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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폭염 회피를 위한 로맨틱 코미디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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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맘마미아!2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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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대놓고 ‘두더지 똥’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의 혐오감(아니, 이 정도면 거의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필자 역시 아바를 일부러 찾아 듣거나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바의 음악이 대단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어찌 감히. 그 정도로 오랫동안 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청각세포에 큰 부작용 없이 빠르고 부드럽게 흡수되어(음… 이렇게 쓰려니 뭔가 변비약 광고 카피 같은) 그 정도로 두고두고 인용되고 회자되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재능이 어디 흔한 재능인가. 더구나 누구라도 한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패션감각을 그렇게도 당당하고 일관되게 유지해주는 것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마도 딱히 아바를 찾아 듣지 않았던 것은 어차피 안 들을 수 없는 음악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가로수와 동일한 수종의 나무를 우리 집 정원에 굳이 심고 싶지 않은, 뭐 그런 심리와 비슷하달까… 아무튼.

그럼에도 놀랍게도 필자의 시디(CD) 컬렉션(이게 뭔지 10대 이하 독자들은 알기는 하시려나. 흠)에는 아바의 베스트앨범이 끼어 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다거나 한 기억은 없으니 분명히 필자가 구입한 것일 텐데도 도통 그 구매의 기억이 없다. 이건 뭔가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을 지우려는 뇌의 편도체 외측 기저핵의 자율신경적 대응기제… 아니, 그만두자.

전편 보지 않아도 괜찮아

<맘마미아!2>를 보면서 내내 느꼈던 것은 이와 같은 휘발성 기억이 남긴 희미한 잔향이었다. 분명히 본 영화이고, 본 인물들인데, 그들에 얽힌 1편의 세세한 내용에 대한 기억이 도무지 되살아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직 기억의 안개 속을 떠다니는 건 갓 개장한 그리스식 테마파크(라기보다는 민속촌)처럼 반짝거리는 세트들과, 그 안에서 스크린 너머로 페로몬 가득 흩뿌리며 춤추고 뛰노는 청년-장년 배우들, 그리고 메릴 스트립의 멜빵바지뿐. 맞다. 이는 영화보다는 필자의 뇌 구조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틀림없이.

그럼에도! 놀라웠던 것은 이러한 1편의 기억에 대한 휘발이 <맘마미아!2>를 관람하는 데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가끔씩 어떤 인물이 그저 등장했을 뿐인데도 객석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부터 소외되는 정도다.(예습에 충실하지 않았으니 그 정도 소외감은 감수해 마땅하다.) 어쨌든 1편에 대한 기록사진적 기억 같은 것 없이도 <맘마미아!2>를 관람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 없다.

이렇듯 ‘어서 오세요. 부담 전혀 갖지 마시고’풍의 친절함은, 마블팬 아닌 관객에게도 제법 너그럽던 초창기 <어벤져스> 및 마블 영화들과 흡사하다 할 것인데, 아닌 게 아니라 <맘마미아!>도 캐스팅만 보면 로맨틱 코미디 어벤져스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어맨다 사이프리드, 줄리 월터스, 스텔란 스카르스고르드… 그리고 이번엔 셰어, 앤디 가르시아도 있는데다, 남자인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왠지 막대한 자원낭비처럼 느껴지던 젊은 피 미남 3인방(제러미 어바인, 휴 스키너, 조시 딜런)도 착실하게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릴리 제임스가 있다. 저조한 흥행성적만큼 나쁘지는 않았던 디즈니 라이브 액션 <신데렐라>, 작년 가장 섹시했던 액션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는 물론이거니와, 폴 데이노와 더불어 주연했던 <비비시>(BBC)의 <전쟁과 평화>에서의 그녀를 보신 분이라면, 그녀가 이 캐스팅 화려한 영화의 실질적 원톱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에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으실 것이다. 뭐, 위화감이라면 사실, 그녀가 메릴 스트립(‘도나’ 역)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다는 점에 있다면 있달까. 아시다시피 둘은 안 닮아도 너무나 안 닮았으므로. 그나저나.

캐스팅만이 아니다. 런던으로 시작해서 파리를 거쳐 그리스로 넘어갔다가, 스톡홀름과 도쿄도 잠시 들르고, 결국 다시금 파워에이드색 바닷물 넘실거리는 그리스 지중해로 귀환하는 다채로운 지구순방형 로케이션 또한 <어벤져스>의 정책을 그대로 닮아 있다. 뭐, 그 마지막 집결지가 되는 ‘호텔 벨라 도나’가 실제론 그리스가 아닌 런던의 세트장에서 촬영된 것이라든지, 그리스 지중해라고 되어 있는 곳이 실제로는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라는 사실이라든지 하는 디테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로케이션 하나하나가 이 영화의 핵심 기능성 중의 하나인 극장식 여행상품이라는 기능성을 얼마나 충실하게 실현하고 있는가,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여행 판타지를 얼마나 알차게 채워주고 있는가, 이겠으므로.

