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13)
담배를 피는 사람은 좋지 않은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왜 담배를 끊지 못할까?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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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백해무익 천하의 몹쓸 식품취급이다(담배를 식품으로 분류해도 되나 하는 문제는 별도다). 요즘은 담배 피우는 사람이 하대 받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범죄인 취급이다. 인격마저 의심받고 불량스럽게도 본다. 왕따당하지 않으려면 몰래 숨어서 피우는 시대가 되었다.
세상은 온통 금연구역이고 흡연자를 한군데(흡연구역)로 모아 밀폐된 공간에서 자기들끼리 건강 해치기 노름을 벌이게 하는 모진 현실이다. 이 정도의 설움을 받으면 끊을 법도 한데 왜 못 끊는지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담배 끊자 주위에서 모질고 지독한 인간 취급
담배는 향정신성 물질로 한번 중독되면 끊기 힘들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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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는 법적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향정신성 물질이다. 한번 중독되면 마약만큼이나 끊기 힘들다는 뜻이다. 필자가 잘 안다. 30여년 피워오던 담배를 몇 번의 시도 끝에 20여 년 전에 진짜 진짜 어렵게 끊었다. 건강에 적신호가 있어 죽을까 봐서다. 주위에선 그것도 모르고 모질고 지독한 인간 취급하면서 상대하기 버거워하는 눈치도 있었다.
담배를 피우게 된 동기는 호기심과 불량스러움에서 출발한다. 어른 흉내 내고 건방을 떨고 싶은 것이 그 동기다. 뭔가 입으로 품어내는 연기가 멋스러워 보이고 마치 성인이 된 듯 착각에 빠지게 해서다. 흡연연령이 차츰 낮아진다는 통계가 있다. 간단히 담배에 중독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 피울 때는 엄청 역겹다. 구토가 나고 어지럽고 머리가 핑 돌아 쓰러질 정도로 고통이 따른다. 찬물을 마시면 이런 증상이 진정된다고 해 물을 마셔가면서 배운다.
중독에는 상당 기간이 필요하다. 기나긴 인고 끝에 어른이 됐다고 착각하며 멋스러워졌다고 자부한다. 끼리끼리 모여 후하게 담배 인심을 나누면서 폼이라는 폼을 다 집는다. 비싼 담배를 나누어 피울수록 더 우쭐해져 궁색한 용돈도 기꺼이 투자한다.
요즘 비정할 만큼 눈총을 주는데도 아직도 흡연율이 남성 40%, 전체인구의 20%가 넘는단다. 이 정도도 그 비율이 꽤 높지만 얼마 전의 담뱃값 인상, 유해성에 대한 지나친(?) 겁박, 금연구역 확대 등 흡연자를 범인 취급하는 요즘의 사회 분위기 탓에 그래도 많이 준 비율이란다.
담배는 폐암·구강암·식도암·위암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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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속 화학물질은 4000가지 이상으로 추정되고, 구체적으로 알려진 화학물질만 1000가지가 넘는단다. 이들 물질 중에는 타르, 나이트로사민, 비닐클로라이드, 벤조피렌, 페놀 등 수십 종류 이상의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 또 다량의 일산화탄소가 심혈관질환의 원인이 되고 산모에게는 태아의 산소결핍증상을 초래한다. 폐암·구강암·식도암·위암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 우리가 우려하는 니코틴은 향정신성 등의 기능 외에는 그렇게 해롭지 않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습관성 및 중독증이다. 니코틴은 뇌의 수용체에 결합해 두뇌의 보상계를 활성화하고 기쁜 감정을 촉발한다. 이완·진정·각성·온화·행복한 상태를 생성한다. 식욕을 감소시키고 물질대사를 증가시켜 체중감소를 유발한다.
그런데 양이 많으면 독성을 나타낸다. 안전한 혈중농도가 0.17㎎/ℓ 이하, 치사량은 3.7㎎/ℓ 이상이다. 담배의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해도 연달아 다섯 개비 정도를 계속 피워 폐 속으로 깊이 흡입하면 ‘경구치사량’에 도달한다고 한다.
흡연은 폐암의 원인 중 가장 으뜸이다. 폐암 환자의 약 90%가 흡연자이고, 흡연량에 따라 폐암 발생률이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루에 담배 1갑을 피우면 10배, 하루 2갑이면 25배 정도 증가한다는 통계다. 간접흡연도 폐암 발생률을 1.5배 높인다고 알려졌다.
21세기에는 담배로 인한 사망자가 약 10억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남성 16%, 여성의 7%는 담배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된다. 폐암의 경우 남성의 80%, 여성의 50%가 흡연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2030년까지 약 800만 명이 담배로 사망할 것으로 보고, 간접흡연으로도 약 60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니코틴, 알츠하이머 막아준다는 연구결과도
흡연은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질환을 막아준다는 연구가 있다. 사진은 치매 환자의 뇌.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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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설이긴 하지만 인류가 수천 년 피워온 담배에 좋은 점은 없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흡연이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질환을 막아준다는 연구가 있다. 담배 연기는 뇌세포의 노화 과정에 영향을 주고 뇌세포의 사멸을 억제한다는 설이다.
자세한 메커니즘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니코틴이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케이스 웨스턴 대학의 마이클 자고스키 생화학과 교수는 생화학회 학술지 바이오 케미스트리에 니코틴이 뇌세포를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진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형성을 막아주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혔다고 보고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서울대 의대 약리학과 서유헌 교수가 신경세포를 배양해 니코틴을 주입한 결과 ‘유리성 아밀로이드 플러그 단백질’이 현저하게 증가하는 것이 관찰됐다고 학계에 보고했다. 이 단백질은 뇌세포를 파괴하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독성을 현저하게 중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치매는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노인성 질환이다. 치매 상태가 진행되면 기본적인 일상생활마저 불가능할 정도로 인간성이 파괴된다. 그런다고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많아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니코틴의 치매 예방은 아직 믿거나 말거나 한 수준이다. 현명한 치매 예방법은 균형 있는 섭생 외에는 없다.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leeth@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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