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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ESC] 오래된 간이역이 가르쳐주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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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커버스토리┃간이역

군산·익산 간이역 여행

일제강점기·광복 후 역사 흔적 가득

춘포역,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간이역

서양식·일본식 혼합 건물 임피역

주변엔 채만식 생가터 등 볼거리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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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이웃한 도시 군산시와 익산시에는 오래 되고 가치 있는 대표적인 간이역 두 곳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하다. 옛 군산선의 임피역, 전라선의 춘포역이다. 일제강점기엔 미곡 수탈 등에 따른 수모와 고통, 광복 뒤엔 통근열차 등으로 이용했던 주민들의 애환이 서린 간이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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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은 일제강점기, 광활한 호남 평야지대의 쌀 등 농작물을 수탈해 일본으로 반출하는 거점 항구였다. 전라선, 군산선 철도를 이용해 군산항으로 쌀을 대량으로 실어 날랐다. 평야지대를 지나는 철길에 개설된 간이역 주변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대규모 농장과 대형 정미소와 미곡창고가 있었다. 100여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대부분의 간이역들은 사라졌지만, 일부 역 건물은 문화재로 지정해 돌아봐야 할 역사의 흔적으로 보존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 역사 춘포역

전북 익산(옛 이리)과 전남 여수를 잇는 철도 노선이 전라선이다. 익산에서 전주로 가는 철로 중간 쯤, 넓고 넓은 만경평야를 통과하는 만경강변 포구마을에 춘포역이 있다. 1914년 전라선 일부 개통과 함께 들어선 역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이 일대를 일본식 지명인 대장촌으로 불렀다. 아주 넓은 평야지대 마을이란 뜻이다. 역 이름도 대장역이었으나 1996년 일제잔재 청산 차원에서 춘포역으로 바꿨다. 춘포는 만경강 봄개(춘포)에서 비롯한 옛 지명이다. 주변에 봉가뜰(춘포평)·봉개산(춘포산) 등 지명이 남아 있다.

춘포역은 전라선 복선화 공사로 2007년 폐역이 돼 역사(등록문화재)만 남아 있다. 춘포역 역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역 역사로 꼽힌다. 목조에 시멘트 벽체를 혼합한 모습의 단층 건물이다. 박공지붕(경사를 급하게 한 지붕)은 정면이 아닌, 승강장 쪽 문에 설치돼 있다. 앞에서 보면 밋밋하게 보이지만, 철로 쪽에서 보면 아기자기한 옛 간이역 역사 모습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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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국내 최고 역사치고는 관리가 안 되고 있어 안타깝다.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문을 잠가둔 것은 그렇다 치고, 주변엔 잡풀이 무성하고 안내판은 낡아 잘 보이지도 않는다. 전화 예약하면 역사 내부를 볼 수 있다고 적혀 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춘포역은 마을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가옥, 대규모 정미소 건물 등과 함께 일제 수탈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돋보이는 관광자원이다.

춘포리의 ‘일본인 농장가옥’(에토 가옥·등록문화재)은 일제강점기 이 일대에 있었던 대규모 농장 호소카와 농장을 관리하던 에토가 살던 집이다. 위층에 유리창이 달린 발코니가 설치된 독특한 2층 집으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주민이 거주하는데, 대문을 열어두고 있어 정원까지 들어가 집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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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포 일대에서 생산된 쌀을 도정했던 대규모 정미소 대장정미소도 있다. 호소카와 농장에서 운영했는데, 열차로 실어갈 때 운송량을 줄이기 위해 쌀 겉껍질만 도정했다고 한다. 대장정미소 역시 철문을 닫아뒀고, 들여다보이는 안쪽 옛 건물들은 곧 무너질 듯 낡아가는 모습이다. 당시 호소카와 농장의 한국인 관리인이 살던 일식 가옥(김성철 가옥)도 춘포리에 남아 있다.

볼거리 많아 탐방객 발길 이어지는 임피역

익산의 춘포역 역사와 정미소 건물 등이 문을 닫아걸고 방치돼 있는 모습이라면, 군산의 임피역 역사(등록문화재)는 관리와 활용이 잘되고 있어 돋보인다. 역 자체에 볼거리·이야깃거리도 많은데다, 걸어서 주변의 역사문화 유산들을 둘러볼 수 있도록 탐방 코스도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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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선은 일제가 미곡 수탈을 목적으로 1912년 개설한 익산~군산항 철도 노선이다. 당시 3개의 보통역, 2개의 간이역이 설치됐는데, 그 간이역 중 하나가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의 임피역이다. 2008년 여객 취급을 중단해 폐역이 됐다. 현재 모습의 임피역사는 1910년대 후반 처음 지어진 뒤 1936년 개축된 건물이다. 서양식 간이역사와 일본식 가옥 형태를 혼합한 건물로, 외관이 매우 아름답다. 임피는 ‘방죽에 접한 곳’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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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임피역에선 임피향토사연구회가 마련한 임피향토사문화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임피역 이용 주민과 일제의 수탈 과정을 재현한 인물상들을 만들어 역사 안팎에 전시했고, 당시 군산·옥구 지역의 만석꾼이자 교육사업과 지역 발전에 기여했던 장영규의 업적을 기리는 자료들, 향토시인들의 시 등도 전시돼 있다.

