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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박수찬의 軍] 날개 꺾인 마린온 헬기…사고는 예견된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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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지난 17일 오후 4시 41분쯤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서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이 추락하고 있다. 해병대사령부 제공


“누적된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졌다고 본다. 매우 어렵고 무서운 상황에 직면했다.”

지난 18일 해병대가 공개한 17일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가 포착한 추락 영상에 대해 한 항공전문가가 남긴 말은 1980년대부터 성장을 거듭해온 국내 항공산업이 처한 위기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번 사고는 마린온과 마린온의 원형인 수리온 헬기, 나아가서는 국산 항공기 전체의 신뢰성 문제와도 직결된 심각한 문제다. 바둑으로 치면 복기를 해야할 때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병대는 해군, 공군, 육군 항공작전사령부와 함께 사고조사위원회를 꾸려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육군도 수리온 90여대의 운용을 일시 중단하고 정밀 점검을 진행해 그 결과와 사고 조사 과정 등을 종합해 운항 재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구조적 결함이 사고 원인이었나

헬기의 메인로터 중 날개가 떨어져나가면서 메인로터가 동체에서 분리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16년 4월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슈퍼푸마 헬기 추락사고의 경우 기어박스 내 일부 기어가 피로균열로 파괴되면서 메인로터가 분리되어 추락한 사례는 있다. 하지만 슈퍼푸마 추락사고 당시 메인로터는 온전한 상태에서 동체와 분리된 반면 마린온은 십자(+) 모양의 메인로터 날개 4개 중 한 개가 분리됐고 메인로터가 빠졌다는 측면에서 정확한 비교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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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 추락한 해병대 상륙기동 헬기 마린온의 메인로터(주회전날개)가 부서진 채 놓여있다. 연합뉴스


항공전문가들은 구조적 결함에 주목한다. 십자(+) 모양의 메인로터를 지탱하는 중심축은 메인샤프트다. 메인샤프트는 주먹만한 굵기의 고정핀들로 동체와 연결되어있다. 고정핀은 헬기가 부서지지 않는 한 강제로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마린온은 십자(+) 모양의 메인로터 날개 4개 중 한 개가 떨어져나가고 메인로터가 동체에서 분리되면서 빙글빙글 회전하다가 지상에 추락했고 기어박스도 깨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메인로터 날개가 분리된 것은 메인로터나 메인로터에 동력을 전달하는 기어박스 등 관련 구성품의 내구성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마린온과 수리온 헬기 제작업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다. 메인로터도 유럽 에어버스 헬리콥터의 기술지원을 받은 KAI가 만든다. 마린온의 메인로터 날개는 상륙함 탑재를 고려해 접을 수 있도록 수리온의 메인로터를 설계 변경해 제작됐다. KAI측은 고강도 재질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설계변경 과정에서 내구성과 관련된 문제를 간과했을 가능성이 있다.

메인로터의 무게중심 문제도 제기된다. 메인로터를 설계, 제작할 때 무게중심과 균형을 맞추기 위한 포인트를 메인로터 내부에 여러 군데 지정하고 무게추를 넣는다. 미국과 유럽 헬기제작업체들은 고도로 숙련된 인력과 정밀기계를 사용해 포인트를 찾아낸다. 마린온의 메인로터는 수리온 메인로터 설계를 변경한 것인 만큼 메인로터 무게중심과 균형점도 이전과 달라졌을 수 있는데 이를 과소평가하거나 포인트를 잘못 설정했을 경우 기체 진동 증가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KAI가 메인로터 설계 변경에 따른 기술적 검증을 제대로 거쳤는지, 납기를 준수하려고 개발일정을 서둘렀는지 여부 등을 조사위가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체 진동 문제도 거론된다. 군 당국에 따르면, 진동문제는 6월말부터 심해졌다. 1~5일 주기정비 직후 사고 헬기는 5~13일 진동 관련 정비를 하면서 시험비행을 실시했고, 17일 추가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했다 사고를 당했다. 진동 문제는 수리온에서도 발견되는 문제다. 기체 진동 문제로 윈드실드(앞유리창)가 파손되고 프레임(뼈대)에 금이 가는 현상이 발생한 바 있다. 마린온은 연료적재량이 늘어나는 등 수리온을 개량한 헬기다. 해병대측은 “기준 이하로 진동을 경감시킨 뒤 비행했다”는 입장이지만 개량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기술적 문제로 수리온의 진동 문제가 마린온에서도 이어지면서 육안식별이 불가능한 결함이 발생했고, 메인로터 등 구성품에 악영향을 미쳐 사고로 이어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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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온의 원형인 에어버스 헬리콥터가 제작한 AS532 헬기. 위키피디아


