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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학교 석면제거 “빨리빨리보다 안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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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 신정초등학교에서 시작된

학교 석면제거 사상 최대 공사

학부모들의 학생 안전 우려에

한 달 만에 ‘원상복구’ 조처 약속

‘2027년 무석면 학교 달성’ 계획

전문가들 “여건 고려 안 한 과속”

교육부도 속도조절 필요 인정하나

여론·국회 ‘조속 제거’ 요구 눈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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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신정초 석면제거 공사 중단 배경

국내 학교 석면제거 공사 사상 최대 규모의 공사가 시작 한 달 만에 중단됐다. 일정 단계에 오른 작업이 학부모들의 문제제기로 원상복구 되는 첫 사례가 됐다. 공사 과정에서 확인된 ‘석면 노출 우려’ 탓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사업을 이어받은 문재인 정부가 완료 시한을 6년 앞당겨 추진하는 ‘무석면 학교’의 꿈이 실행 단계에서 잇단 ‘위험 경고’에 부딪히고 있다. 석면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고려하지 않은 ‘속도전’이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인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신정초등학교는 예년보다 한 달 가량 이른 지난달 15일부터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이튿날 총면적 1만2000㎡의 국내 학교 석면제거 공사 사상 최대규모의 교실 천정 석면제거 공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서울시내 학교 가운데 처음 시작된 이 공사는 그러나 본격적인 석면 제거에 필요한 비닐 보양작업까지 진행된 상태에서 지난 16일 백지화됐다. 제거 공사가 부실하게 이뤄져 학생들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학부모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강서양천교육지원청은 이날 학교에서 설명회를 열어 학부모들을 설득하려다 실패하고 결국 공사 중단과 원상 복구를 약속하고 물러섰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비닐 보양작업 단계까지 진행된 석면제거 공사가 학부모들의 문제 제기로 중단돼 원상 복구되는 첫 사례”라며 “학교 석면제거 관련 부처에서는 학부모들의 더 높은 수준의 안전 기준에 맞춰 석면제거 계획 관련 규정을 더 꼼꼼하게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적절한 제거는 오히려 위험”

교육부는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2033년까지 전국의 모든 초중등학교를 석면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무석면 학교’로 만든다는 정책을 수립했다. 2012년 제정된 석면안전관리법에 따라 2015년까지 완료된 학교 석면 실태 전수조사 결과가 공개되면서 학생들의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데 따른 조처였다. 현 정부는 출범 뒤 무석면 학교 달성 목표연도를 6년 앞당겼다. 2027년까지 매년 2800억원 이상을 투입해 10년 안에 끝내기로 한 것이다.

10년의 기한을 정해두고 전국의 학교 석면을 상태와 무관하게 모두 제거하겠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계획이다. 건물에 사용된 석면은 존재 형태와 노후도 등에 따라 인체 위해도가 다르기 때문에 대처 방식도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령 미국 환경청은 누리집에서 “손상되지 않은 석면함유 물질은 그대로 두라”는 것을 석면 주택 소유자에 주는 첫 번째 조언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부적절한 제거는 석면 섬유에 대한 노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어 있다. 일본에서 많이 사용된 뿜칠형 석면은 택스로 불리는 천정 석면보다 위해성이 높은데다 잦은 지진에 노출돼 균열과 진동에 의한 비산 위험도 더 높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방식의 석면 제거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스즈키 아키라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의 설명이다.

국내 석면건축물 처리 규정도 ‘묻지마’식 제거와는 거리가 멀다. 환경부의 ‘석면건축물 평가 및 조치 방법’ 고시는 석면건축물의 위해성을 3단계로 평가해 위해성 ‘낮음’ 등급에는 ‘지속적인 유지·관리’를 조치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전국의 석면 학교의 99.8%인 1만2179개 학교는 위해성 등급 ‘낮음’으로 평가돼 있는 상태다.

