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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反난민 부추기는 유럽의 기독교 정체성 찾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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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십자가 정치화 비난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유럽의 민족주의 및 신흥 정치인들이 근래 기독교 정체성 회복을 부르짖으면서 반 난민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 전했다.

동유럽을 중심으로 가톨릭 교회 지도부가 현지 정부의 반 난민 극우정책에 동조하면서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도 관용을 주장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사이에 분란이 일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이탈리아의 반체제 '오성운동'과 극우 '동맹'간 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정부는 자국의 기독교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공공건물에 십자가 게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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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비니 伊 내무장관, 지난 7월 '동맹' 당대회 참석 (AP=연합뉴스)



유럽 전역에 걸쳐 민족주의자들과 신흥 정치인들이 근래 점증하는 무슬림 이민에 대한 반응으로 유럽의 기독교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독교 이미지 사용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상징은 그동안 유럽의 공공생활에서 필수적인 일부가 돼왔으나 최근의 추세는 유럽 정체성의 핵심으로서 기독교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그러나 다소 강제적인 이러한 기독교 정체성 찾기 움직임은 바로 기독교 지도자들 사이에 불화를 빚고 있으며 진보주의자인 프란치스코 교황 측으로부터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이민에 관대한 기독교 기본 정신에 배치된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이자 바티칸 잡지 '기독교 문명'의 편집자인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십자가는 악과 폭력, 불의와 죽음에 대한 항의의 징표"라면서 십자가를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경'에 해당한다고 규탄했다.

이탈리아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반이민 극우 정당 동맹이 십자가 의무 게시를 법제화하려는 시도를 겨냥한 것이다.

유럽의 많은 반(反)기성정당들은 무슬림 난민 배척을 기독교 정체성 확립과 동일시하면서 더욱 세속적인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는 주류 정당들로부터 유권자들을 빼내오려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와 독일, 네덜란드 등지에서는 기독교민주당이 중도 우익 체제의 중심이 돼왔으나 근래 주류 정당의 퇴조와 함께 민족주의와 극우 정당들이 기반을 넓혀가고 있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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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지난 1월 49개국 출신 난민·이주민 수천 명 초청해 미사 집전 (EPA=연합뉴스



이탈리아 각료 출신의 한 정치인은 "기독교민주당은 기독교 정체성을 국민의 분열이 아닌 단합의 방편으로 간주해왔다"면서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을 방어할만큼 아주 강하지가 않으며, 또 좌파 유권자를 확보하기 위해 '물을 타는 바람에' 커다란 공백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동유럽의 경우 가톨릭 지도자들이 기독교 정체성과 국가적 구상을 연결하려는 정치인들의 노력에 (서유럽)보다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관공서 건물의 경우 의례 2피트(약 60cm) 크기의 십자가상이 걸려있는 폴란드의 경우 많은 가톨릭 주교들이 극우 집권 법과정의당의 반이민 정책에 공개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교회지도자들이 무슬림 난민 유입에 반대하는 성격의 이른바 '국경 묵주기도회'를 대규모로 개최하기도 했다.

인접 헝가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헝가리를 노골적으로 기독교국으로 천명하면서, 비(非)유럽인들에 문호를 폐쇄하고 이른바 무슬림 침략자들과 전투를 선언한 데 대해 반대하고 나선 주교들은 거의 없다.

오르반 총리는 '기독교 민주주의'를 그가 러시아나 터키의 더욱 권위적인 모델을 본떠 도입한 자유 제한적인 통치를 묘사하는 새로운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헝가리는 공식적으로 무신론 국가였으나 오르반과 사제들 간의 은밀한 동맹이 이뤄지면서 이제는 많은 교회지도자가 난민을 막기 위한 오르반 총리의 남부 국경 울타리설치 등 총리의 주요 시책에 동조하고 있다.

라슬로 키스-리고 헝가리 주교는 지난 2015년 난민 위기 당시 "교황이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 그들은 난민이 아니라 침략"이라면서 "나는 오르반 총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바티칸에 반기를 들었다.

서유럽의 경우 분위기가 약간 다르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지도부는 최근 모든 공공건물에 십자가를 걸도록 의무화했다.

기독사회당(CSU) 소속의 바이에른주 총리는 바이에른의 정체성과 기독교적 가치에 대한 공약을 내세웠으나 오는 10월 선거를 앞두고 CSU의 하락하는 지지도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으로 알려진 라인하르르 마르크스 뮌헨 추기경으로부터 "십자가를 몰수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마르크스 추기경은 "십자가를 단지 문화적 상징으로만 간주한다면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세를 얻어가고 있는 반 난민 정치인들이 교황 측과 충돌하면서 사회가 더욱 분열적으로 흐르고 있다.

극우 정당 동맹 지도자인 마테오 살비니 내무장관이 기독교 정체성 회복을 이유로 정치행사에서 성경과 묵주를 남용하고 있다는 비난이 교회 측으로부터 쏟아지고 있다.

동맹 소속 의원들은 지난 3월 모든 공공건물에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상 게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제출한 상태다. 지시대로 십자가상을 게시하지 않거나 (증오심에서) 이를 제거하는 공무원들에 대해 최대 1천 유로(약 130만 원)의 벌금을 물도록 하고 있다.

yj378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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