임피역 대합실은 물론이고, 역무실 내부도 개방돼 있다. 군산선 및 임피역의 옛 사진들과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커다란 철제 금고도 볼 수 있다. 임피역사도 등록문화재이지만, 옆에 있는 옛 화장실·창고 건물도 등록문화재다. 1936년께 지어진 재래식 화장실로, 칸막이 없는 소변 시설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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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옆에는 열차 2량을 이용한 객차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임피면의 역사와 볼거리·이야깃거리들을 전시한 곳이다. 일제강점기의 미곡 수탈과 옥구농민들의 저항, 군산선을 이용하던 주민들의 애환, <탁류> <레디메이드 인생> <태평천하> 등을 쓴 임피 출신 소설가 채만식의 작품 이야기, 탑동3층석탑·임피읍성·노성당(임피 동헌 부속건물)·임피향교 등 지역 문화재 관련 자료, 옛 승차권과 개표가위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지역 문화재들은 차로 20~30분 거리 안쪽에 있어 차례로 찾아볼 만하다. 경로당으로 사용되는 노성당, 200~500년 수령의 왕버들에 둘러싸인 옛 연못과 임피 관리들 공적비들, 임피향교는 임피면 읍내리에 모여 있다. 우물 하나만 남아 있는 채만식 생가터는 임피사거리 옆에, 채만식이 집필실로 쓰던 옛 가옥과 묘는 축산리 계남마을에 있다. 채만식 집필 가옥은 거의 무너져 형체만 남은 상태로 방치돼 있어 안타까움을 준다. 채만식은 1945년 낙향해 이곳에서 집필활동을 했다고 한다. 군산시는 집필 가옥 복원을 추진 중이다.

군산·익산/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문화재 등록 간이역 목록

서울역/구역사, 1925년 건립, 르네상스식 궁전 건축기법

남창역(동해남부선)/보통역, 1935년, 독일 표현주의적 건축기법

곡성역(전라선)/구역사, 1933년, 기차마을 관광지

원창역(경전선)/무인역, 1940년대, 일식 주택 형식의 여관 건물

신촌역(경의선)/구역사, 1920년대, 일제강점기 소규모 역사 형식

반곡역(중앙선)/보통역, 1940년대, 근대 서양 목조건축기법

진해역(진해선)/보통역, 1926년, 일제강점기 일반적 지방 역사 형식

임피역(군산선)/구역사, 1936년, 르네상스식 절충주의 양식

춘포역(전라선)/구역사, 1914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

반야월역(구대구선)/구역사, 1932년, 일반적 지방 역사 형식

일산역(경의선)/구역사, 1933년, 일산 신도시 소재

팔당역(중앙선)/구역사, 1939년, 승강장 안에 건립된 일자형 역사

구둔역(중앙선)/구역사, 1940년, 주변 경관이 수려함

심천역(경부선)/보통역, 1934년, 경부선에서 원형이 잘 보전된 역사

도경리역(영동선)/무인역, 1939년, 영동선 유일의 근대유산

남평역(경전선)/무인역, 1956년, 역무실 돌출 지붕이 모임지붕 형태

화랑대역(경춘선)/구역사, 1939년, 비대칭 삼각형을 강조한 박공지붕

율촌역(전라선)/무인역, 1930년, ㄴ자형 평면 구조

송정역(동해남부선)/배치간이역, 1941년, 1940년대 전형적인 역사 양식

동촌역(구대구선)/구역사, 1938년, 지붕 형태 디자인 탁월

가은역(가은선)/구역사, 1961년, 석탄산업 관련 유산 목조 역사

청소역(장항선)/보통역, 1961년,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불정역(문경선)/구역사, 1955년, 외관이 독특한 역사

하고사리역(영동선)/무인역, 1966년, 주민들이 건립. 목조 슬레이트 지붕

자료 : 코레일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간이역

행정적으로 분류하는 철도역의 하나. 역장을 배치한 보통역과 달리, 역장을 두지 않고 여객 또는 화물을 취급한다. 철도공사 직원이 배치돼 있으면 ‘배치 간이역’, 없으면 ‘무배치 간이역’으로 부른다. 일반적으로는 폐역을 포함해, 작고 조용하고 정겨운 시골 역을 가리킨다. 대부분 간이역엔 일제강점기 수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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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익산/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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