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캄포스 커피(Campos Coffee)의 질소를 주입한 콜드 드립 커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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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미식 천국이다.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답게 여러 나라의 식문화가 어울려 꽃피웠다.
특히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받아들여 발전시킨 커피가 일품이다. 호주는 전 세계에서 스타벅스가 고전하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그만큼 커피 문화의 수준이 높다.
호주 카페에서 커피 메뉴는 크게 블랙과 화이트 두 가지로 나뉜다. 블랙은 쇼트블랙(에스프레소)과 롱블랙(아메리카노), 푸어오버(핸드드립) 등으로 구분된다. 우유를 섞은 커피를 뜻하는 화이트는 우유거품이 많이 들어간 순서대로 카푸치노, 카페라테, 플랫화이트, 피콜로라테 등으로 다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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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카페는 두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먼저 커피에 곁들여 내는 음식이 다양하다. 카페가 아니라 레스토랑에 온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 카페가 오전 7시에 문을 열어 오후 4시면 닫는다. 일찍 출근하고 빨리 퇴근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호주인의 일과에 맞춰 운영된다. 그러니 여행자로서 현지의 일상을 경험하기에 카페만큼 좋은 장소가 없다.
시드니 CBD 구역에 자리 잡은 카페 ‘누크 어번 프레시 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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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소개할 카페는 ‘누크 어번 프레시 바’(noOk urban fresh bar hunter). 시드니 중심상업지구(CBD)에 자리 잡은 카페다. 2011년 처음 문을 열었는데 4년 만에 뉴사우스웨일스주가 발행한 ‘스페셜티 커피 북’에 시드니의 쟁쟁한 카페들과 함께 이름을 올릴 정도로 급성장했다.
누크 어번 프레시 바의 쇼트블랙(왼쪽)과 베이비치노(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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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가게 안은 커피를 사가려는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늘어선 줄의 대부분은 잘 차려입은 직장인들이었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소금통과 후추통에서 가게의 특징이 읽혔다. 자리에 앉아 아침식사 메뉴 중 ‘슈퍼 브레키 볼’(Super Brekkie Bowl)을 주문했다. 호주에선 브렉퍼스트(아침식사)를 브레키라고 줄여 말한다. 얼마나 특별한 아침일까 궁금했는데 수란에 아보카도 반쪽, 익힌 호박 한 조각, 후무스(병아리콩)와 케일을 버무린 샐러드가 나왔다. 알록달록 색깔부터 먹음직스러웠다.
코코넛 요거트(왼쪽)와 슈퍼 브레키 볼(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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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서 어른 주먹만 한 통에 담긴 요거트를 하나 꺼냈는데 이름이 석 줄이다. ‘코코넛 요거트 발사믹 캐러멜라이즈드 피그(무화과) 앤드 피스타치오 카카오 닙스 7’. 읽기도 벅찰 정도다. 그냥 곡물 요거트라고 하면 되지 너무한다 싶었는데, 한편으론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까지 꼼꼼히 살피고 철저히 따져먹는 호주의 식문화를 보여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크의 샐러드 바. 누크는 카페지만 바리스타보다 요리사 숫자가 더 많다. 아침과 점심식사로 다양한 음식을 내는 호주 카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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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크의 주인은 한국인이다. 2006년 호주로 이민 간 제이미 신 대표(47)는 그래픽 디자이너를 하다 외식업으로 눈을 돌렸고 시드니 중심가에서 사업을 성공시켰다. 신 대표는 매일같이 고급 레스토랑을 다니며 음식 공부를 하고 메뉴를 개선한다고 했다. 누크는 수준급의 자체 블렌딩 커피 못지않게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신 대표를 포함해 바리스타가 3명인데 요리사는 5명이 일한다. 누크에서 커피와 함께 식사 메뉴를 꼭 먹어봐야 하는 이유다.
시드니 하이드 파크 바로 옆에 위치한 놈코어 커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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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시내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명한 카페가 또 있다. 호주의 바리스타·로스터 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한 홍찬호 바리스타(32)가 운영하는 ‘놈코어 커피’(Normcore Coffee Roasters)다.
놈코어 커피 매장엔 호주 내의 바리스타·로스터 대회에서 수상한 트로피와 상패 등이 잔뜩 진열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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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한쪽엔 대회에서 받은 트로피가 한가득 진열돼 있다. 테이블이 6~7개로 크지 않은 가게는 늘 손님으로 북적인다. 20~30대 직장인부터 은퇴한 노인들까지 손님층도 다양하다. 음식 메뉴는 많지 않다. 햄과 피클을 넣고 납작하게 누른 호주식 샌드위치 ‘재플’(jaffle)은 간단한 아침식사로 좋았다.