◆수리온 리스크, 군과 산업계 덮치나

이같은 문제의 뿌리는 수리온의 탄생 과정에서부터 내재됐다. KAI는 유로콥터(現 에어버스 헬리콥터)가 제시한 AS532 쿠거(Cougar) 헬기를 기반으로 수리온을 개발했다. 문제는 AS532 헬기가 1977년에 첫 비행한 노후기종이라는 점이었다. 부품 중 단종된 것이 적지 않다보니 수리온에서는 미국제와 유럽제, 국산이 뒤섞였다. 디지털화를 강조하면서 AS532에 없던 디지털 장비도 새로 장착됐다.

가장 큰 문제는 엔진이다. 엔진의 특성은 헬기의 비행과 생존성, 안전성 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헬기 개발과정에서 최종 형상은 탑재 엔진 특성을 고려해 최적화된 외형을 선택한다.

AS532는 프랑스제 터보메카 엔진을 사용한다. 반면 수리온은 미국제 GE T700 엔진을 개량한 것을 쓴다. 미국제 엔진을 쓰면서 헬기 내 엔진배열과 진동의 크기 및 패턴 등이 AS532과 달라졌고, 엔진 진동이 기체 구조에 미치는 영향과 비행특성 등도 AS532와 완전히 달라졌다.

이를 두고 AS532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기술적 문제가 수리온에서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수리온 진동문제도 그 중 하나다. 자동진동저감장치를 사용하고 진동을 분산시키는 등의 방법을 적용했지만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방산업체 관계자는 “전투기는 추력만 맞으면 다른 회사 엔진을 사용해도 되지만 헬기는 엔진을 함부로 갖다쓰면 안된다”며 “가성비를 따지느라 오래된 유럽 헬기 프레임을 들여오면서 미국제 엔진을 쓴 것이 수리온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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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2대가 포항비행장에서 제자리비행을 하고 있다. 해병대사령부 제공


진동문제를 단시간 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면밀한 기술적 검증을 통한 업그레이드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사고를 예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늘을 나는 항공기는 늘 문제가 생긴다. 항공기 제조업체나 운용주체는 시한성 기술지시서(TCTO)를 발급해 기술적 결함 수정에 필요한 정비지침을 빈번하게 업데이트한다. 이를 지키지 않거나 TCTO를 제때 발급하지 않으면 비행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2007년 2월 공군 KF-16 전투기가 서해에 추락했을 때, 미국 공군과 엔진제조사 프랫 앤 휘트니에서 발행한 TCTO에 따라 내구성에 문제가 있는 엔진 터빈 블레이드 지지대를 교체해야 했지만 정비사들이 이를 교체하지 않았던 것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해병대가 주도하는 사고조사위 조사 결과에 따라 2012년부터 실전배치가 시작된 수리온에 대해 제작사인 KAI나 군에서 TCTO를 얼마나 자주 발행했는지, TCTO 내용은 적절한지, 운용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뒤 정비지침을 제대로 업데이트했는지, TOTC를 준수했는지 여부도 수리온 안전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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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수리온 편대가 이륙을 위해 지상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 육군 제공


마린온 추락사고로 수리온과 유사한 방식으로 개발이 진행중인 소형무장/민수헬기(LAH/LCH)사업에도 우려의 눈길이 쏠린다. 수리온의 필리핀 수출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수리온 민간 버전 도입을 검토하는 지방경찰청이나 소방방재청, 지방자치단체 등도 도입을 재검토할 경우 수리온이 설 자리는 사라질 수 있다. 해외 방산업체 관계자는 “KAI 김조원 사장의 경영 능력과 위기대응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철저한 검증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강조한다. 해외 수출과 전력공백을 의식해 육군 수리온에 대한 운항정지를 섣불리 해제했다가 또다시 사고가 발생하면 국내 항공산업은 회복불능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국내 방산업계 관계자는 “육군은 운용중인 수리온의 메인로터 전체를 대상으로 비파괴검사와 엑스레이 검사, 초음파검사 등 정밀진단을 실시해서 문제가 없다는 확신이 들 때 운행 재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방산업체 관계자는 “5명의 장병이 희생됐다는 측면에서 사고 원인을 완벽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다시 띄울 수 없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외국에서 전문가들을 불러들여 수리온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 항공전문가는 “지난해 7월 수리온 결함 관련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 때 수리온 안전성을 종합 검토하는 기회를 가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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