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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명당(明堂), 임금이 태어나다 - 서울 운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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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나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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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과 고종의 사저였던 운현궁. 무료 개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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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터는 내가 가져야겠소!”

최근에 개봉한 영화 ‘명당’의 한 장면이다. 왕족이었지만 파락호(破落戶) 행세로 목숨을 근근히 부지하던 흥선(지성 분)에게 명당이란 아들이 임금이 되는 땅이다. 결국 차남 재황(載晃)은 조선의 제 26대 마지막 왕이 된다. 고종(高宗)이다.

1863년 흥선의 소원대로 12세 소년 재황이 왕위에 오른다. 10년간 흥선은 대원군의 이름으로 섭정을 한다. 며느리 명성황후 민씨와의 권력 다툼 끝에 1873년 11월 흥선대원군은 실각하고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된다. 이후 고종은 1907년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를 당하기 전까지 무려 44년 동안 왕위를 지킨다. 또한 고종은 왕위를 내어주고도 12년을 상왕으로 살았으니 56년 동안이나 왕의 이름을 달았던 조선 최장수 임금이기도 하였다. 고종이 태어난 집터, 운현궁(雲峴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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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사랑채인 노안당. 이곳에서 그는 고종을 섭정하며 많은 사람을 만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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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입구 길 건너편, 그러니까 지금은 낙원상가 입구 쪽으로 빠지는 왼편 좁다란 길 언저리에 있는 솟을대문이 바로 고종의 생가(生家)이자 흥선대원군의 사가(私家)인 운현궁(雲峴宮)의 입구다. 지금은 사적 제 257호로 지정된 곳으로 고종이 즉위하면서 왕의 잠저라 하여 ‘궁(宮)’의 명칭을 받게 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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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사 내에 있는 방. 수직사는 운현궁을 지키던 군졸들이 기거하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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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雲峴)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러하다. 원래 흥선대원군의 사저 앞 고갯마루에 조선시대 천문과 기상 관측을 하던 서운관(書雲觀)이 있었다. 바로 서운관의 ‘운(雲)’과 고개를 뜻하는 ‘현(峴)’이 합쳐져 운현궁(雲峴宮)이라는 집이름이 나왔다. 원래 이 집 주변이 천문을 관측하는 상서로운 기운이 있다하여 양반가에서도 명당, 즉 ‘밝은 집터’라 하여 탐을 내던 곳이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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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드나들지 못하던 여자들만의 공간이 이로당. 바깥으로의 출입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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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에는 운현궁의 위세가 하늘을 서너 번 찔러도 남을 만큼 대단하였으니, 조선 팔도 모든 관직이 흥선대원군이 머무는 운현궁에서 결정이 되었다. 오죽하였으면 흥선대원군만이 창덕궁으로 드나들 수 있는 전용문, 공근문(恭覲門)이 만들어졌을 정도였다. 또한 그 때의 운현궁 규모도 지금 크기의 10배는 넘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담장의 길이만 해도 수 리에 이르렀다고 하니 과히 또 다른 궁궐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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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의 모습을 재현하여 놓았다. 명성황후는 운현궁을 별궁으로 삼아 왕실법도를 교육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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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때의 영광을 운현궁에서 찾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도심 한 가운데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제격인 아담한 규모로 집터는 남아있다. 현재 이곳에는 1864년에 지은 노락당과 노안당이 그대로 있다. 특히 노락당은 1866년 명성황후가 고종과 혼례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여 지금도 웨딩 촬영 장소로 종종 사용된다. 1870년에서는 이로당이 건립되었고, 이후 아재당과 사당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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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명성황후가 가례를 올린 노락당. 지금도 신혼부부의 웨딩 촬영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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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조선의 모든 기운이 다 모여 들고 사라졌던 집터인 운현궁(雲峴宮)에도 어김없이 가을바람은 불어온다. 올해도.

<운현궁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조선 후기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낙원 상가 주변을 다니다 쉴 곳을 찾는다면. 덕성여대의 양관 건물도 운현궁의 일부였다.

2. 누구와 함께?

- 누구라도 상관없이. 서울 양반 살림집을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좋다.

3. 가는 방법은?

-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가 가장 편하다.

4. 감탄하는 점은?

- 원형 그대로 남은 조선 후기 양반집의 원형.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이름에 비하여 관람객들은 많지 않다.

6. 꼭 봐야할 전각은?

- 명성황후와 고종이 혼례를 올린 노락당

7. 관람 예상 소요시간은?

-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아도 20분.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unhyeongung.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덕수궁, 경복궁, 창경궁, 종묘, 인사동, 낙원상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이야기를 잘 알고 간다면 유익한 발걸음이 될 수 있다. 서울 내에서 이 정도 규모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궁(宮)은 많지 않다. 추천!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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