놈코어 커피에서 판매하는 간단한 식사 메뉴. 오른쪽이 호주식 샌드위치 재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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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선 에스프레소를 ‘쇼트블랙’(short black)이라고 한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아메리카노는 ‘롱블랙’(long black)이다. 에스프레소 추출시간과도 관련이 있고 서빙되는 잔 크기에도 들어맞는 이름이다. 쇼트블랙을 주문하니 사케잔에 커피를 내왔다. 사소한 부분까지 다른 카페와 차별화하려는 모습이 엿보였다.
사케잔에 서빙된 에스프레소(왼쪽)와 플랫화이트(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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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잔은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의 게이샤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추출해 맛봤다. 한 잔 가격이 무려 20호주달러(약 1만6000원)다. 화려한 과일향이 인상적이었다. 맛은 두말할 것 없이 훌륭했지만 이렇게 비싼 커피를 주문하는 손님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의외로 손님의 절반은 특별한 커피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파나마 게이샤 같은 고급 커피는 가격도 비싸지만 구하기도 쉽지 않다. 놈코어 커피는 홍 바리스타를 포함해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대회에 출전하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수급한 귀한 커피를 끊기지 않고 매장에서 판매할 수 있다고 했다.
놈코어 커피는 산지에서 다이렉트 트레이드로 공수한 원두를 직접 볶아 판매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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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바리스타는 “우리가 김치 한번 먹어보면 맛있는지 아닌지 딱 아는 것처럼 호주 사람들은 커피맛을 귀신같이 구분한다”고 했다. 그렇게 까다로운 커피 입맛을 맞춰가며 노력한 결과 놈코어 커피는 현재 15곳의 지역 카페에 원두를 납품하고 있다. 호주 정착 4년 만에 이룬 성과치곤 대단하다.
캄포스 커피 뉴타운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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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소개할 카페는 시드니 커피업계의 터줏대감인 ‘캄포스 커피’(Campos Coffee)다. 시드니에 4개 지점이 있는데 본점인 뉴타운(newtown)의 매장을 방문했다. 시드니대학교와 가까운 뉴타운은 원래 마약중독자와 범죄자들이 우글대는 가난하고 낙후한 동네였다. 2002년 윌 영(Will Young)이란 청년이 이곳에 카페를 열었다. 손님이 주문하면 즉석에서 원두를 갈아 신선한 커피를 대접했다. 그때까지 시드니에서 그런 식으로 커피를 파는 가게가 없었다. 카페는 금세 명소가 됐고 캄포스를 본떠 스페셜티 커피를 파는 가게도 우후죽순 늘었다. 지금은 뉴타운 전체가 근사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가득한 상업지구로 거듭났다.
캄포스 커피는 메뉴판에 그날 판매하는 원두의 산지와 농장 이름은 물론 커피의 품종, 재배 고도, 가공방식, 수상경력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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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포스 뉴타운점은 간단한 케이크 종류 외에 음식을 팔지 않는다. 커피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다. 매니저 대니얼(Daniel Audy)은 “하루에 수천잔의 커피를 파는데 우리가 정한 기준에 맞춰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려면 다른 데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했다. 캄포스는 볶은 지 5일이 지난 원두는 폐기 처분한다. 그게 소비자와 약속한 신선함의 기준이라고 했다. 매장에는 9명의 바리스타가 쉴 새 없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좁은 가게엔 끊임없이 손님들이 드나들었다. 대부분 지역 주민이라고 했다.
캄포스 뉴타운점에서 맛본 커피들. 시음을 위해 탄산수가 함께 제공됐다. 테이블 위에 놓인 설탕은 정제 과정을 덜 거친 고급 제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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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인터뷰 후 커피를 맛봤다. 케냐 커피로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한모금 입에 머금는 순간 상큼하게 기분 좋은 신맛이 입안에서 폭발했다. 과일향이 너무 좋다고 하자 대니얼은 “맞아, 과일 폭탄(fruity bomb)이야”라며 웃었다. 카푸치노는 호주식으로 초콜릿이 들어갔지만 달지 않고 고소했다. 일반 카페라테보다 크기가 작은 잔에 나오는 피콜로라테는 우유의 부드러움을 유지하면서도 커피맛이 더 강하게 느껴져 조화가 훌륭했다. 뉴타운점의 명물 메뉴라는 아포가토는 잔에 꽉 차도록 아이스크림이 담겨 있어 왜 인기인지 알 것 같았다.
