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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염소도 한꺼번에 다 죽었어, 폐병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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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공원국의 유목일기

(24) 초원을 죽이는 물 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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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로트에도 카슈카수에도 수염을 허옇게 기른 노인들이 많이 있는데, 여기는 일흔 넘긴 이가 열몇명밖에 안 돼. 열둘인가? 물이 원인일 거야.”

피부병을 앓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뜰하게 사는 친구가 전해준 말이다. 인구 6천의 마을에 이른바 노인이 겨우 열몇명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떠날 날이 가까워오니 마음이 급하다. 나는 그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10월 둘째 날, 이른 점심을 먹고 개인 천막과 먹을 것을 준비해서 길에 올랐다. 이곳의 물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오는지 확인하러 가는 여행이다. 마을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투명했다. 빙하 녹은 물이 서늘한 고원길 수십리를 달리며 수많은 여과층을 거쳤으니 깨끗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큰 수원(水源) 둘이 만나는 협곡까지 가면서 나는 물이 나오는 경로를 찬찬히 살폈다. 가을과 봄에 몇차례 비가 오지만 이곳의 물은 대개 겨울 눈이 서서히 녹으면서 만들어진다. 물줄기의 사연은 다 달랐지만, 그들의 분투는 하나같이 숙연했다. 군데군데 바위가 드러나 얼룩덜룩하지만 너비를 가늠하기 힘든 눈밭이 보내는 물이라고 해야 실개천도 이루지 못하는 한 뼘 너비의 도랑이다. 수백미터의 바위벽과 너덜 지대를 지나 하천 바로 앞에서 용출하는 물은 이끼밭 몇평을 키울 정도고, 눈향나무 수천그루를 키우는 물줄기 하나는 종지를 대고 한참을 기다려야 채워질 양이었다. 저번 겨울에 쌓인 눈이 여름 내내 바위틈에 숨어 있다가 겨울이 오는 이제야 다시 세상으로 나왔지만, 그 양은 혀로 핥아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물은 받아 마시기조차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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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다 동풍 타고 마을 덮치는 ‘그놈’

내가 ‘어머니의 창’이라고 몰래 이름붙인 협곡에 다다랐을 때 눈발이 흩날렸다. 거기서 빈틈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웅장한 바윗덩어리 한가운데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장한 물줄기 하나를 보았다. 하나하나 가련한 물줄기지만 수천개가 모이니 자못 의기양양한 개천이 되어 바위틈을 헤치고 넓은 하곡으로 쏟아져 나간다. 이 물이 바로 사리모골 6천 주민의 생명줄이다.

4천 미터 가까운 고도에서 초저녁 눈을 맞으며 한참 헤맸더니 온몸이 시렸다. 사람도 그렇지만 말이 고도에서 눈을 맞으면 견디지 못한다. 사진 몇장을 찍고 내려와 말에 올라 고도를 몇백 미터 더 낮췄다. 산길을 움직일 때 ‘바람’은 물통이 된다. 말은 웬만해서는 더러운 물을 먹지 않는다. 갈증이 날 때 깨끗한 물을 만나면 한꺼번에 20~30리터를 들이켜니 내리막을 달릴 때 물이 출렁이는 소리까지 들린다. 바투 깎은 잔디밭 같은 물가의 작은 초원에 ‘바람’을 멈추고 천막을 쳤다. 덩치 큰 친구가 옆에 있으니 두려움도 없고 외로움도 없이 하염없이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하나 그 덩치는 겁쟁이라 밤새 천막 주위를 맴돌며 풀을 뜯다가 어쩌다 플래시를 켜면 킁킁대며 다가온다. 그런 그를 위해 새벽에는 아예 천막을 열어 물소리와 추위까지 불러들였다. 유성도 뜸해지고, 별이 하나둘 희미해지더니 이윽고 서광에 자취를 감춘다.

아침 일찍 서둘렀다. 새벽이면 천천히 흐르는 동풍을 타고 마을을 덮친다는 ‘그놈’을 확인해야 하니까. 여섯시쯤 그 문제의 언덕에 다시 올랐다. 그리고 나는 슬픔과 무기력이 한꺼번에 몰려 치솟는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며 그 최후의 묵시록적인 광경을 스케치해 나갔다.