원로 석면전문가인 백남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는 “손상되지 않은 고형화 상태 석면은 손상되지 않도록 잘 유지·관리하는 것이 석면관리의 원칙이다. 그런 석면은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석면노출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1980년대에 논문으로 발표돼 미국에서는 상식화된 얘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석면에 대한 여론의높은 관심을 바탕으로 무석면 학교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의 이런 문제제기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백 명예교수는 “당시 공무원들과 전문가들 논의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옆에 있는 교수들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리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전문가 가운데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들며 제거 중심의 학교 석면 대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는 이도 있다. 최 소장은 “우리는 냉난방기가 주로 천정에 달려 있어 어차피 석면 천정에 손을 대야 한다. 학교에서는 천정에 손 대야 하는 다른 시설 개·보수도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이런 여건을 봤을 때 그냥 놔둔다는 얘기는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 교과서적 얘기”라고 말했다.

잇단 반발과 등교거부

교육부의 무석면 학교 계획에 따라 석면 함유 건축자재가 제거돼야 할 학교는 2017년말 기준 1만2202개에 이른다. 전국 2만808개 초중등학교의 58.6%다. 이에 따라 2017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각각 1200여개 학교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진 석면공사는, 그러나 경기 과천 관문초, 서울 종로 덕수초, 서울 관악 인헌초 등 곳곳에서 개학 연기나 학생 등교 거부 사태를 불러일으키며 학교석면 문제를 사회적 논란의 중심으로 밀어 넣었다. 공사 뒤 이뤄진 학부모와 시민단체의 점검에서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석면 잔재물이 잇따라 발견됐기 때문이다. 남겨진 잔재물은 그곳에서 이뤄진 석면제거가 관련 규정과 매뉴얼에 따라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었다.

석면 제거 공사가 이뤄진 교실 곳곳에서 석면 잔재물을 찾아내 학생 등교거부 등의 항의행동을 이끌었던 한정희 경기도 과천 관문초 학부모석면비상대책위원장은 “들여다볼수록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석면조사부터 잘못됐고, 관리 감독, 철거 등 여러 곳에 다 구멍이 숭숭 뚫린 치즈모델처럼 돼 있었다. 학교여서 다른 데보다 더 잘하겠지 기대를 한 것이 완전히 뒤집어졌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환경부, 고용노동부는 그간 학교 석면공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겠다며 이번 여름방학부터는 강화된 작업 기준과 더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석면제거 작업 전 사전 청소, 이중 비닐 보양작업, 시민단체까지 참여시킨 학교석면모니터단 구성과 모니터단 권한 강화 등이 새롭게 포함됐다.

이에 따라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한 신정초 학교석면모니터단은 점검 과정에서 바뀐 기준에 따르면 두 겹이어야 할 벽 비닐 보양이 한 겹으로 돼 있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교육청에 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공기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준 강화가 무의미했던 것이다.

원주연 신정초 학부모석면비상대책위원장은 “엄마들이 안전한 공사가 이뤄지기 위해 필요하다며 보완을 요구한 7가지 사항이 한 가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교육청은 노동부로, 노동부는 학교로, 학교는 시공사로 서로서로 책임을 돌리며 공사를 빨리 하려고만 했다”고 성토했다. 신정초 학교석면모니터단에 참여하고 있는 학부모 오현정씨는 “가이드라인도 바뀌고 매뉴얼도 계속 바뀌는 상황인데 왜 학교가 실험 대상이 돼야 하나. 시행착오가 계속 발생하고 있으니까 최대한 나중에 하자. 천정 석면 택스가 오래되기는 했지만 건드려서 더 위험하게 되는 것보다는 그대로 가만히 놔두는 것이 낫다는 것이 학부모들 입장”이라고 전했다.