시드니 천문대 근처에 있는 로드 넬슨 브루어리. 펍과 레스토랑, 호텔을 겸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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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목도 축이고 아침·점심을 해결했다면 다음은 저녁식사 차례다. 18세기 후반 영국 죄수들을 이송하며 생긴 도시답게 시드니엔 영국식 에일 맥주를 잘 만드는 집이 많다. 그중에서도 ‘로드 넬슨 브루어리’(The Lord Nelson Brewery)는 몰트와 홉, 이스트와 물 외에는 일체의 보존제나 설탕 등을 사용하지 않는 100% 내추럴 에일을 자랑한다.
영국의 영웅 넬슨 제독의 이름을 딴 이 펍은 1841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시드니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이기도 하다. 지하에 양조장이 있고 1층은 펍, 2층은 레스토랑, 그 위로 호텔 객실이 있다.
주문을 받으면 곧바로 바에서 맥주를 따라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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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넬슨 브루어리는 야경 감상지로 유명한 시드니 천문대 바로 옆에 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펍에 들어섰는데 이미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꽉 차 있었다. 맥주잔을 앞에 놓고 떠드는 소리로 가게 안은 왁자지껄했다. 역사가 200년에 이르는 술집답게 벽에는 손때 묻은 액자와 기념품이 가득했다.
맥주가 나오는 탭. 맥주를 숙성시키는 지하의 저장고에서 1층의 펍까지 관이 연결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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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추천한 계절 메뉴 ‘로열 레드 에일’을 먼저 시음했다. 이름처럼 붉은빛이 진하고 아름다웠다. 계절 맥주답게 막 시작한 호주의 봄처럼 목넘김이 가볍고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대표 메뉴인 ‘스리 시트 에일’(three sheets ale)은 지금껏 마셔본 에일과는 맛이 완전히 달랐다.
계절 맥주인 로열 레드 에일(왼쪽)과 대표 메뉴 스리 시트 에일(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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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향과 맛이 분명한 대신 도수가 높고 무거워 한자리에서 많이 마시기 힘든 게 에일 맥주의 특징인데, 로드 넬슨의 에일은 달랐다. 가볍고 상쾌한 맛이 꼭 라거 맥주 같았다. 신선한 천연 재료만 써 시원함과 깔끔함을 극대화했다고 직원은 설명했다. 더 도수가 높고 색이 진한 다크 에일과 포터(흑맥주)도 마셔봤지만 에일답지 않게 담백하고 깨끗한 느낌은 같았다. 본고장 영국의 에일을 뛰어넘어 호주만의 맛과 색을 살린 매력이 느껴졌다.
이 집에서 또 하나 맛봐야 할 게 ‘미트파이’다. 으깬 감자를 밑에 깔고 파이를 담은 뒤 완두콩을 위에 올린 모양이 보기부터 예쁘다. 고기가 들어간 파이 맛도 이채롭다. 매주 월요일 저녁은 미트파이를 싸게 파는 ‘파이 나이트’ 행사가 열린다.
으깬 감자와 완두콩을 곁들인 고기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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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난 레스토랑과 카페 등 시드니 ‘맛집’이 몰려있는 서리 힐스(Surry Hills) 지역에도 맥주 한 잔 하기 좋은 곳이 있다. 케그 앤 브루(Keg & Brew)는 약 30여종의 호주산 크래프트 맥주를 구비한 펍이다. 그 중 시드니 지역 양조장에서 생산된 맥주가 10여종. 역시 에일 맥주가 가장 종류가 많다.
서리 힐스 지역의 생맥주 맛집 케그 앤 브루. 가게 바깥에도 테이블과 의자가 여럿 놓여있다. 이른 저녁부터 퇴근길에 맥주잔을 기울이는 이들의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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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 즐비한 맥주 탭과 그 위에 달려있는 각양각색의 라벨을 구경하다 보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어떤 것부터 마셔야 할지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취향을 말하고 바텐더에게 추천을 부탁하니 자세한 설명과 함께 신선한 맥주를 따라줬다.
행복한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바 위의 다양한 맥주 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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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그 앤 브루도 1800년대에 처음 호텔로 개업해 1922년부터 지금의 이름을 사용해온 유서 깊은 가게다. 바 위에는 맥주와 관련된 농담이나 어록 등이 적혀 있다. “나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맥주를 마신다. 비가 올 때와 비가 안 올 때…”
30여종의 맥주 이름과 맛의 특징, 알코올 도수, 가격 등이 빼곡히 적힌 메뉴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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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호주) | 글·사진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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