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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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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산소 부족하면 '행복 호르몬' 뚝↓ 산소 샤워하면 우울·불안감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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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로 지키는 건강 ②우울증과 심신 안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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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 산소가 부족하면 불안감이 커지고 우울해지는 심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산소가 부족할 때 우울증과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만원 지하철에서 가슴이 답답하고 졸음이 밀려오며 불쾌 지수가 치솟는 게 ‘기분 탓’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루의 80%를 실내에서 보내는 현대인에게 실내 공기 질 관리와 충분한 산소 공급은 일상의 활력과 건강한 신체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중앙일보 건강한 가족 심층기획 ‘산소로 지키는 건강’ 두 번째 순서에서는 ‘산소와 우울증’의 관계를 알아봤다.

올해 초 하버드 정신의학 저널(Harvard Review of Psychiatry)에는 산소와 우울증·자살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뇌·정신 질환을 연구하는 의료진이 34개의 관련 논문을 종합 분석한 결과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이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하는 사례가 많고, 이것이 낮은 산소 농도와 관계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내 고도가 높은 지역의 주민 자살률은 10만 명당 18.1명으로 고도가 낮은 지역(11.3명)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고산지대에 산다는 조건이 총기 소유 여부보다 자살에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울증도 마찬가지 경향을 보였다. 고도 약 3000m 도시에서 일하는 페루의 전기공들은 낮은 지대의 전기공보다 평소 우울·불안감이 약 네 배 높았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산소 부족을 유발하는 고도 자극을 일주일간 줬더니 움직임이 둔해지는 등 우울증 증상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우울증·자살률이 높은 이유를 ‘체내 산소 부족’과 이로 인한 ‘세로토닌 수치 저하’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은 “고도가 높으면 기압이 낮아져 사람이 호흡할 때 유입되는 산소량이 줄어든다”며 “전신에 공급되는 전체 산소량이 줄면서 피로·불면·두통 같은 저산소증으로 인한 ‘고산병’ 증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런 저산소 환경에서는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의 분비량이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체내 산소 농도가 낮아지면 세로토닌을 합성하는 효소의 활성도 줄어드는데, 결과적으로 뇌의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져 우울감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실제 실험 결과 고도가 3~4배 높은 곳에서 세로토닌이 최고 30% 줄었다는 보고도 있다.

고도 1m 높아지면 자살률 1.8%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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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 부족으로 인한 우울증이 고산지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국내서도 비슷한 결과가 보고됐다. ‘고도에 따른 자살률’을 연구한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는 “고산지대라고 볼 수 없는 국내 고도 0~1000m 지역에서도 거주지의 고도가 1m 증가할 때마다 자살률이 1.8%씩 증가했다”며 “나이·소득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을 고려했을 때도 이 같은 경향이 뚜렷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상에서도 산소가 부족할 때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평소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산소 부족을 겪는다. 가령 승객으로 꽉 찬 금요일 저녁 지하철의 산소 농도는 18~19% 수준에 불과하다. 18% 이하는 고용노동부의 ‘이산화탄소 질식 재해 예방 안전작업’ 매뉴얼이 정의하는 ‘산소 결핍’ 상태다. 대기 중 평균 산소 농도는 21%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자동차 내부도 마찬가지다. 승용차 창문을 꼭 닫고 내부에 승객 4인을 태웠더니 30분 만에 산소 농도가 1% 줄어든 것을 관찰한 국내 연구도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호흡하는 사람 수가 늘수록 산소량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체내 산소 부족을 유발하는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김창수 교수는 “실내 공기 오염 때문에 체내 산소 부족에 노출되는 상황도 있다”며 “예를 들면 환기를 하지 않고 부엌에서 장시간 구이·튀김 등의 조리를 하면 일산화탄소(CO) 농도가 급격히 상승한다”고 말했다. 이런 공기 오염 물질은 옅은 농도로도 인체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김 교수는 “일산화탄소는 몸속에 들어왔을 때 산소 대신 적혈구에 붙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혈액을 타고 전신을 떠돌며 세포·조직에 공급돼야 할 산소 대신 일산화탄소가 그 자리를 빼앗아 산소 부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산지대처럼 대기 중 산소가 부족한 환경이 아니어도 현대인은 밀폐·오염된 실내 환경에 머물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실내 곳곳에 식물 두면 심리적 안정


일상에서 부족한 산소를 보충해 우울감을 없애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가장 대표적으로 산림욕을 꼽을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뱉는 나무가 빽빽한 숲에서는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도시보다 1~2%포인트 정도 높다. 산림욕 덕분에 주요 우울장애 환자의 우울 지수가 개선되고 심장 박동수가 느려지는 등 심신이 안정되는 효과를 관찰한 국내 연구도 있다. 김호현 평택대 ICT융합학부 환경융합전공 교수는 “삼림욕장에 온 것처럼 사무실과 교실, 집 안 곳곳에 식물을 배치하면 산소량이 늘어 심리적인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며 “이것이 바로 식물을 통한 공기 정화 효과”라고 말했다.

산소의 치료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해외 파병에서 복귀한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을 겪는 군인을 대상으로 고농도 산소를 1~2시간 집중 공급하는 ‘고압산소 치료’를 시도해 증상 개선 효과를 본 사례도 있다. 한 달간 총 40회 치료를 받은 30명의 은퇴 군인 중 29명에서 불안감과 우울증, 자살에 대한 생각, 향정신성 약물 복용이 모두 감소했다. 군인 대상 고압산소 치료에 참여한 의료진은 “고농도 산소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스트레스와 관련된 유전자를 조절해 증상을 개선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윤혜연 기자 yoo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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