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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국가 폭력이 빼앗은 안녕을 그들에게 돌려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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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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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가질 수 없어 습관처럼 묻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겐 폭력이었을 폭염과 폭우가 겨우 지나가고 있습니다. 너무 흔해 소중한지 몰랐던 인사를 여쭙습니다. 안녕하신지요.

토요판팀장 이문영입니다. 지난 28일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는 ‘쌍용자동차 사건 진상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1월9일 기업회생절차 신청~8월6일 파업 종료)와 경찰 특공대의 폭력진압(8월4~5일)을 조사한 지 6개월만이었습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특공대 투입을 승인했고, 경찰과 회사가 파업 진압을 위한 “합동 작전”을 펼쳤으며, 경찰 헬기·최루액·테이저건 등이 위법하게 사용됐다고 조사위는 밝혔습니다. 국가의 사과와 경찰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취하, 명예회복·치유 방안 마련 등을 권고했습니다.

조사위가 발표한 주요 사실들은 지난 6월부터 <한겨레>가 보도해온 내용들이었습니다. 강희락 경찰청장이 특공대 투입을 반대하자 조현오 경기경찰청장이 직접 청와대로 전화해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쌍용차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2009년 3월26일)했던 대통령은 경찰 수장의 명령을 어기고 보고된 ‘하극상 작전’을 추인했습니다. 조사위의 발표는 파업 진압에 경찰과 회사가 공조했고 그 정점에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을 국가가 공식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쌍용차 사태가 ‘국가 폭력’의 차원에서 재조명되고 치유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한겨레>가 입수·보도한 ‘노조 와해 비밀문서’의 진실은 조사위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확인을 위한 시간이 부족했고 문서 작성 여부를 두고 회사와 진실공방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100여건의 문서(8월4일 1·3·4면, 8월18일 12면) 안에선 쌍용차가 경찰·검찰·노동부 등 정부기관들과의 공조 체계를 짠 뒤 파업 동력을 깨고 경찰 진압을 유도하는 과정들이 조직적으로 전개됩니다. 파일 ‘속성’에서 확인되는 작성자와 작성일은 쌍용차 내부에서 생산한 문건들임을 입증해줍니다.

조사위가 새로 확인한 문서도 있습니다. 경찰은 특공대 투입(8월4~5일) 한 달 전인 7월3일 ‘평택 쌍용자동차 진입 계획(안)’을 만들었습니다. 6월부터 준비해온 계획안은 이날과 7월14일 두 차례 경찰청장에게 보고됐습니다. 경찰은 공장으로 경력을 진입시키기 위해 사쪽으로부터 경찰권 발동 요청서를 미리 받아두는 “사전 대책”도 세웠습니다. ‘진입 계획(안)’과 회사의 ‘노조 와해 문서들’을 맞춰 보면 당시 경찰과 회사가 어떻게 ‘협업’했는지 그려집니다.

6월27일 쌍용차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전 직원을 동원해 공장 진입을 시도합니다. 공장을 점거한 조합원들과 격렬한 충돌이 발생합니다. 무리한 공장 진입의 목적은 “조기 공권력 투입 명분 제공”(쌍용차 6월11일 ‘회사 정상화를 위한 공장 진입계획’)이었습니다. 그 ‘명분’을 빌미로 경찰은 7월1일 “노사분규 현장에 전국 최초로”(경기경찰청 <쌍용자동차 사태 백서>)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합니다. 7월4일 경찰이 작성한 ‘쌍용차 옥쇄파업상황 관련 사측 협조사항 등 조치 지시’에선 공장 진입을 안내해줄 직원 명단을 취합해달라고 회사에 요청한 사실이 확인됩니다. 7월9일 쌍용차는 ‘안내양 현황’이란 엑셀 파일을 만들어 안내요원 100여명의 실명과 휴대전화 번호를 정리합니다. 일주일 전 회사는 파업 불참 직원의 아내들을 대상으로 ‘쌍용차를 사랑하는 아내들의 모임’을 조직합니다. 과장·차장급 직원들을 “코디”로 붙여 지원합니다. 그들을 참여시킨 ‘대정부 공권력 투입 촉구대회’를 7월7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개최합니다. 그렇게 진압 여건을 조성하고 8월5일 실행합니다.

김주중. 쌍용차 조립공장 옥상에서 경찰 특공대의 방패와 곤봉에 찍힌 그가 9년 뒤인 지난 6월19일 <한겨레>와 만나 ‘그날’을 증언(6월23일 12·13면)했습니다. 보도 4일 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6월30일 12면). <한겨레>는 그의 죽음이 잉태된 ‘그날 옥상’의 진실을 좇으며 ‘노조 와해 비밀문서’를 연속 보도했습니다. 회사는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문건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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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자 가족들은 30일 임호선 경찰청 차장을 만나 진상조사위 권고 이행과 민갑룡 경찰청장의 직접 사과를 촉구했습니다. ‘노조 와해 문서’ 수사와 책임자 처벌도 요구했습니다. 경찰청은 “수사를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김주중이 다시 죽지 않으려면, 지금까지 죽은 30명이 죽어서도 다시 죽지 않으려면, 그들이 죽어간 이유가 분명하게 규명돼야 합니다.

공장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돌립니다. “암과 지방덩어리”(쌍용차 2009년 2월6일 ‘생산 부문 경영정상화 방안 보충자료’)로 규정된 해고노동자들이 ‘사람’의 자격으로 공장에 돌아가길 바랍니다. 너무 막막해 하지 못했던 인사를 그들에게 전합니다.

부디 안녕.

이문영 토요판에디터석 토요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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