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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박수찬의 軍] "발전이냐 퇴보냐"… 건군 70주년 맞은 국군의 앞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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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일은 국군이 탄생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45년 11월 11일 해방병단(해군)을 시작으로 1946년 1월 15일 조선국방경비대(육군), 1949년 10월 1일 공군이 창설되면서 육해공군 체제를 갖춘 국군은 6.25 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주요 첨단 무기들을 국산화한 62만여명의 대군으로 성장했다. 세계 10위권의 군사강국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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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군 70주년을 맞은 우리 군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있다. 연합뉴스


건군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국군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이후 60여년 동안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북한군과 회담을 하면서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 들어섰다. 내부적으로는 국방개혁 2.0을 통해 병력 중심 군 구조에서 첨단 과학기술 군대로 전환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내부 외부 환경이 동시에 급변하는, 가보지 않았던 길을 군이 걷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 평화, 민간과의 격차 감소 앞장서

지난 7월 발표된 국방개혁 2.0과 9월 평양 공동선언은 국군에게 익숙지 않은 분야에 역량을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민간과의 격차 해소다.

군은 민간 사회와 구분되는 역할을 수행한다. 때문에 사회와 분리된 채 군 고유의 문화를 유지했다. 사회와 군의 인식차가 커지면 사회의 인식을 군의 요구 수준에 맞도록 강제했다. 5.16과 12.12 군사쿠데타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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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군 관계자들이 6월 25일 통신선 복원과 관련된 통신실무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서로 악수를 나누고 있다. 국방부 제공


국방개혁 2.0은 민간 사회의 의식 구조를 군에 이식하는 형태로 개혁을 추진한다. 노무현정부의 국방개혁 2020과 이명박, 박근혜정부의 국방개혁 기본계획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국방개혁 2.0의 특징이다. 국방분야가 민간사회와 분리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받아들여 민간 분야의 장점-양성평등, 권위주의 타파, 투명성 강화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국방개혁 2.0 42개 과제 중 △군 의문사 진상규명과 근원적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 △인권존중의 군 문화 조성 △군 내 불합리한 관행 척결 △장병 사역 대체 지원 확대 등은 민간 사회 수준에 맞지 않는 군대 문화를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으로 평가받는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선봉장 역할을 맡게 된 것도 국군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이후 국군은 ‘응징 DNA’가 뼛속깊이 박혀있었다. 북한이 국지도발을 하거나 핵실험, 탄도미사일 발사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군의 입장이 반복됐다.

그런데 올해 초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고,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군사분야 합의서가 채택되면서 국군은 대북 응징 주역에서 남북 관계 개선의 첨병으로 역할이 급변했다.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철수, DMZ 내 남북공동유해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육해공 적대행위 중단 구역 설정 등 굵직한 사안들이 내년까지 이어질 예정이어서 군 당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군사분야 이행에 온힘을 쏟아야 할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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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오후 국군장병들이 '판문점 선언' 후속조치 첫 단계로 경기도 파주시 군사분계선(MDL) 교하소초에 설치된 대북 고정형 확성기 철거작업을 하고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군의 진짜 위협과 역할은 무엇인가

사회적, 외교안보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을 잡는 일이다. 그리고 그 중심은 ‘군의 진짜 위협과 임무’다. 이같은 측면에서 볼 때 군의 대응은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국방개혁 2.0은 불확실한 안보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유연성을 추구하면서 동북아지역 내 잠재적 위협과 비군사적 위협에 대비하는 안보역량을 확충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남북 관계 개선에 상관없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지속된다는 전제 하에 역내 잠재적 위협과 비군사적 위협을 부각시켰다. 또한 미래전에 대비한 역량 구축을 강조했다.

