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박수찬의 軍] 시가행진 생략…축소된 국군의 ‘칠순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참전용사와 미래 군 모습에 초점/ 군사 퍼레이드는 안해 “북한 눈치보기” 지적도

제70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다음달 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다. 사람 나이로 치면 칠순이 된 만큼 이를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가 있어야 하나 올해 국군의 날은 다르다. 건군(建軍) 70주년이지만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시가행진은 생략되고 저녁 시간에 기념행사가 치러진다. “군의 특수성을 도외시하고 있다” “북한을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닌가”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세계일보

2013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해병대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제공


◆참전용사와 미래 군 모습에 초점

국방부에 따르면 기념행사는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3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해 80분간 진행된다. ‘세계 속의 대한국군’, ‘미래를 준비하는 국군’, ‘한반도의 평화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국군’, ‘70년 동안 국가 및 국민과 늘 함께한 국민의 국군’을 주제로 진행되며, 국민의례, 영상 감상, 훈장 및 표창 수여, 태권도 시범, 미래전투체계 시연, 축하 공연 등이 이뤄진다.

세계일보

한국군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가 미군과 함께 6.25 전쟁 당시 북한 지역 함경남도 장진과 평안남도 개천지역에서 전사한 한국군 유해 64위에 대한 인수 절차를 마치고 태극기로 관포한 유해를 우리 공군 수송기로 이송하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이날 오전 10시에는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국군유해 봉환행사가 열린다. 1996~2005년 미국이 북한과 함께 함경남도 장진호와 평안북도 운산군 등에서 발굴한 유해 중 한미 공동감식을 통해 국군 전사자로 판정된 64위의 유해를 모시는 행사다.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미국 하와이에서 유해를 인수, 공군 수송기를 통해 국내로 봉환할 예정이다. 유해를 실은 수송기가 영공에 진입하면 공군 F-15K, FA-50 전투기가 호위해 호국영웅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갖추게 된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육해공군 미래전투수행체계 시연이 최초로 이뤄진다. 군은 시연을 통해 국방개혁 2.0에 포함된 육군 드론봇(드론+로봇)과 워리어 플랫폼, 해군과 공군의 유인 무인 무기체계를 이용한 미래 전장 패러다임을 제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국군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방침이다.

기념식 시작과 함께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에어쇼가 펼쳐진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제작한 T-50 고등훈련기를 개조한 T-50B로 구성된 블랙이글스의 서울 시내 야간 에어쇼는 이번이 처음이다. 가수 싸이가 기념식에서 출연료 없이 축하공연을 펼친다. 우리 군의 각종 장비들도 29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전쟁기념관에서 공개되며 체험부스도 마련된다.

세계일보

2013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대공미사일 천마 포대가 열병을 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제공


◆군사 퍼레이드는 안해 “북한 눈치보기” 지적도

올해 기념식에서 병력과 장비가 서울 도심을 행진하는 군사 퍼레이드는 실시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건군 70주년이자 정주년(5년 주기로 꺾이는 해)인 올해 국군의 날 기념 군사 퍼레이드를 하지 않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956년 처음 시작된 국군의 날 행사는 1993년부터 5년 주기로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 2008년과 2013년에는 병력과 전차, 자주포, 미사일 등을 동원해 서울 도심에서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군사 퍼레이드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군 안팎에서는 “명색이 70주년인데 너무하다”는 불만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군 소식통은 “북한도 열병식을 하는데 우리 군은 왜 못하나”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며 훈련도 로키(Low-key)로 하는데 군사 퍼레이드도 안한다니 굴욕감마저 든다”고 비판했다.

세계일보

북한군인들이 지난해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05주년 열병식에서 평양 김일성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2012년 이후 빈번하게 열병식을 개최했던 북한은 올해 두 차례 에 걸쳐 열병식을 실시했다. 매년 4월 25일에 기념식을 거행하던 건군절을 2월 8일로 옮겨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병력 1만3000여명과 각종 재래식 무기, 탄도미사일을 대거 동원한 열병식을 열었다. 정권 수립 70주년(9.9절)을 맞아 지난 9일 같은 장소에서 탄도미사일을 제외한 채 병력 1만5000여명과 전차, 자주포, 방사포 등이 참가한 열병식을 개최했다.