초원 사이로 한눈에도 이질적인 시커먼 인공산이 풀 한 포기 품지 않을 양으로 떡하니 서 있었다. 덤프트럭의 엔진 소리가 웅웅대고, 산 아래로 굴러 내려가는 바윗덩어리가 내는 굉음이 먼 곳까지 전해져왔다. 그렇게 인공산이 한시도 쉬지 않고 덩치를 불려가는 중에 하늘로 먼지기둥이 솟아올라, 이상하리만큼 느리고 스산한 아침 바람을 타고 지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고의적으로 덮어버리겠다는 듯 초원으로 퍼졌다. 그 뿌연 먼지에 가려 아침 햇살이 비친 키질강마저 사막을 건너는 실뱀처럼 초라하고, 건너편 설산의 하얀 윤곽은 회색으로 우중충했다. 하긴 인공산에서 일어난 먼지구름은 아침 태양빛마저 무색하게 만들 지경이었으니. 거기에 더해 포장하지 않은 광산 도로를 달리는 트럭이 일으키는 먼지구름까지 가세하여 마을을 덮어갔다. 바람과 태양의 힘을 모르던 시절 화석연료를 태우던 인습이, 돈이라는 물신만을 숭배하는 탐욕의 날개를 얻어, 태곳적부터 짐승과 인간을 살리던 물과 초원을 야금야금 먹어가고 있었다. 수억년 동안 지구가 저장한 탄소와 감추어두었던 온갖 금속 가루들이 그렇게 한순간에 대기로 나오고 물로 들어갔다. 이제야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몇해 전에 염소가 한꺼번에 다 죽어버렸어. 폐병이래.”

“광산 옆의 풀이 매년 짧아지고 있어. (산을 가리키며) 이제 저기는 못써. 먼지투성이고.”

“겨울에 물을 길으려 얼음을 깨러 가면, 그 얼음 색깔이 새카매.”

유목민은 수초를 따라다닌다지만, 물이 오고 풀이 왔으므로 그들은 결국 물을 따라다니는 셈이다. 세상에 물처럼 흔하고 귀하고 기이한 물질은 없을 것이다. 맛도 색도 향도 없으므로 물은 남을 씻기고, 자기 몸으로 감싸고, 뭇 생명의 재료가 된다. 증발, 동결, 응결의 모든 과정이 상온에서 일어나므로 계절에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생물을 위해 봉사한다. 물은 생명체의 몸통 그 자체이면서, 몸 안으로 들어가 땀 오줌 똥에 섞여 역할을 다한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심부름꾼이다. 그러니 세상에 더러운 것을 품은 물은 있지만 그 자체로 더러운 물은 없다. ‘더러운 물’이란 더러움을 정화하느라 더 바쁜 물일 뿐이다.

키르기스 초원의 광산 3곳에서
종일 내뿜는 새카만 석탄 분진
만년설과 풀에 고스란히 쌓여
생명줄인 물과 계곡 오염시켜

위험 알면서도 마실 수밖에 없어
젊은 친구들과 광산 닫기 압박해
초원 망치는 자본 탐욕 막을 터
맑은 물 공급할 상수도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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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결탁한 광산 주인

일리나, 촐폰, 주흐라가 하루에도 몇번씩 가파른 언덕을 허덕이며 나른 물이 저 분진으로 오염된 것이란 말인가? 개울에 얼음이 덮이면 새벽마다 당나귀 모는 아이들이 몰려들어 탁탁 갈라지는 손을 감싸고 길어가는 그 물이. 상수도가 없는 지금, 분진은 물로 직접 떨어지거나 지상을 배회하다 서서히 물로 들어간다. 온 마을 사람들이 그 물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장 그 물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으니 그것을 마신다. 수천년 동안 감히 인간의 몸을 씻을 생각도 못할 정도로 경배받던 물이, 수십년 동안 학대를 받으며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덩달아 약한 생명들도 물을 따라 침묵당했고, 이제 생물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인간마저 두려움에 빠졌다. 이가 다 빠지고 폐가 망가진 이가 수두룩하고 장수하는 노인마저 보기 어렵게 된 지금, 그 원인은 언뜻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역학조사는 무망하고 법리적인 인과관계를 밝히기도 어렵거니와 밝혀낸들 그동안에도 물과 생명체는 나날이 병들어갈 것이다.

광산 주인이 하루만 시간을 내서 그 물줄기들의 사연을 듣는다면 마음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사물을 보는 시각이 한 치 갈리고 시간이 얼마간만 지나면 사람들의 인식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 놓인다. 이를테면 시인은 사업가를 ‘돈벌레’라 하고 사업가는 시인을 ‘비렁뱅이’라 되받는 식이다. 그러나 오늘날 돈벌레와 비렁뱅이 사이에는 상하의 장벽이 놓여 있다.

