하게 음악 소리도 들려옵니다. 겉은 공장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간판을 발견하기 전까진 공장이 여전히 운영 중인가 하는 오해를 살 수도 있겠네요.
물류창고를 카페 겸 갤러리로 개조한 성수동 '대림창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더 혼란스럽습니다. 전시장이나 갤러리 같기도 한데 은은한 커피향이 느껴지는 걸로 봐서는 카페가 분명한데요. 붉은 벽돌이 층층이 쌓인 벽과 높은 천장, 그 아래에는 거대한 구조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작은 전시회가 열린 듯 몇 점의 미술품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한편에는 커피와 디저트를 판매 중인데, 평일엔 관람료를 받는 대신 음료를 판매한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전시장 겸 갤러리 겸 카페인 셈입니다.
대림창고 덕분에 지금은 상당히 많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와 화가, 디자이너들이 성수동에 터를 잡았다는데요. 이들 대부분이 빈 공장을 활용해 작업실 겸 가게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공장의 외관을 그대로 살리고, 옛 주인이 버리고 간 기계들도 인테리어가 됩니다. 한편에는 새 주인이 직접 만들고, 그리고, 찍은 작품들을 전시해 놓습니다. 이곳들도 마찬가지로 관람료 대신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거나 간단한 식ㆍ음료를 판다고 하는데요. 예스러움에 예술 감각이 더해진 '맛있는 전시회'이랄까요. 성수동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감성이죠.
성수동 카페거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골목 곳곳을 걷다 보면 붉은 벽돌의 건물들 속에 화려하게 그려진 그래피티가 활력을 더해줍니다. '한국의 브루클린'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성수동은 브루클린의 역사를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과거 공업단지였던 브루클린은 1980년대 미국 제조업의 쇠퇴로 공장들이 버려졌고, 맨하탄의 비싼 임차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예술가들이 빈 공장을 작업실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슬럼화가 진행되면서 범죄의 산지가 되고 있던 터라 미국 정부에서도 이들을 반겼습니다.
그런데 두 지역의 닮은 구석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최근 브루클린의 지형이 크게 바뀌고 있다는 점인데요. 맨하탄을 마주보는 워터프론트 지역에 40층짜리 주상복합이 들어섰고,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브루클린도 맨하탄 못지 않은 몸값을 자랑하게 된 거죠. 맨하탄에서 쫓기다시피 브루클린에 자리를 잡아 빈 공장에서 꿈을 이어가던 예술가들도 비싼 임차료에 치여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성수동 터줏대감들도 예술가들의 등장과 골목길의 화려한 변신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성수동 수제화거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낙후된 공장의 화려한 변신 속 젠트리피케이션 가속=성수동은 카페골목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채소밭이었던 터라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은데요. 제조업 붐이 일었던 1970년대 땅값이 저렴했던 성수동2가 지역에는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그 당시 지어진 공장이 아직도 돌아가고 있는 터라 성수동2가 내 노후건축물은 68%에 달했습니다. 주거환경도 열악해지면서 성수동 황금기였던 1980년대에 비해 인구도 26%나 줄었습니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던 수제화 산업도 저가 제품에 밀려 인기가 수그러들면서 수제화 거리도 듬성듬성 빈 가게들이 생겨났습니다. 수제화 거리에 남아 공방을 이끄는 장인들도 노령 종사자가 대부분을 차지해 젊은 층의 유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죠.
성동구는 성수동의 낙후가 급속도로 진행되자 도심의 슬럼화를 막기 위해 성수동 일대를 서울시 도시재생시범사업에 신청했습니다. '성수동 골목 상권 살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거죠. 재개발 등 전면철거형 정비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지역 특성을 고려해 보존과 관리 위주의 지원사업이 진행됐습니다. 특히 성수동을 대표하는 수제화 거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수제화 산업 육성과 보호를 위한 디자인, 제작, 판매까지 전 분야를 지원했고, 수제화 장인을 꿈꾸는 청년들을 유치하기 위해 가게도 저렴한 가격에 임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수동을 찾은 건 수제화 산업의 종사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비싼 땅값의 '문화의 성지' 홍대, 대학로에서 밀려나 갈 곳을 잃은 젊은 예술가들이 성수동을 찾은 겁니다.
처음 성수동에 이들이 등장했을 때는 선물같이 느껴졌을 겁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성수동 골목이 인기를 얻자 성수동이 부동산 투자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거죠. 묵묵히 수십 년을 인쇄 공장에서, 금속 공장에서, 수제화 공방에서 일해 온 터줏대감들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월세를 견디지 못하고 내쫓기는 신세가 되고 있습니다. 공장을 인더스트리얼 카페로 만들겠다는 건물 주인에게 내쫓긴 세입자도 상당합니다. 성동구는 부랴부랴 '프랜차이즈 가맹점 입점 불허', '주요 가로변 소규모 공방ㆍ서점 권장 용도 계획' 등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도 만들었지만, 돈의 힘을 버티기는 버거워 보입니다.
게다가 도시재생사업지역으로 묶이지 않은 성수동 남쪽은 이미 브랜드 아파트와 새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수제화 거리와 카페 거리 중간중간에도 새 건물을 짓는 공사장들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낡고 허름한 그대로의 모습과 새것의 적절한 조화, 과거와 현재의 사이좋은 공존으로 사랑 받던 성수동의 모습을 잃어가는 듯 합니다. 성수동은 브루클린의 미래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해봅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