“잠깐의 분열을 위해 전투력을 낭비한다”며 군사 퍼레이드를 중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도 많다. 하지만 국군의 발전상을 국민들이 눈으로 확인하고, 군에 대해 국민의 성원을 장병들이 체감하며 자부심을 느끼고 사기를 진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정부가 스스로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북한의 경우 정권 수립 70주년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보이는 대신 군 조직의 사기를 높이는데 주력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을 일으켰고 지난해에는 오청성 귀순사건으로 위신에 손상을 입은 판문점 경비부대를 열병식에 참가시켰다.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해군사령부 제1기지와 베트남전쟁 당시 미 공군과 싸웠던 공군 조종사, 1980년대 쿠바에 지원한 무기를 생산한 군수공업부문 관계자들도 열병식 종대를 구성했다. 지금까지 이들의 활동상은 대규모 공개행사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소외받았던 군 조직들을 열병식에 참여시켜 구성원들의 자부심을 고취하고 ‘당신들의 헌신을 당과 국가는 잊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를 줬다는 평가다.

세계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8일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리는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해 송영무 국방장관과 함께 열병하고 있다. 자료사진


국군의 날 유래에 대한 국방부의 설명도 세간의 통설과 달라졌다. 국방부는 국군의 날 기념행사 참고자료에서 “1956년 9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육해공군 창설기념일을 통합해 10월 1일로 단일화하기로 의결했다”며, 그 이유로 “1949년 10월 1일은 공군이 창설되면서 국군이 지금의 완성된 모습으로 태어난 날”이라고 설명했다. 국군의 날이 6.25 전쟁 당시인 1950년 10월 1일 국군이 최초로 38선을 넘어 북진한 날을 기념한 것이라는 기존의 통설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국군의 날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국방부의 설명은 2%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운영하는 ‘국경일과 법정기념일’ 홈페이지에서는 국군의 날에 대해 “1956년 9월 ‘국군의 날에 관한 규정’에 의해 육해공군 기념일을 통합, 국군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했다”고 설명한다.

국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각종 백과사전들도 국가기록원의 설명에 일부 사실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국군의 날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DAUM)백과사전은 ‘해방 후에는 군별로 기념일이 달랐지만, 1956년 육해공군의 기념일을 통합, 6.25 전쟁 때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을 기념하여 국군의 날로 삼았다. (중략) 이날은 기념행사와 시가행진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고 기술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네이버(NAVER) 시사상식사전은 각각 ‘1950년 10월 1일은 한국군이 남침한 북한공산군을 반격한 끝에 38선을 돌파한 날로서, 이 날의 의의를 살리기 위하여 국군의 날로 지정하였다’ ‘기존에는 각군별로 창설기념행사를 실시해왔는데, 이것을 1956년 국무회의에서 1950년 10월 1일 3사단 23연대 병사들이 강원 양양 지역에서 최초로 38선을 넘어 북진한 것을 기념하여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공포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두산백과사전도 이와 유사한 맥락으로 국군의 날에 대해 기술했다. “국방부가 남북 화해 분위기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세계일보

지난해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ADEX 2017` 언론공개행사에서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공중기동을 선보이고 있다.자료사진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국군의 날 행사 때마다 장병들이 고생을 많이 하는데 올해는 장병들이 주인공으로 축하받는 행사로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군의 새로운 위상과 참모습을 적극 홍보하고, 장병의 사기를 진작하며, 유비무환의 총력안보 태세를 확립하기 위함’이라는 국군의 날 제정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연예인의 기념행사 참석에 대해서도 “행사 주인공인 장병들에게 집중되어야 할 시선이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실정이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군이 70년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기회가 국군의 날이다. 많은 장병들이 국민의 성원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축제같은 형태로 국군의 날 기념행사를 치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남북 화해 분위기와 관계없이 군의 안보태세는 이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전투력을 과시해 국민의 안보불안감을 덜어주는 국군의 날 본연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은 군에도, 국가에도 이로운 일이 아니다. 이벤트를 위한 이벤트가 아닌, 장병과 국가안보를 생각하는 세심한 접근이 필요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든 건군 70주년의 현실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