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주민 수 62명 산골 마을…해바라기 금빛에 물들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통령상 받은 밀양 봉대마을

귀촌학교로 거듭난 애국의 고향

독립운동가 이상룡 후손 집성촌

산책하며 시골 정취 즐기기 제격

중앙일보

2017년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 경관 환경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한 경남 밀양 봉대마을. 면적 3만3000㎡에 달하는 꽃밭을 마을 주민 62명이 합심해서 가꾼다. 양보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직면하면서 농어촌마을에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30년 안에 소멸할 위험성이 있는 지역이 89개(39%)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한국고용정보원, 2018).

그러나 경남 밀양에는 불안감 대신 활기가 가득한 농촌 마을이 있다. 심산유곡에 숨어있는 봉대마을이다. 10년전만 해도 20가구에 불과했던 거주 가구가 현재 32가구로 늘어났다. 마을 주민 62명이 동네를 함께 가꾸면서 지난해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 경관·환경 부문 금상(대통령상)도 거머쥐었다. 벽촌 마을의 저력이 궁금했다. 호기심을 안고 8월 둘째 주 봉대마을로 찾아갔다.

‘태바라기’ 휘날리는 마을

봉대마을은 밀양의 오지로 꼽히는 초동면 우령산(596m)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에 들어선 외지인을 가장 먼저 반기는 풍경은 해바라기밭이다. 봉황저수지 제방에 면적 3만3000㎡ 꽃밭이 조성됐다.

첩첩산중에 조성된 널찍한 꽃밭은 봉대마을을 알리는 일등공신이다. 주민 유성초(67)씨는 “3년 전부터 해바라기를 가꾼 덕에 해바라기가 만개하는 8~9월이면 4000명 정도 여행객이 찾아온다”고 자랑했다.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 가문 탓에 8월 초순 해바라기 개화율이 20%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널찍한 해바라기밭은 시선을 붙들기에 충분했다.

중앙일보

봉대마을 해바라기 밭. 양보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꽃밭을 지나니 한눈에도 깔끔하게 정비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사람이 흰 담벼락에 ‘태바라기’를 그리고 있었다. 태바라기는 봉대마을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태극무늬를 노란 꽃잎이 에워싼 모양새다.

그러고 보니 봉대마을 벽화에는 태극기가 많이 등장했다. 마을회관에도 가정집에도 태극기가 펄럭였다. 주민 이종우(72)씨가 “봉대마을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대통령) 이상룡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마을”이라고 사연을 들려줬다.

경북 안동 고성이씨 가문의 석주 이상룡(1859∼1932) 선생은 경술국치(1910) 이듬해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독립 운동가다. 선생이 독립운동에 투신하자 고성이씨 가문이 집단 이주한 동네가 바로 봉대마을이다. 지금도 봉대마을에는 32가구 중 22가구가 고성이씨 후손으로 함께 제를 지낸다.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지은 재사(齋舍)와 고성이씨 가문을 기리는 정자를 구경했다.

중앙일보

봉대마을 꼭대기에 있는 정자. 양보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을 가이드 따라 구석구석

마을이 친인척 관계로 연결돼 있어 단합이 잘 되겠다는 말에 이종우씨는 “한때 마을이 소멸 위기에 처했을 정도로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갈등이 들끓었다”고 털어놨다.

30년 넘은 돼지 축사가 문제의 원인이었다. 여름이면 창문을 열지 못할 정도로 악취가 심했고, 분뇨가 봉황저수지까지 흘러들어 마을이 황폐해졌다. 원주민과 귀촌인이 합심해 축사 부지를 사들였고, 지난해 축사를 완전히 철거했다. 마을 환경이 되살아나자 올해만 2가구가 마을에 집을 짓고 새로운 구성원이 됐다. 마을은 축사 자리에 귀촌인을 유치할 전원주택을 만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앙일보

태극무늬와 해바라기를 합친 태바라기를 담벼락에 그리고 있는 어린이들. 양보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시간 정도 마을을 돌아보고 해가 저무는 저수지로 되돌아왔다. 저수지 산책로는 마을의 서낭신 느티나무, 태풍이 들이닥칠 때마다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는 나무다리 ‘행운교’로 이어졌다. 음식점이나 숙박시설이 없는 것은 불편했지만, 덕분에 시골 마을의 정취가 유지되는 듯했다.

봉대마을은 요즘 견학 장소로 명성이 높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귀촌 노하우를 익히고 간다. 올해만 36팀이 다녀갔다. 외지인에게 마을을 소개하면서 주민은 가이드가 다 됐다. 견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여행객도 환영한다. 누구나 봉대마을에 들러 마을 가이드를 따라 동네를 함께 산책하고 마을의 역사를 들을 수 있다

밀양=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여행정보
서울시청에서 봉대마을(밀양시 초동면 봉황중앙길 12)까지 자동차로 3시간 걸린다. 대중교통으로 찾아가려면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봉황보건소로 가야 한다. 보건소에서 1㎞를 걸어 들어가면 마을 입구다. 전화로 마을 가이드 투어를 예약할 수 있다. 봉대마을 사무국장 이우형(010-4652-3595). 무료.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