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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제약·바이오 산업 발전 위한 마지막 퍼즐 맞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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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 대한항암요법연구회 손주혁 홍보위원장

중앙일보

손주혁 대한항암요법연구회 홍보위원장


한국을 대표하는 의생명과학자 백순명. 그는 2017년에 호암상 의학상을, 2010년에는 전 세계 대표적 유방암 연구 재단인 수잔 코멘이 수여하는 브링커상을 수상했다. 그는 유방암 환자가 항암 치료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검사법 ‘온코타입 DX’를 개발하기도 했다. 연구 업적은 그가 미국에서 유방암·대장암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비영리 기관인 ‘NSABP’에서 근무하며 이뤄졌다. NSABP 병리과장으로 부임하면서 암 환자의 조직을 모아 유방암 재발과 특정 유전자 발현 관계를 분석해 개발한 검사법이다. 수백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업적이다. 암 치료 및 재발, 생존 여부에 대한 정확한 임상 데이터 없이는 실험실에서 개발한 검사법이 환자에게 사용 가능한지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임상에서 증명되지 않은 검사법은 대부분 사장되고 만다. 이 연구에 공동 참여했던 벤처회사는 미국의 대표적 바이오 벤처기업이 됐다.

얼마 전 필자는 국내 바이오 기업으로부터 유방암 검사법에 대한 기술심사 자문 요청을 받았다. 꽤 괜찮았다. 정부 연구비도 수십억원, 투자도 수백억원 받았을 정도로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이 기술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증명해야 하는데, 대형병원 한두 곳의 데이터만으로는 신뢰성이 부족해 보였다. 이 문제를 지적했더니 회사 대표는 우리나라에 임상시험을 해놓은 곳이 없어 제대로 된 환자 데이터나 암 조직을 구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임상시험은 신약·의료기기를 개발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연구다. 서울이 글로벌 제약회사 주도 임상시험 등록 세계 1위 도시에 뽑힐 정도로 우리나라는 임상시험 경쟁력이 있다. 임상시험 수행 능력도 있고 실제 많이 진행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모든 지적소유권이 회사에 있다.

금전적 이익과는 관련 없지만 임상연구자가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도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다. 이를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암 연구에서는 대한항암요법연구회를 대표해 몇 개의 연구 조직이 있다.

문제는 국내에서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에 필요한 연구비 지원이 미미해서 NSABP 같은 연구를 진행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실험실에 훌륭한 연구결과가 있어도, 정부가 많은 연구비를 투자해도 ‘임상시험 연구 지원’이라는 퍼즐이 비어 있는데 제약·바이오 산업 선진화가 가능할까.

지금 한국에는 백순명 교수 같은 과학자가 없어서, 총 연구비가 작아서, 열정적인 벤처기업이 없어서 제약·바이오 산업이 점프를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기관 임상시험 지원을 통해 대규모 임상시험이 진행되도록 하고 환자에게 도움되는 치료법을 개발해야 제약·바이오 산업 발전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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