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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애물단지 평화의댐, 진짜 ‘평화’ 상징으로 바뀔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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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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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댐 붕괴 사고 소식에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미 한 차례 ‘댐 붕괴’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은 바 있는 우리 국민의 충격은 더 컸을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32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1986년 10월 이규호 당시 건설부 장관은 무시무시한 특별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북한이 금강산에 짓고 있는 댐이 무너지면 63빌딩 중간까지 물이 차올라 서울이 모두 물바다가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장관의 발표는 국민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국민성금’이라는 명목으로 초등학생들의 코 묻은 돈까지 걷어 다음 해 바로 댐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착공 18년 뒤인 2005년 완공 때까지 모두 3995억원이 투입된 대규모 공사였죠. 하지만 이후 감사원 조사에서 전두환 정권이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무마하기 위해 북한의 수공 위협을 크게 부풀린 것으로 드러나 국민적인 지탄을 받았습니다.

맞습니다. 정부의 역대급 거짓말 중 하나로 꼽히는 평화의댐 이야기입니다.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출생의 비밀이 알려지면서 평화의댐은 그동안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남북관계 개선 등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평화의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강원도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평화의댐에서 내금강을 잇는 ‘평화물길’ 관광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대북 협력사업 중 하나로 평화의댐에서 북한 임남댐(일명 금강산댐)까지 36㎞를 유람선으로 이동한 뒤 내금강까지 45㎞를 육로로 이동하는 관광사업을 하겠다는 겁니다. 한국전쟁 이후 철책으로 단절된 북한강 수계를 통해 남과 북을 오가는 물길을 여는 첫 사업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강원도는 평화의댐에서 출발하는 금강산관광 코스를 개발하면 평화의댐 인근 접경지역인 화천과 양구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강원도가 평화물길 관광사업을 발표하자 닷새 뒤인 지난 24일 화천군도 ‘화천~금강산 수로관광 개발 구상 착수’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평화물길’과 ‘수로관광’이라는 이름은 달랐지만 남과 북을 잇는 북한강 물길을 이용해 금강산관광을 하겠다는 취지는 같았습니다. 다만, 화천군은 평화의댐이 아니라 화천 파로호 구만리 선착장을 출발지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파로호 구만리 선착장에서 임남댐까지 북한강을 가로질러 남북을 오가는 유람선 코스가 평화물길 36㎞에서 수로관광 58㎞로 늘어났습니다.

잇따라 강원도와 화천군이 평화의 댐을 활용한 금강산관광 계획을 발표하자 ‘문순씨들이 꽤 금강산관광을 좋아한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습니다. 공교롭게도 강원지사와 화천군수의 이름은 최문순으로 한자 이름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으로 소속 정당이 다르기 때문일까요? 이번 발표를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화천군 쪽에선 최문순 군수의 민선 7기 주요 공약인데 강원도가 사전 조율도 없이 사업을 발표하는 등 공을 가로챘다는 불만입니다. 사업 당사자인 화천군을 배제한 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 강원도가 평화물길 계획을 발표할 때 배포한 자료에는 통일부, 환경부, 국토부, 수자원공사 등과 협의하겠다는 계획만 나와 있을 뿐 화천군에 대해선 한 줄도 언급이 없었습니다. 이미 평화물길과 수로관광이라는 각기 다른 명칭 자체가 엇박자의 증거인 셈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군사용 댐인 평화의댐은 지금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물도 채우지 않은 채 사실상 방치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더욱더 쓸모가 없어질 처지입니다. 하지만 평화물길 혹은 수로관광이 추진되면 텅 비어있는 평화의 댐에 물을 채울 수 있습니다. 현재 군사용 댐에서 소양강댐과 같은 다목적댐으로 용도를 바꿀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다목적댐이 되면 신규 수자원(26.3억t)과 전기생산(3억㎾h) 등의 쓸모가 생길 것으로 강원도는 추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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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물길이든 수로관광이든 출생의 비극을 품고 있는 평화의댐을 정상화할 기회인 셈입니다. 사업 추진에 의지를 가진 문순씨들이 엇박자 대신 사전 조율을 거쳐 함께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면 정부에, 또 북한에 그 진정성이 더 잘 전달됐을 겁니다. 평화의댐에서 유람선 타고 금강산관광을 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요?

박수혁 사회2에디터석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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