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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아날로그적인 디지털 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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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디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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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센터에서 일하는 청년 마시바 유타로(스다 마사키)는 6살 아이를 유괴해달라는 독특한 의뢰를 받아들였다가 체포된다. 의뢰인은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이의 엄마였다. 구속될 위기에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유타로의 이야기는 큰 화제를 모은다. 유타로의 독특한 캐릭터에 흥미를 느낀 변호사 사카가미 마이(아소 구미코)는 보석금을 처리해주는 대신 그를 남동생 사카가미 케이지(야마다 다카유키)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한다. 그곳은 사망자들이 생전에 남긴 디지털 유품을 은밀하게 지워주는 회사다.

현재 일본 <티브이 아사히>와 국내 <트렌디> 채널에서 동시 방영 중인 드라마 <디리>(원제 ‘Dele’)는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화두로 급부상한 디지털 유품을 소재로 한 독특한 미스터리물이다.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는 고인의 온라인 흔적을 말끔하게 청소해주는 신종 직업 디지털 장의사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국내에서도 2016년 한국고용정보원이 향후 5년 내 유망 직종으로 디지털 장의사를 선정하면서 주목받은 바 있다.

<디리>는 차가운 디지털 정보 안에 숨겨진 범죄의 단서를 추적하는 미스터리물이면서도, 그 데이터 뒤에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이해 또한 놓치지 않는 작품이다. 이는 첫 회에서 케이지와 유타로가 디지털 세계의 본질에 대해 나누는 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디지털 세상에서 어떤 특별한 방을 엿보려 할 때는 그 방의 주인인 사람을 이해해야 비로소 문이 열린다”는 케이지의 말에 유타로는 “아날로그적이네”라고 답한다. 케이지의 냉철한 통찰력과 유타로의 따뜻한 인간미가 만나면서 디지털 유품은 단순한 데이터 이상의 의미를 띠게 된다.

첫 회 주간지 기자 살인 사건에서부터 둘의 이러한 호흡이 빛을 발한다. 가십을 주로 다루던 기자의 의뢰는 얼핏 수치스러운 작업물을 지우려는 목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더 깊이 파고들어가 알게 된 진실은 그가 마지막에는 기자로서 본분을 회복하려 노력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어린 아들을 만난 유타로는 기자의 변화 뒤에 부성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케이지는 유타로의 말에서 단서를 얻어 좀처럼 열리지 않던 잠김 폴더의 비밀번호를 풀어낸다. 기자가 취재하던 비리 사건은 해결되고, 미처 전하지 못한 선물도 아들에게 전해진다. 그렇게 디지털 ‘유품’의 성격이 품고 있는 애도의 정서가 완성된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인터넷 인프라를 갖췄지만, 그 힘으로 소위 ‘신상털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 나라에서는 그 데이터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많이들 잊고 산다. 국내에서 디지털 장의사가 유망 직종이 된 배경에 디지털 성범죄의 유행이 있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디지털 정보를 다루면서도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시간이 더 많은 드라마 <디리>를 보면서 잊고 있던 것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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