“(물이 더럽혀진다고, 상수도를 만들 테니 분담금을 내라고) 세번 청원했는데 꿈쩍도 안 해. 이제 위협까지 해. 정부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마피아를 데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나는 아직 광산 주인을 만나지 못했으니 그대로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할 뿐이다. 곧 그의 이야기도 들을 것이다. 하지만 좌우로 1만명이 사는 마을 둘 사이에 있는 광산들이 주민 건강을 위해 한 푼도 내지 않고, 분진 저감을 위해 손가락도 까닥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스물네시간 돌리면서 광석을 캐내고 있어. 인건비와 개발비를 합쳐도 하루에 얼마나 되겠어. 큰 광산 사장은 오시와 비슈케크에서 계속 식품사업을 확장한대. 그런데 몇년째 약속한 보상금을 내지 않아. 임금 인상 약속도 지키지 않았어. 3년째 그대로야. 광산을 열 때 노인만 남은 집에는 광석을 나눠주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도 지키지 않았어.”

마을 전체에 내는 보상금이라 해도 일년에 겨우 몇백만솜(=몇천만원)이다. 그런데도 키르기스인이 경영하는 석탄광산 둘과 중국계 광산 하나는 약속이나 한 듯이 마을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다. 그들은 정말 물신의 노예가 된 것일까? 그러나 제일 큰 광산을 운영하는 이는 ‘거물’이라 만나기도 어렵다고 한다.

이 마을을 떠나, 훗날 내가 죽은 뒤에도 이곳의 아이들이 반세기는 더 살아서 허연 수염을 단 노인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나는 겨우 일이백명 고용한다는 저 광산이 문을 닫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루에 1천솜(1만6500원)을 벌 수 있는 직장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석달치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고, 비행기값이 없어 머나먼 러시아 땅 튜멘에서 나흘 동안 쉬지도 않고 차를 몰아 고향으로 온 바이 테미르와 일행 열명은 당장 광산으로 갔다. 뿌리가 강하지 않으면 타향에서 괄시받고, 일자리가 없으면 저절로 약자가 된다. 일자리와 환경보존은 이제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 하나만을 추구할 수 없게 되었다.

나와 친구들은 먼저 산과 바위와 나무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상수도 시설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분진이 닿지 않는 곳에 취수장을 만들고 물을 끌어와 마을 1천가구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자. 광산주에게 물과 풀씨를 뿌려 인공산을 덮도록 강요하자. 그다음에 말과 초원을 이용한 일자리를 만들고, 최후에 태양과 바람의 힘을 빌려 저 광산의 문을 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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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물과 공기마저 빼앗긴 목축인

반(半)유목민이 남긴 최초의 기록인 <리그베다>와 <아베스타>에는 물과 햇빛과 바람을 바라보는 그들의 염원이 세 신의 협력관계로 드러난다. 물의 주(主) 바루나, 태양신 미트라, 바람의 주관자 바유는 그들의 세 주신(主神)이다. 태양은 물을 하늘로 올리고, 생명의 숨결 자체인 바람은 구름을 옮기며, 불의 에너지는 물의 힘으로 식물 속으로 들어간다. 물과 빛으로 자란 식물은 결국 불에 타므로, 그들은 물 안에 불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이 정확한 지식을 가지지 못했을지라도 자연계의 순환을 보는 관점은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태양(태양광)과 바람(풍력)이 다시 물을 도울 차례가 왔다. 조언을 주고자 고맙게 초원을 찾은 생태건축가 이규인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에코 빌리지” 건설이다. “이곳은 상징적인 곳이죠. 여기마저 오염되면 세상은 끝이겠죠.”

오늘날 세상은 서로 연결되는 것을 넘어 그 구조까지 서로 닮아, 가난은 물론 건강까지 대물림된다. 옛날 가난한 초원민은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했지만 최소한 깨끗한 물과 공기를 마셨다. 그러나 오늘날 사리모골 마을에 묶인 반(半)정착 목축민들은 자신들이 초래하지 않은 재앙에 짓눌리며 혹독한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산도 강도 죄가 없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흐르는 물을 생활쓰레기로 더럽힌 죄가 있지만 근원을 더럽힌 죄는 없다.

젊은이들이 오늘 주장을 전달하러 광산으로 나간다고 한다. 이제 발걸음을 떼었다. 그들이 내일의 태양이다. 서광에 사라지던 뭇별들처럼, 햇살에 자리를 내줄 때까지 나 또한 잠시 어둠 속에서 반짝거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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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국 작가/탐험가/역사·인류학 연구자. 동양사(학사), 중국경제(석사)를 공부했고 지금은 유목인류학(박사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2018년 현재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목축 지대에서 생활하며 현장조사를 수행 중이다. <춘추전국이야기(1~11)>,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을 쓰고 <중국의 서진>, <말, 바퀴, 언어> 등을 옮겼다. 짐승에 기대어 옮겨 다니는 사람들과 함께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격조의 삶을 모색하는 글을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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