학부모들에게는 교육부가 2027년 완료 목표에 맞춰 수시로 매뉴얼을 수정해가며 진행하는 석면제거 공사가 마치 조건을 계속 바꿔가며 진행하는 실험처럼 느껴진다는 얘기다. 석면을 건드려서 위험한 것보다는 그대로 놔두는 쪽을 택하겠다는 말에는 위해성을 따지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불안감을 표시하던 학부모들의 인식 변화가 엿보인다. 스즈끼 위원장은 “전에는 일방적인 설명을 듣는데 그쳤던 학부모들이 석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어 당사자로 나서면서 더 신중하게 변하고 있다. 그 동안은 에어컨이나 전등 공사가 필요하면 석면도 한꺼번에 제거하자고 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안전하게 될 수 없다면 반대하는 것이 학생 안전을 지키는 현실적 방법이라는 조금 다른 인식으로 대응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방학기간과 공사규모를 고려해 겨울방학에 집중 공사를 하고 여름방학에는 2000㎡이하 소규모 공사만 추진해 적정 공기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여름방학 전국의 석면제거 공사 예정 학교는 641개로 지난해 여름방학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하지만 겨울철에 공사가 집중될 경우 많은 업체와 인력이 한꺼번에 필요하게 돼, 충분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업체와 인력들이 더 많이 참여하게 되면서 부실 논란이 더욱 확산될 우려가 높다.

공사 가능한 업체부터 부족

다수의 전문가들은 근본적 대안으로 교육부가 2027년 무석면 제거 목표에 매달리지 말고 현재 석면제거 인프라에 맞게 석면제거 공사 학교 수를 줄일 것을 권고한다.

화학안전보건협회(옛 대한석면관리협회) 김정만 회장은 “제일 문제는 짧은 기간에 너무 공사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석면제거 업체는 넉넉한데 제대로 하는 업체가 없다. 우리나라에 3000개 석면제거 업체가 있지만, ‘에프엠’(야전교범)대로 하고 있는 곳은 30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전국 3000여개 등록 업체 가운데 1123곳을 대상으로 지난해 실시한 안전성 평가에서는 최하등급인 D등급을 받은 업체 비율이 37.4%로 가장 높았고, 최고등급인 S등급을 받은 업체는 전체의 1.9%, 모두 21곳에 불과했다.

김 회장은 “처음에 석면제거업을 외국처럼 허가제로 했으면 전문업체들이 육성됐을 텐데 아무 업체나 할 수 있게 등록제로 풀어버리면서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것이 문제였다”며 “현재 석면제거 인프라를 감안해 지금처럼 방학 때마다 전국적으로 일제히 덤벼들 게 아니라 2027년 목표는 아예 잊어버리고 적게 하더라도 제대로 해나가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침묵의 살인자 석면>의 저자인 안종주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사회안전소통센터장은 “2027년까지 석면 없는 학교에 빨리 도달하겠다는 의지는 좋으나 학교 석면 제거 수요와 해체·제거 업체와 조사분석업체, 감리 등 공급의 균형이 안 맞아 부실 공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많다. 석면 제거는 안전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무리하게 할 게 아니라 목표 달성을 10년 정도 유예하고 시간 여유를 가지고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현욱 가톨릭대 의대 교수도 “냉난방 개선 등의 수요가 있으면 하더라도 그런 수요가 없는데 굳이 석면이 있으니 이걸 제거하자 이럴 것은 아니다”며 “인프라에 맞춰 속도 조절이 좀 필요하다는 데 동감한다”고 말했다.

일선 교육청의 석면 제거 업무 실무자들 사이에는 이미 처리 능력 초과라는 말이 나온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시설안전과 김광래 주무관은 “현장에서 소화할 능력을 초과했다. 전국적으로 동시에 진행하는 것을 1년 해보니까 안 된다는 게 느껴진다. 무리였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주무부처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의 교육시설과 윤석훈 과장은 석면제거 속도조절론에 대해 “충분히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회적 여건은 위해성이 낮다고 미루는 게 사회 통념상 힘든 부분이었다. 국회에서도 석면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해줘야 하는데 더 빨리 제거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계획보다 호기롭게 6년이나 앞당긴 무석면 학교 목표년도를 다시 늦추는 것은 정책 후퇴로 비칠 수가 있다는 점도 정책 담당자들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대목이다. 안 센터장은 “지난 정권에서 그렇게 발표를 하고, 큰 방침이 정해진 상태여서 그걸 바꿀 수 있는 것은 장관이나 그 위 레벨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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