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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선거 때 날아오는 메시지와 전화의 비밀을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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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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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친절한 기자들’로 처음 인사드립니다. 탐사팀 김완 기자입니다.

크건 작건 선거를 앞두곤 무수한 말들이 전파 사이를 오갑니다. 알지도 못하는 후보자에게서 문자를 받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에스엔에스(SNS) 메시지로 지지를 부탁해옵니다. 그 많은 ‘메시지’들은 왜 하필 나의 번호에 수신된 것일까요. 누구나 궁금했고, 모두가 대충은 알지만, 아무도 정확히 답해주진 않던 그 비밀(!)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선거를 앞둔 모든 후보자들이 가장 먼저 매진하는 일이 바로 지역주민의 전화번호를 확보하는 일입니다. 거대 정당은 대대로 관리되어 내려오는 이른바 ’족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 신인들의 연락처 확보 분투기는 그야말로 눈물겹고 사활적입니다. 후보자들은 공식적으론 단 한 명의 전화번호 정보도 제공받을 수 없습니다. 후보자가 제공 받을 수 있는 개인 정보는 ‘주소, 이름, 주민번호 앞자리’까지입니다.

그럼 어떻게 전화번호를 얻을까요. 우선 합법적인 방법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정중히 ‘전화번호를 좀 알려 주시겠습니까’ 묻거나, 아니면 주차장 등에 세워져 있는 차량 번호를 깨알같이 수집하는 방법입니다. 정직하지만 아둔하고, 있다지만 쓰이지 않는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반쯤 불법’인 방식으로 전화번호를 모읍니다. 소박하게는 사돈의 팔촌까지 전화번호를 모아달라고 합니다. 지역에 있는 각종 단체, 기관, 점포 등에서도 전화번호를 수집합니다. 활용 목적이 동의되지 않았단 점에서 이렇게 모으는 방법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관행적으로 그러려니 용인합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몇 명의 연락처가 있다’고 후보자들에게 접근해오는 ‘정치꾼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런 방법을 꾸준히 열심히 하면 대략 지역주민 5~10% 정도의 연락처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여야 막론하고 이 방식의 수집 한계치는 10% 정도로 봅니다.

지난 20~23일 <한겨레>가 잇달아 보도한 서울 서대문갑 지역의 사례는 ‘완전 불법’입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이성헌 당시 새누리당 의원 쪽은 “구청으로부터 아예 주민 명부를 빼오자”는 논의를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얼마 뒤 “절대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며 지역 유권자 전체의 개인정보가 전달됐습니다. 지역 유권자 56%의 유선 전화번호, 36.6%의 휴대전화 번호가 포함된 명단이었습니다. 겹치는 이름을 빼면 지역 유권자 71.9%의 연락처가 순식간에 확보됐습니다. 명단 정리를 맡았던 당시 새누리당 관계자는 “여러 지역에서 엇비슷한 방법으로 숱하게 선거를 치러봤지만 최상급의 주민 명부였다”고 말했습니다. <한겨레>가 입수한 주민 명부를 본 서대문구청 관계자 역시 “공무원 생활 2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명단은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명단을 쥐면 얼마나 유리할까요. 혹시 ‘개인별 맞춤형 마이크로타기팅’(micro-targeting) 전략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승리 기법이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 광고사, 휴대전화, 신용카드 등 모든 영역에서 유권자의 정보 데이터를 수집해 최대한 유권자를 세분합니다. 그 분류에는 빅데이터 분석이 동반됩니다. 집단별로 분류해 맞춤형 캠페인을 펼칩니다. 청년과 노인의 욕구가 다르고, 결혼 여부에 따라 원하는 정책도 다릅니다. 성향별 맞춤 전략과 캠페인이 가능하다면 선거를 치루기가 당연히 쉽겠죠. 미국은 그런 것들이 허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선거법은 아직 이런 부분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후보가 공평하게 유권자 정보에 깜깜한 상태로 선거를 치룹니다. 이 부분을 개정하자는 논의는 해볼 수 있겠지만, 그 전에 행동하면 곤란합니다. 서대문구청과 새누리당은 초법적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확보한 주민명부로 은밀한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여론조사 기관 등을 가장해 특정 정책에 대한 질문을 던져 정치 성향을 알아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 편에 우호적이냐, 적대적이냐 아니면 중립적이냐를 표기해두곤 각각 다른 선거 전략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이런 불법 행위에도 이성헌 의원은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예상보다는 많은 득표를 했습니다.)

한겨레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워낙에 잦다보니 민감성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먼지와 개인정보는 원래 떠다니는 것 아니냐는 자조적인 농담도 많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선거 승리를 위해 행정기관의 개인정보 전체를 빼낸 것은 굉장히 중대한 선거 범죄입니다. 선거 기간 중 전파를 오가던 그 흔한 말들은 알고 보니 사회적 흉기였던 셈입니다.

김완 탐사에디터석 탐사팀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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