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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공공기관 실내온도 28도는 무슨 기준으로 설정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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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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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21일 최고 온도를 보니, 대구는 38도, 서울은 36도를 기록했습니다. 올해 들어 가장 무더운 날씨인데요. 전국 대부분 지역에는 폭염경보가 발효 중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올해도 변함없이 공공기관은 실내온도를 28도 이상으로 유지하는 에너지 절약 대책을 펴고 있습니다. 이는 산업통상자원부 고시 ‘공공기관 에너지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에 따른 것입니다. 이 규정에는 냉방설비 가동 시 평균 28도 이상으로 실내온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다만 학교, 도서관, 의료기관, 어린이집, 노인복지시설 등은 탄력적으로 이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개별 냉방설비와 냉방설비가 60% 이상 설치된 중앙집중식 냉방 방식의 경우에도 실내온도를 26도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정부는 적정 실내온도 28도 유지와 함께 공무원들에게 쿨맵시 복장 착용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노타이 정장이 대표적입니다. 예를 들어, 상의는 노타이 정장, 남방 등이 해당합니다. 하의는 면바지 등을 가리킵니다. 환경부는 쿨맵시 복장 착용만으로도 피부 온도를 2도가량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무더위가 이 정도 ‘미봉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점입니다. 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그야말로 찜통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냉방설비 가동 시 평균 28도 이상 ‘이라는 공공기관 실내온도 기준은 과연 어떻게 정해진 걸까요? 공공기관이라면 나름 과학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이런 기준을 정한 거겠지요?

하지만 이런 예상과 현실은 다소 달랐습니다. 적정 실내온도 ‘28도’를 설정한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28도 기준을 설정한 때가) 30여년 전이어서 최초로 공공기관 적정 실내온도를 정했을 때 적용한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현재로는 확인이 사실상 어렵다. 다만 일본 등 국외에서 권장한 실내온도 등을 참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정부가 처음 공공기관 실내온도를 규정한 시기는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국무총리실이 발표한 정부 및 정부산하 공공기관 에너지 절약 대책에 따라 정부는 공공기관 실내온도를 동절기 18도 이하, 하절기 28도 이상으로 제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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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1월7일치 국무총리 지시 제18호를 보면, ‘정부 및 정부산하 공공기관 에너지 절약대책’으로 “날로 심각한 국면을 보이고 있는 범세계적인 에너지난의 도전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하여 그동안의 에너지절약운동 추진 과정에서 미흡한 점을 보완 시정하고 보다 만족할만한 절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별첨과 같이 ‘정부 및 정부산하 공공기관 에너지절약 대책’을 수립 지시하니 시행에 만전을 기하기 바랍니다”라고 공지하고 있습니다. 이 대책에서 ‘동절기 18도 이상, 하절기 28도 이하’라는 실내온도 제한 규정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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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실내온도 기준은 28도 이상이지만, 시민들에게 권장하는 적정 실내온도는 26도입니다. 이 경우에는 국내 건축물 설계 시 적용하는 실내 냉방 온도 기준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토교통부 고시 건축물의 에너지절약 설계 기준에 따라 국내 사무소 냉방설비의 용량을 계산하기 위한 실내온도 기준인 26도∼28도를 시민 권장 실내온도로 폭넓게 준용한 것입니다. 공공기관 실내온도 적정기준이 낮아지면, 시민들에게 권장하는 적정 실내온도도 함께 낮아질 수 있습니다.

공공기관 실내온도 기준은 38년 동안 몇 차례 바뀌었습니다. 1996년부터 2009년까지는 공공기관 실내온도를 26도까지 낮출 수 있었습니다. 2010년부터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실내온도 기준은 28도로 다시 높아졌습니다. 이후 28도 규정은 변하지 않고 계속 적용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등으로 여름철 평균기온이 계속 오르는데도 정부는 38년 전 기준을 그대로 적용 중인 셈입니다.

그런데 환경부가 2014년 쿨맵시 권장 보도자료에 인용한 국립환경과학원의 ‘제품, 생활패턴별 온실가스배출량 산정 및 감축 잠재량 평가(2009년)’에서는 여름철 적정온도를 ’27도’로 보고 연구 결과를 분석했습니다. 당시 정부가 정한 공공기관 적정 실내온도는 26도 이상이었지만 표본 조사했던 공공기관의 평균 실내온도가 27도였기 때문입니다. 들쭉날쭉한 적정 실내온도 기준을 보니, 특별한 과학적 기준이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특히 여름철 높은 습도를 고려하면, 적정 실내온도인 28도에서도 실제 불쾌지수는 ‘매우 높음’ 수준을 넘나듭니다. 이번 달 2일 기준 서울지역의 상대습도는 95.4%로,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높았습니다. 이날 실내온도를 28도로 유지한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느꼈을 불쾌지수는 81.78로 ‘매우 높음’ 수준이었습니다.

기상청은 창문, 제습기 등의 변수로 실제 불쾌지수는 개인별로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지역의 이번 달 평균 상대습도(72.0%)로 계산하더라도 불쾌지수(78.64)는 이미 높음 수준입니다. 참고로 불쾌지수는 기상청에서 공개한 생활기상지수를 통해 계산해볼 수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 등으로 달라지는 기후와 건강을 고려한 적정 실내온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실제 21일 오전 5시 기준 전국 평균 최고온도는 33도∼38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예년(27.3도∼31.4도)과 견주면 5.7도∼6.6도나 높아진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실내온도 기준이 처음 정해진 1980년 7월21일 당시 서울지역 최고기온은 25.1도, 최저기온은 21.3도였습니다. 38년이 지난 2018년 7월21일 오전 11시께 서울지역 최고온도는 33.1도, 최저기온은 24.9도입니다. 당일 하루 기온을 거칠게 견주어봐도, 38년 새 최고온도가 8도 넘게 높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적정 실내온도는 제자리걸음입니다.

물론 모든 국민이 쿨맵시를 착용하고 냉방기 사용을 1시간 줄이고 실내 냉방 온도를 2도 높이면 연간 약 4억2100만 kWh의 에너지 절감이 가능합니다. 실내온도를 2도 높인다면 연간 약 17만9000톤의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는 약 2700만 그루의 30년산 소나무를 심는 것과 비슷한 효과입니다.

다만 노동자의 건강과 노동환경도 중요한 고려 요소입니다. 불쾌지수가 매우 높음 수준까지 높아지면 공무원들의 업무 효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무원들의 실내온도 적정기준은 일반 시민들의 노동환경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지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과거 사치품처럼 여겨지던 에어컨이 이제는 필수품을 넘어 ‘복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김호 서울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열린 ‘2017 대구 국제폭염대응포럼’에서 기록적인 폭염이 일회성에 그치는 현상이 아니라 한국이 아열대성 기후로 변하는 징조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온열 질환자 발생 기록이 매년 경신되고 있다는 겁니다.

무더위에도 건강을 챙기고 에너지도 아낄 수 있는 적정 실내온도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필요해 보이는 시점입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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