유연성을 높여 다양한 위협에 대응할 필요성은 있다. 다만 위협과 임무를 백화점식으로 늘어놓다보니 우리 군이 역량을 집중해야 할 임무의 우선순위가 잘 보이지 않는 점이 문제다. 올해 말 발간될 예정인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군을 주적으로 기술하는 표현이 사라질 경우 이같은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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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드론봇(드론+로봇) 전투단 요원들이 드론을 조작하고 있다. 육군 제공


비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부분은 더욱 우려스런 대목이다. 전통적인 방식을 추구하지 않는 이슬람국가(IS) 등의 테러 조직을 상대하는 비군사적 위협 대응 전력 건설은 북한군에 맞서는 군 조직을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아프리카나 중동 국가를 대상으로 한 군사외교와 해외 파병, 연합훈련 등도 강화해야 한다. 북한군 위협이 남아있고, 한미 동맹 사안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한 비군사적 위협 대응까지 별도로 진행할 역량을 갖추는 일은 쉽지 않다.

국방개혁 2.0에서 강조하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전력증강도 그 방향성이 불분명하다. 육군 장병들이 갖추게 될 워리어 플랫폼과 아미 타이거 4.0, 드론봇(드론+로봇), 인공지능(AI)과 빅 데이터, 공군 스마트 비행단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요소가 국방개혁 2.0에 대거 포함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각군이 추진중인 혁신안들을 육해공군 합동성 증진과 연계, 3군 합동작전과 입체기동작전에서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은 아직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처럼 다양한 플랫폼을 실시간 네트워크로 연결, 전장에서 육해공군이 합동 운용하는 개념이 강조되는 국제적 추세를 고려하면, 군이 눈에 보이는 화려한 요소에만 신경 쓰고 눈에 띄지 않는 디테일은 외면한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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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미사일을 장착한 북한군 장갑차가 9월 9일 정권수립 70주년 열병식에 참가, 평양 김일성 광장을 지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싸워서 이긴다’는 군 본연의 역할이 퇴색될 우려도 제기된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제재 대상이 아닌 국방 분야는 남북관계 개선에 동력을 제공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북한군과 대화를 하고, 비무장지대(DMZ) 지뢰제거와 감시초소(GP)를 철수하고, 유해도 발굴하는 등 수많은 관련 임무가 군을 기다리고 있다.

남북 관계 개선에 군이 나서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만 역량을 집중할 경우 ‘싸워 이기는 군대’라는 군 본연의 임무를 위한 기반이 훼손될 수 있다.

군의 임무에서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하는 군대는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1870~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 프랑스군은 프로이센군보다 열세였는데도 교황령과 해외 식민지 보호에 집착해 패전을 자초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평화에 취해 훈련 대신 소금을 만들고 미역을 채취하는 등 경제활동에 집중했던 조선군은 일본군에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대패, 한성을 내줘야 했다.

군이 탄생한 지 70년을 맞는 2018년 가을은 군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의식 개혁과 더불어 군 조직을 미래전에 맞게 개편하면서 남북 관계 개선을 주도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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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장병들이 휴전선 철책을 점검하며 순찰을 돌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를 준비하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현재의 위협에 기반하지 않은 국방정책은 환상에 불과하다. GP를 철수하고 육해공 상호 적대행위 중단 구역이 설정되어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단기간 내 감소하지 않는다. 북미 간에 비핵화 협상이 진행중이지만 비핵화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다.

비군사적 위협이나 동북아 지역 내 잠재적 위협 대응, 4차 산업혁명 대비 등도 중요하지만 군이 핵심 역량을 기울여 준비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북한의 군사적 위협 대응이다.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규정하고 있는 조선노동당 규약이 남아있고, 대북 매체들은 북한군이 장병들에게 “북남 수뇌상봉 등 외부 소식에 동요하지 말라”며 대남 전투준비임무에 매진할 것을 독려중이라고 전하고 있다.

정부의 남북 관계 개선 정책과 별도로 군이 북한군을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하고 그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그나마 추진중인 국방개혁 2.0의 동력도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과 군인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군의 임무와 역할, 위협은 말 그대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국민들과 군인들 중에 IS나 소말리아 해적이 북한군보다 더 큰 위협 요소라고 생각하고 국방개혁을 지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건군 70주년을 맞는 군이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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