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환태평양권에 최소한 10개의 휴양마을을 지어 한국의 멋과 맛을 알리는 겁니다.” 꼭 10년 전이다. 2008년 통영 미륵도에서, 제천에 이어 국내 두번째 이에스리조트의 문을 열면서 그가 했던 약속이다. 땅값이며 건축비며 국내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오지의 숨은 명소를 찾아 자신이 원하는대로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했다. 그때 그는 이미 남태평양의 피지에 터를 마련해 설계를 시작했고, 인도네시아의 빈탄, 러시아의 캄챠드카 반도에서도 터 매입과 법인 설립이 진행중이라고 했었다. (<한겨레> 2008년 10월7일치 참조 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sec&sid1=102&oid=028&aid=0001968311)
마침내 올 여름 세번째 이에스리조트가 문을 열었다. 그런데 피지도 아니고 다른 외국도 아니다. 제주도다. 지난 10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폐쇄형 리조트’를 고집해온 ‘괴짜 촌장’ 이종용(77) 클럽이에스 대표를 최근 서귀포시 하원동 제주이에스리조트에서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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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국내 첫 ‘폐쇄형 리조트’ 시작
제천 능강·통영 미륵도 이어 제주도
준비부터 개장까지 꼬박 ‘10년씩 정성’
애초 피지·빈탄 등 국외 진출 목표
뜻밖 암 투병으로 ‘장거리 여행 불가’
“다도해 비롯 우리땅 명소 더 찾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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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는 어떻게 됐나요?” 가장 먼저 드는 궁금증부터 풀어야 했다. “내가 좀 아팠어요.” 그뿐 더 설명이 없다. 이에스통영 개장을 성공리에 마무한 이듬해 돌연한 암 수술로 생사의 고비를 넘긴 뒤 수년간 요양을 했다는 얘기는 지인들이 전해줬다. 지난 1997년 제천 충주호반에서 첫번째로 이에스능강리조트를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역인 통영 미륵로에 두번째 리조트를 준공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린 그였다. 특별보호구역이어서 워낙 규제도 많았고, 국내에 시도한 적 없는 지중해풍에 한국적 미감까지 살려 짓느라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한 때문인 것 같다고들 했다.
“완쾌될 때까지 장거리 비행기 여행을 못하게 해서 피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회원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했지요. 그래서 기존 회원들이 가장 원하는 제주도로 눈을 돌린 거예요.”
그런데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국내 재벌들은 물론 중국 자본까지 물밀 듯이 몰려와 개발 포화상태로 소문난 제주도에 과연 그가 꿈꾸던 공간이 남아 있었을까? 그것도 중문단지를 비롯 한라산 중산간까지 관광시설이 밀집해 있는 서귀포에서? 이번에도 그는 그저 빙긋 웃을 뿐이다. 대답 대신 리조트 옥상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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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시피, 내가 추구하는 최상의 휴식은 자연 속에 스미는 거예요. 특히 제주도에서는 당연히 바다를 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전망 좋은 해변은 이미 바늘 꽂을 곳도 남아 있지 않다고들 하고 그만큼 땅값도 비싸서 엄두를 낼 수가 없었죠. 그래서 중산간으로 눈을 돌렸어요.”
그는 제천, 통영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가장 편안한 높이인 해발 400~500미터 고지에서, 바다가 가장 잘 보일 만한 지역을 목표로 정했다. “여긴 워낙 빈 목장터였어요.” 먹이로 주던 목초만 우거져 있던 터를 발견한 그는 고층아파트 이사 때 쓰는 사다리차까지 불러 리조트를 지었을 때 3~4층 높이에서 보이는 바다 전망을 직접 확인해봤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제주이에스의 주제를 ‘아련한 그리움의 언덕’으로 정했다.
실제로, 제주 시내에서 한라산 중턱을 관통해 서귀포시내 내려오는 1100도로 끝자락에 자리한 리조트의 옥상에서 바라보니, 맑은 날은 동쪽으로 성산 일출봉 쪽부터 남쪽으로 가파도와 마라도, 서쪽으로 산방산까지 거의 180도의 조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흐린 날에는 뿌연 해무 속에 사위가 온통 아련해보였다. ‘숨은 명당터를 찾아내는 그의 안목이 대단하다’는 소문을 듣고 여러 지자체에서 ‘초청 경쟁’이 벌어질 정도라고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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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로부터 개장하기까지 4년 넘게 걸렸다. 늘 그랬듯이, 준공 때까지 그는 서귀포 시내에 작은 숙소를 마련해놓고 꼬박 현장을 지켰다. 리조트 지붕은 한라산의 실루엣과 나란하다. “산을 깎거나 나무를 잘라내지 않으면서, 자연 그대로를 살려 차분하고 조용한 고향의 느낌을 살리고 싶다”는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그대로 구현했다. 리조트 한 가운데에서 뒤늦게 숨은 계곡을 발견하고는 공사를 중단시키고 설계를 바꿔가면서까지 그대로 살렸다. 옥상에는 서귀포 앞바다 수평선과 선을 맞춘 풀장을 지었다. 그 바람에 객실 12개를 줄이는 ‘손해’도 기꺼이 감수했다.
제천 준공까지 10년, 두번째 통영까지 10년, 세번째 제주까지 또 10년이 걸린 셈이다. 분양 때마다 경제 상황이 최악이었던 것도 어쩌면 닮은 꼴이다. 제천 때는 외환위기였고, 통영 때는 금융위기 직후였고, 올 봄 제주 분양 시작 이래 경기는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경기는 게의치 않아요. 직원들에겐 늘 미안하지만 난 돈버는 사업가가 못되니까요. 그저 내집처럼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 자연히 하나둘 회원들이 늘어날 것을 믿으니까요.”
책상 위에 쌓아놓은 그의 필독서 목록을 보니, 그는 여전히 몽상가의 ‘의지’를 지키고 있다. 건강 탓에 환태평양 휴양타운의 꿈은 포기했지만, 대신 다도해를 비롯한 아름다운 우리 땅에서 ‘숨은 명당’을 꾸준히 찾아내겠다는 새로운 약속은 잊지 않았다.
제주/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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