화려한 캐스팅
여행 판타지 충족
아바의 히트곡은 물론
알려지지 않은 곡까지

폭염 회피 아이템 넘치지만
<뮤리엘의 웨딩>처럼
“인간의 구질구질한 세계가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
포착하지 못해 아쉬워


또 있다. <어벤져스>에 화려무쌍한 브이에프엑스(VFX·시각적 특수효과)가 있듯 <맘마미아!2>에는 노래와 춤이 있다. 더구나 그건 다름도 아닌 아바의 노래들이다. <맘마미아!2>는 아바 노래, 아바 패션감각, 아바 춤, 아바 뮤직비디오 등등, 아바라는 광맥을 전편 못지않게 알뜰하게 채굴해주고 있다. 영화의 타이틀인 ‘맘마미아’는 물론 ‘워털루’ ‘슈퍼 트루퍼’ ‘안단테, 안단테’ ‘아이 해브 어 드림’ ‘생큐 포 더 뮤직’(음… 한글로 쓰려니 점점 뭔가 난이도가 상승하는… 이하 긴 제목은 그냥 영어로 표기하겠음) 등등의 메가히트곡들 끝에, 하이라이트에서 아바 히트곡의 퀸 중 퀸인 ‘댄싱 퀸’이 등장하리라는 것은 뭐 새삼 얘기할 필요도 없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When I Kissed the Teacher’나 ‘Why Did It Have to Be Me?’ 같은 아바의 잘 알려지지 않은 넘버들 또한 적당히 영화 곳곳에 분산배치 해주고 있어 메뉴 다양성까지 확보되고 있다.

이와 같이 <맘마미아!2>는 이 모든 폭염회피 기능성 아이템을 가짓수에서만큼은 모자람이 없고 시청각에서만큼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푸짐하게, 흡사 호텔 조식 뷔페처럼 영화 내내 아낌없이 제공한다. 그리고 이들을 한 덩어리로 굳혀주고 있는 최종 마감재는 역시나 흡수력 좋고 효과 빠르고 부작용 딱히 없는 이야기 전개, 즉 전형적인 할리퀸 로맨스의 스토리 흐름이겠다.

뭐, 굳이 이 자리에서 할리퀸 로맨스의 클리셰의 세계에 대해 새삼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인데, 젊은 시절의 ‘도나’(릴리 제임스)가 3개국 출신 각종 종합 미남들 사이를 핀볼처럼 왕복운동하고 있는 그 전개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그렇게 쉬운 여자는 아니에요”라는 도나의 대사가 자꾸만 정반대 의미로 들려오는 뇌세포 오동작이 자꾸만 일어나려 하더라만, 역시나 <맘마미아!2>는 그러한 관객의 의식흐름까지 예측해 대응하는 치밀한 서비스 정신을 보여준다. 젊은 도나의 할리퀸 폭주에 스스로 알아서 급브레이크를 밟아주며 급속히 감동 압출 모드로 진입하는 현명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물샐틈없는 고객 서비스를 화려한 불꽃놀이(이 불꽃놀이의 대미는 물론 하늘 가득한 사랑을 형상화한 적색 하트 모양 폭죽으로 장식된다)로 마무리하며 <맘마미아!2>는 피폭염 관광무비로서의 맡은 바 소임을 완벽하게 수행해내고 있었으니, 어찌 아니 고객감동할쏜가.

아바의 음반을 구매했던 이유

그런데 이렇게 적는 동안 필자가 아바의 시디를 구매하게 된 경로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것은 <뮤리엘의 웨딩>을 관람한 여파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주인공 뮤리엘(토니 콜렛)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자신의 삶을 깨닫고 친구와 고향을 떠나는 장면에서 흐르던 ‘댄싱 퀸’을 듣고 난 여파였다. 정통성 면에서야 아바에 의한 아바를 위한 아바의 영화 <맘마미아!> 1, 2편과 비교도 안 되겠지만, 여전히 필자에게 최고의 아바 영화는 <뮤리엘의 웨딩>이다. 그리고 최고의 아바 장면은 여전히, 휴가지의 콘테스트에서 뮤리엘과 절친이 <맘마미아!>의 세트장에서 곧장 데리고 온 듯한 늘씬 미녀 친구들을 앞에 두고 벌이는 ‘워털루’ 립싱크 공연이다. 그렇다. 땅(호텔)과 바다(고깃배)가 해변에서 만나 한데 어우러지는 <맘마미아!2>의 대규모 ‘댄싱 퀸’ 군무를 보고 난 지금에도 말이다.

얼마 전에 이 무시무시한 폭염맞이 흥행대전의 틈바구니에서 의연하게 개봉됐던 ‘작은’ 영화 <어느 가족>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고 했었다. <뮤리엘의 웨딩>이 이 그리스 해변빛 정통 아바무비 앞에서도 그 광채를 잃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러한 순간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이 일깨우는 아름다움이야말로 그 어떤 관광무비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체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뭐, 이런 극단적 폭염에는 제대로 된 폭염회피 기능성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긴 하겠다만.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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